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마 콘트레라스 로마스
멕시코시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팔로마 콘트레라스 로마스(Paloma Contreras Lomas)의 작업을 처음 본 것은 2024년 뉴욕 CARA(Centre for Art, Research and Alliances)에서다. 당시 오스트리아 작가 이네스 두야크(Ines Doujak)와 함께한 2인전에서 그의 작업은 기괴하면서도 귀엽고, 동시에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유머와 불안, 과장된 감각이 뒤섞인 화면과 조각은 엉뚱하면서도 묘하게 날카로운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 인상이 오래 남았다. 이후 가스 워크스는 팔로마를 3개월 레지던시에 초청했고, 현재 오는 10월 열리는 그의 첫 유럽 개인전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팔로마는 유머와 공포, 연극성을 뒤섞어 오늘날 세계의 암울한 현실을 특유의 방식으로 비틀어 보여준다. 드로잉과 회화, 조각, 영화까지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기이하고 바로크적이다. 특히 과장된 감각 속에서도 펑크적 태도와 날카로운 사회적 감각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밴드들이 보인 태도와도 닮았다. 정치적 긴장과 젠트리피케이션, 힙스터 문화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획일성까지, 오늘날 사회의 모순을 익살스럽지만 예리하게 드러내며 동시대 현실을 하나의 뒤틀린 거울처럼 비춘다. _로버트 레키(Robert Leckie) 런던 가스 워크스 디렉터
오묘초
최근 국내외 미술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 오묘초는 억겁의 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생명체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조각가다. 그의 대표작으로 그와의 첫 대면이기도 한 작품 ‘누디 핼루시네이션’은 바다달팽이의 기억 전이 실험을 참조했다. 작가는 인간 뇌세포 연구의 모델이 되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신체 간 기억이 순환하는 가상 세계를 SF 소설과 조각으로 펼쳐낸다. ‘선택된 이질적 존재들은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인간의 유산을 탐닉하며 변화된 신체로 살아남았다’라는 작품의 소설적 배경은 인간 이후의 실존적 조건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물질의 변형과 순환 가능성을 집요하게 모색한다. 흙과 황동, 버섯과 송진, 그리고 열에 녹았다가 굳은 유리와 스틸, 알루미늄 등은 그의 작업에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새로운 종으로 거듭난다. 지구온난화와 인공지능 전쟁,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기술 진보의 서사 속에서 오히려 고대부터 진화해온 생동하는 존재들의 존속 방식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 안의 근원적 생존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_이지회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쯔엉꽁뚱
호찌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쯔엉꽁뚱(Trương Công Tùng)은 오랫동안 깊은 대화를 이어오며 영감을 받은 작가다. 그의 스튜디오는 끊임없이 자라는 아이디어와 물질의 정원처럼 느껴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무언가 이동하고 변형되며, 새로운 면이 드러난다. 뚱은 자신의 작업을 하나의 협업 과정으로 설명하는데, 그 안에서 저자성은 인간과 기계, 식물과 곤충, 빛과 어둠, 흙과 돌, 물과 바람, 비와 영적 세계 사이를 오가는 대화로 확장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예술 창작 방식을 흔들기 위한 태도이기도 하다.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의 외딴 마을에서 함께 진행한 이동형 커뮤니티 프로젝트도 인상 깊었다. 그 경험은 예술이 서로를 흡수하고 뒤섞으며 씨앗처럼 영향력을 퍼뜨리는 생성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기후 위기와 산업화된 예술 시스템 속에서 작가는 예술의 역할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진다. 그는 예술을 단순히 화이트 큐브 안에 배치하는 오브제로 바라보지 않고 개인과 집단, 인간과 자연, 물질과 비물질이 유동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으로 확장한다. 조용히 자라고 펼쳐지는 그의 작업은 예측할 수 없는 리듬 속에서 변화하고 반응하며, 예술이 무엇이고 무엇을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관념을 뒤흔든다. _빌리 탕(Billy Tang) 런던 YDP 스페이스 아트 디렉터
클로딘 몽쇼세
