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민통선을 이양받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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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민통선을 이양받는다는 것

경기일보 2026-06-17 19:04: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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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려 DMZ숲 대표

 

지난 글에서 필자는 민통선을 소문의 낙원이 아니라 삶을 짓는 도장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이제 더 무거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이 도장을 언젠가 이양(移讓)받을 준비가 돼 있는가.

 

한때 접경지역을 향해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라는 말이 나왔고 민통선 북상과 조정의 논의도 그 연장선에서 거론됐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오늘 그 논의는 다시 정책의 언어로 돌아왔다. 국방부가 민통선 조정과 군사시설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통제선이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땅이 열린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동안 안보의 이름으로 묶여 있던 공간이 조금씩 지역의 현실 앞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며 그 땅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책임의 질문도 함께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한 질문은 “언제 풀릴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양은 먼 훗날의 구호가 아니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현장의 과제가 되고 있다.

 

민통선은 여전히 안보의 현실 위에 놓인 묵직한 땅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은 주민의 생업이 작동하고 숲과 농지가 있고 지역의 애환이 쌓여 있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민통선을 이양받는다는 것은 어느 한쪽의 권한을 빼앗는 일이 아닌 이 땅을 감당할 책임의 주체를 넓혀가는 일에 가깝다.

 

책임은 ‘공간’에서 시작된다. 민통선에 필요한 것은 더 크고 화려한 시설이 아니다. 이 땅의 제약을 지워버리는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그 제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사람이 머물 수 있도록 시간을 다시 짜는 공간이다. 민통선을 이양받는다는 것은 결국 이 땅의 조건을 외면하지 않고 그 조건 안에서 삶이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일이다.

 

민통선은 다르다. 이곳에는 절차가 있고, 안보의 시간이 있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과 나가야 할 시간이 엄격히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이곳의 공간은 불편을 ‘새로운 질서’로 바꾸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 민통선 안에서 좋은 공간은 사람의 걸음을 느리게 만들고 자연과 인간이 간격을 둬야 하는 이유를 몸으로 이해하게 하는 곳이다. 가벼운 체험의 나열이 될 수 없다. 조심스러운 숲길 산책, 척박한 흙에 이끼를 심는 손작업, 투박한 지역의 음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민통선을 이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대한 선언이 아니다. 방문을 소비가 아닌 ‘관계’로 바꿀 수 있는 이 구체적인 감각이다. 숲의 시간과 만나 짧은 체류조차 새로운 삶의 감각으로 이어지는 ‘머묾의 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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