[뉴스로드]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이 이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첫 통화정책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시그널을 내놨다. 시장이 예상한 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다음 행보는 ‘인하’가 아니라 ‘인상’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다. 이란 전쟁 이후 유가 급등과 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시장의 컨센서스였던 동결 시나리오와는 일치했지만, 정책 메시지의 톤은 한층 매파적으로 바뀌었다.
우선 FOMC는 2024년 9월 금리 인하 사이클 개시 이후 줄곧 유지해 온 ‘추가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문구를 정책결정문에서 완전히 삭제했다. 이른바 ‘완화 편향(easing bias)’ 표현이 빠지면서, 연준이 다음 번 금리 조정에서 인상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여지를 분명히 남겼다.
결정문 자체도 짧고 간명해졌다. FOMC는 “인플레이션은 에너지를 포함한 일부 부문의 가격 상승을 초래한 공급 충격을 일부 반영하며 여전히 2%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다”며 “위원회는 물가 안정을 이룰 것”이라고만 적시했다. 향후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선제 안내 문구는 통째로 사라졌다.
이 같은 변화에는 워시 의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연준의 과도한 선제 안내가 정책 오류를 부른다”며, 2021년 인플레이션 급등 당시 연준이 미리 제시한 경로에 묶여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다만, 문구에서 ‘힌트’를 지운 대신 숫자는 분명한 방향 전환을 보여줬다. 이날 함께 공개된 수정 경제전망(SEP) 보고서의 금리 전망, 이른바 점도표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올해 연내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인상하는 쪽으로 중간값을 바꿨다.
3월 점도표에서 연내 1회 인하(중간값 3.4%)를 가리키던 점들은 이번에는 1회 인상(중간값 3.8%)으로 옮겨갔다. 금리 전망을 제시한 18명 중 9명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이상 인상을 예상했다. 이 가운데 3명은 0.25%포인트, 5명은 0.50%포인트, 1명은 0.75%포인트 인상을 각각 점도표에 반영했다. 8명은 동결을, 인하를 예상한 위원은 단 1명에 그쳤다. 3월에는 금리 인상을 점찍은 위원이 한 명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정책 경로 전망이 짧은 기간에 뚜렷하게 매파적으로 이동한 셈이다.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점도표에 개인적인 금리 전망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위원 다수의 인식 변화는 명확하다. 배경에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촉발된 고유가와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가열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해 3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2.9% 올라 연준 목표치(2%)를 큰 폭으로 상회했다. 전쟁 이후 국제 유가는 다소 진정됐지만, 시장에서는 “유가 충격을 빼더라도 물가 상승 압력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과,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기업)를 중심으로 한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붐도 전쟁 이전부터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잠재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여기에 전쟁발 공급 충격이 겹치면서 연준이 다시 긴축 쪽으로 몸을 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다.
연준 내부에서는 이미 4월 회의 때부터 이런 문제의식이 분출됐다. 당시 베스 해맥(클리블랜드), 닐 카시카리(미니애폴리스), 로리 로건(댈러스) 등 3명의 위원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 조정’이라는 완화 편향 문구를 유지하는 데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번 회의에서는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고, 금리 동결 결정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신 정책 문구에서 완화 편향 자체가 삭제되면서 이들의 문제 제기가 사실상 관철된 모양새가 됐다.
정책 경로가 매파적으로 기울자 채권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채 수익률은 뉴욕증시 마감 무렵 4.21%로 치솟아 전장보다 0.17%포인트 급등했다. 약 13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채권 가격이 그만큼 가파르게 떨어졌다는 의미다.
파생상품 시장도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대폭 반영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은 이날 기준 오는 12월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이상 올릴 확률을 86%로 가격에 담았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 확률은 60% 수준이었다.
정치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요구해온 ‘금리 인하’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워시 의장은 물가안정 목표를 최우선에 두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장은 워시 체제의 첫 회의에서 드러난 이 매파적 전환을, 향후 연준이 ‘데이터에 따라 움직이되, 인플레이션에는 결코 관대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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