클로딘 몽쇼세(Claudine Monchaussé)를 언급하는 것은 그의 독보적 작품 세계를 기리는 동시에 ‘라이징’을 정의하는 우리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조명하는 것은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는 70년 동안 장작 가마로 석기 조각을 빚어왔으나 지난해 브뤼셀 에르메스 재단 전시를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때로는 조용한 속삭임이 더 큰 꽃을 피우듯 그의 작업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세계적 상황에 대해 그 어떤 목소리보다 날카로운 응답을 들려준다. 그의 작업은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홀로 존재하는 법을 보여준다. 독립적이면서도 서로가 가족처럼 연결된 그의 조각은 각자 고유성을 지키는 것과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결코 모순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중심인 동시에 주변부일 수 있다는 이러한 태도는 개별성과 공동체성을 함께 소중히 여기는 나의 큐레이팅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 예술적 집중은 타인을 환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힘이 더욱 강렬해진다. 클로딘 몽쇼세의 조각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지키면서도 세상과 유연하게 연결되는 환대의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다시금 확인시킨다. _조엘 리프(Joël Riff) 벨기에 에르메스 재단 라 베리에르 전시 기획자 & 프랑스 아티스트 레지던시 몰리-사바타 큐레이터
최리아
지난해에 홀원(Hall 1)에서 열린 최리아의 개인전 〈Fence-go-round〉를 통해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실제 작업의 물성을 확인하고자 방문한 작업실에서 송은아트센터 〈스프링 피버〉 출품작 등 여러 신작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조각의 구조가 자아내는 아슬아슬한 균형미였다. 가늘고 긴 조각들이 단단함과 유연함의 경계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말의 움직임을 길들이는 조마삭 훈련의 원리를 작업에 녹여냈다는 작가의 서사가 흥미롭다. 그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관찰자의 신체 또한 작업이 규정하는 규율 속으로 편입되는 듯한 감각적 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최리아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 실험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실존적 조건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그가 제시하는 울타리나 기둥, 벽 같은 장치는 공간을 구획하는 동시에 특정 행동을 유도하며 끝내 규율을 내면화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통제와 보호가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얽혀 있는 양가적 상태를 신체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반복과 익숙함 속에서 질서를 무심히 따르게 되는 우리에게 최리아의 조각적 언어는 우리가 믿는 질서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되고 유지되는 과정임을 날카롭게 상기시킨다. _이경민 휘슬 디렉터
행복반
행복반은 2023년 시작된 드로잉 모임으로, 고경호 · 김승규 · 라미연 · 임지현 · 함성주 · 황예랑 6명의 회화 작가가 하루 하나의 드로잉을 그리고 매달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활동을 이어간다. 작가 박이소가 드로잉을 자기 훈련 방식으로 삼은 태도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은 작업실에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창작의 무게와 삶의 복잡성 속에서도 자연스러운 연대를 통해 창작을 포기하지 않는 힘을 만들어간다. 행복반이 인상적인 이유는 거대한 담론보다 창작 그 자체의 즐거움과 다정한 연대를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오늘날 청년 예술가들은 제도 밖에서 스스로 조직하고 관계를 만드는 ‘자기 조직화’의 흐름 속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대안적이고 자립적인 활동이면서,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시대 생존 전략 중 하나로 강제된 선택이라는 양면성을 띤다. 행복반 역시 이러한 움직임 안에 위치하지만, 작업의 괴로움 속에 고립되기보다 함께 그리기를 지속할 동료를 찾고, 창작의 원동력이 되도록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매일의 드로잉과 느슨한 연대를 통해 서로를 지켜봐주는 이들의 실천은 결과 이전의 삶과 태도, 그리고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동시대적 제스처로 다가온다. _노해나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디에고 싱
