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 역사관.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역사와 성장 과정을 소개하는 설명이 이어지자 일본 방문단 곳곳에서 "오오~"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특히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했다는 설명에 이어, 1960년대 독일 차관을 통해 중소기업 금융 지원의 기반을 넓혔던 기업은행이 오늘날 독일 대표 은행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참가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역사관을 찾은 이들은 일본의 공무원과 정치인, IT 컨설턴트, 기업인, 학생 등 14명으로 구성된 '일본 선진정보화사회 견학단'이다. 한국의 디지털 행정과 금융 정보화 사례를 배우기 위해 방한했지만, 이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디지털 기술만이 아니었다. 65년 동안 축적된 한국형 중소기업 금융 모델과 정책금융 시스템이었다.
과거 선진국의 산업화 모델을 배우던 한국은 이제 중소기업 금융과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해외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이날 방문단 역시 한 은행의 역사가 아닌 한국 경제 성장 과정과 중소기업 지원 시스템의 발전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 "한국 생각보다 훨씬 앞서"...일본 견학단, 금융 정보화 격차 실감
이번 견학단을 이끈 염종순 메이지대학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2000년 이후 일본의 정치·사회·문화 분야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디지털행정과 스마트시티 등 혁신 현장을 소개하는 '인터넷콜럼버스'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번 견학단 역시 한국의 금융·의료·행정·교육 분야 정보화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방한했다.
염 교수는 한국이 일본의 정보화 모델이 될 수 있는 이유로 양국의 제도적 유사성을 꼽았다. 특히 금융 분야에 대해서는 한일 간 정보화 수준 차이가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염 교수는 "한국은 전자결제와 디지털 행정 분야에서 훨씬 앞서 있다"며 "한국의 정보화 수준이 일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참가자들이 많이 놀란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 분야와 관련해 "일본은 아직도 은행 창구 송금 문화가 남아 있고 IT기업이 은행 시스템을 보유해 임대하는 구조여서 은행이 독자적으로 DX(디지털전환)와 AX(AI전환)를 추진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염 교수는 참가자들의 반응에 대해 "기업은행 직원들이 직접 개발·운영 중인 시스템을 소개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며 "정부계 금융기관임에도 민간기업 못지않은 업무 효율성과 고객서비스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 금융권의 디지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일본 금융기관과의 정보화 격차를 실감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 1800명 다녀간 IBK 역사관...정책금융 넘어 '수출 모델'로
기업은행 역사관에는 일본 견학단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과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개관 이후 지난 16일까지 약 1800명이 역사관을 찾았다. 이 가운데 해외 기관만 13곳 이상에 달한다.
올해에는 영국계 글로벌 은행 HSBC, 미국계 금융그룹 씨티은행,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개발은행(ADB), 캐나다 퀘벡연기금(CDPQ), 글로벌 결제기업 마스터카드 본사 관계자 등이 역사관을 방문했다. 이 밖에도 일본·유럽·동남아시아 지역 금융기관과 정부 관계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단순한 은행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중소기업 금융 시스템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물론 중남미 국가들도 한국 모델을 배우러 온다"며 "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이 결합된 정책금융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신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국가가 보증을 제공하고 기업은행이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델"이라며 "중소기업 금융 분야에서는 한국 모델 자체가 하나의 수출 상품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최근 베트남 현지법인 설립 인가를 받으며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섰고, 사우디아라비아 중소기업은행(SME Bank) 설립 과정에도 참여해 한국형 중소기업 금융 노하우를 공유했다. 또 독일 코메르츠방크, 일본 미즈호은행, 프랑스 비피프랑스(Bpifrance) 등 주요 해외 금융기관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글로벌 중소기업 금융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경쟁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기업은행은 올해 글로벌파이낸스와 아시안뱅커의 '대한민국 최우수 중기금융 은행상'을 3년 연속 수상했으며, 디지털뱅커 어워드에서도 중소기업 금융·디지털 혁신 부문 아시아 최우수 은행으로 선정됐다.
◆ "시장성과 공공성의 결합"...세계가 주목하는 'K-중기금융'
IBK경제연구소의 서경란 소장은 기업은행이 해외 정책금융기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이유로 '시장성과 공공성의 결합'을 꼽았다.
서 소장은 "기업은행은 정부 지분이 50% 이상인 정책금융기관이면서도 상장 은행으로 민간 금융회사와 경쟁하고 있다"며 "해외에도 정책금융기관은 많지만 기업은행처럼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동시에 중소기업 정책금융 기능을 수행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은행은 법적으로 전체 대출의 70% 이상을 중소기업에 공급해야 하며 실제로는 약 83%를 중소기업 대출로 운용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금융은 일반적으로 위험도가 높다고 평가되지만 기업은행은 65년 동안 축적한 심사 역량과 현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책 역할과 건전성을 동시에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정책을 수행하면서도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금융 지원을 넘어 창업·컨설팅·연구 기능까지 함께 수행하는 점이 기업은행만의 강점"이라며 "이 같은 구조가 세계 각국이 한국형 중소기업 금융 모델에 관심을 갖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폴리뉴스 권은주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