현재 주목하는 미술계의 새로운 얼굴은 화가이자 마이애미 기반 갤러리 ‘센트럴 파인’을 운영하는 디에고 싱(Diego Singh)이다. 작가와 기획자라는 두 정체성을 지닌 그는 창작과 기획을 넘나들며 독보적 행보를 보여준다. 갤러리 전시를 통해 화면 전체를 푸른 색조로 채운 그의 초기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추상적 평면 위에 응집된 강렬한 에너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의 회화는 마치 전기장처럼 꿈틀거리는 즉각적 생동감을 뿜어낸다. 화면에선 역사와 기억, 음악적 기보법, 심지어 기상 패턴 같은 이질적 요소들이 층층이 암호화되어 하나의 정교한 언어를 구축한다. 작업의 밑바닥에는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 실종과 망명을 겪어야 한 가족의 비극적 서사가 묵직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서 마돈나의 노래 제목을 차용하는 등 대중문화 요소를 과감히 섞는 유연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강렬한 색채와 다양한 문화적 레퍼런스를 녹여낸 작업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시대의 억압에 맞서는 그만의 세련된 저항 전략으로 기능한다. 하이브리드한 삶의 궤적을 회화로 번역해내는 그의 표현 방식은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_앨릭스 가튼펠드(Alex Gartenfeld) ICA 마이애미의 어마 앤 노먼 브래먼 아티스틱 디렉터
황예지
황예지의 작업을 처음 본 것은 2019년 d/p에서 열린 전시 〈마고〉에서다. 자전적 서사에서 출발해 네 여성의 이야기를 엮어낸 이 전시는 밀도 있는 내용을 담으면서도 과하게 힘주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삶과 작업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는 방식은 사진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후 발표한 작업 역시 꾸준히 시선을 붙들었다. 특히 사진과 출판을 함께 이어가는 작가의 실천은 단순한 이미지 생산을 넘어 하나의 세계를 천천히 축적해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의 책과 이미지에는 서정적이면서도 치열하고, 슬프면서도 따뜻한 감정이 동시에 스며 있다. 줄곧 스냅사진 형식을 고수해온 황예지의 작업은 무던히 일상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바로 그 일상을 통해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정 사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관계와 감정, 신체를 둘러싼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적 조건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보여준다. 나아가 여성의 서사와 동세대의 삶, 사회적 사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사회를 감각하게 하며 직접적 고발이나 상징적 재현 대신 개인의 감정과 관계를 통해 시대를 인식하게 한다. _박가희 광주비엔날레 2026 큐레이터
곽소진
곽소진을 각인시킨 것은 강렬한 이미지 한 컷보다 이미지를 성립시키는 조건 자체를 작업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태도였다. 그에게 촬영은 대상을 포획하는 절차가 아니라 오히려 촬영자의 몸과 카메라, 피사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사건’을 형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완결된 서사보다 접촉과 마찰, 비가시적 긴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작업은 첫 만남부터 유독 신선했다. 작품을 마주하면 화면 속 이미지보다 화면 바깥에서 작동하는 관계의 밀도가 먼저 감지되듯이, 영상은 스크린에 머물지 않고 사운드와 설치, 퍼포먼스로 번져나가며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감각 장치로 조직한다. 작가의 작업은 오늘날 영상이 직면한 문제를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다시 질문한다. 매끈하게 표준화된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작가는 오히려 영상의 장소성과 신체성을 회복시킨다. 카메라는 세계를 투명하게 재현하는 눈이 아니라 세계와 부딪치고 협상하는 몸의 연장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무빙 이미지를 재생되는 파일이 아닌 ‘공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으로 전환하는 작가의 시도는 동시대 영상 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예민하게 가리킨다. 휘발되는 감각을 거슬러 이미지가 다시 몸에 닿고 새로운 관계를 발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곽소진은 우리가 이미지를 보고 듣고 통과하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_추성아 독립 큐레이터
서인혜
서인혜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익숙하지 않은 작업에서 드물게 느껴지는 ‘정성스러움’이었다. 작가는 우리 삶과 역사를 지탱해왔지만 중심부에서 밀려난 존재와 이야기에 주목하며, 수집한 서사를 ‘물질적 전이’를 통해 기록하고 재조합한다. 특히 앞선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연대와 노쇠한 몸의 물질성, 지역의 역사성을 직접 현장에서 탐구하며,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야기와 이미지가 스스로 발화하기를 기다린다. 초기의 ‘버무려진’ (2016~2018) 연작부터 2022년 진행한 개인전 〈딩아 돌하〉, 최근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한지와 비단에 스민 붉은 흔적, 몸뻬 문양, 나무껍질과 피부를 닮은 표면 등은 촉각을 자극하는 감각의 장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은 과거를 응시하면서도 돌봄과 상실, 노화와 죽음, 사적 역사의 소실처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늘의 문제를 향한다. 특히 2025년 개최한 개인전 〈별비늘 호텔〉은 요양 시설로 변화한 양주 장흥의 유원지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이 자본의 순환 시스템에 편입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야기 돌봄’을 통해 사라지는 신체와 개인의 역사를 예술이 어떻게 붙들 수 있는지 질문한다. _장혜정 두산아트센터 수석 큐레이터, WESS 공동 조직자
이병재
아티스트 컬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 출신 작가 이병재와 사진가 이윤호가 을지로에 ‘신도시’를 연 지 벌써 11년이 됐다. 그사이 을지로는 천지개벽하듯 변했지만 신도시는 여전히 그 이름처럼 별천지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작업실, 공연장, 출판사, 바가 한 건물 안에서 중첩되어 작동하는 이곳은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폐업한 가게의 간판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거나 재활용센터에서 구한 버려진 것들을 쌓아 올린 방식은 오브제 단위의 레디메이드를 넘어 공간 자체를 매체로 다루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작업의 단위를 개별 결과물이 아니라 공간의 지속적 작동에 두며 그 안에서 공연과 출판 등 동료들의 활동이 파생되는 창작의 조건을 설계한다. 이들의 활동은 작품, 작가, 제도의 단선적 구조에 균열을 내는 포스트-스튜디오 실천으로 읽힌다. 공공 기금의 한계를 넘어 이들이 택한 키워드는 ‘자생’이었다. 매출로 임대료를 감당하고 리소 인쇄기로 출판을 이어가는 방식은 예술 생산의 기반을 개인의 스튜디오에서 하나의 사회적 인프라로 옮겨놓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쓸고 간 을지로 한복판에서 제도와 자본 바깥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장소 자체로 증명해온 11년. 이들의 동시대성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지속시켰는가’에 있다. _김재석 엑스라지 디렉터
최윤희
한 작가의 작업과 연결되는 일은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필연처럼 다가온다. 작가의 시선이 향한 지점이 어느 순간 나의 시간과 교차할 때, 세대를 넘어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그것은 작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작업적 성취와 동시대적 고민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이며,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의 작업과 사유에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윤희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19년 파주 미메시스미술관 전시에서다. 회화를 기반으로 내부와 외부의 풍경을 연결하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당시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2024년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 〈Tuning In〉을 통해 그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작가의 화면 속 이미지들은 사각 프레임 안에 머무르지 못한 채 화면 밖으로 확장될 것처럼 보였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계속 상상하게 했다. 그 대화를 이어가며 올해 8~9월 지갤러리와 PCO 개인전을 함께 준비 중인 그는 시대의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자신의 리듬을 견지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 기존의 것을 낡거나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밀어내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의 회화 안에서 갱신해나간다. 작아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그 태도야말로 지금 동시대 미술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으로 다가온다. _맹지영 독립 큐레이터
리이판
2024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에서 본 리이판(Li Yi-Fan) 작가의 단채널 영상 ‘What is Your Favorite Primitive’는 괴상하면서도 우습고, 불편하지만 이상하게 집중하게 하는 작업이었다. 테크 기업의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취한 영상 속 인물은 디지털 이미지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다루다 점차 통제력을 잃고, 도구를 다루기보다 오히려 도구에 끌려가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영상 속 어색하고 뒤틀린 3D 이미지와 기묘한 유머는 쉽게 소비되지 않으며 묘한 불편함을 안겼고, 우리가 이미지를 만든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았다. 이후 말뫼 그룹전과 베를린 개인전까지 직접 찾아보며 이 작가를 주목하게 된 결정적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그는 디지털 환경을 하나의 ‘주제’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형성된 감각 구조 자체를 드러낸다. 과잉 이미지와 빠른 전환, 높은 밀도의 정보는 몰입과 피로, 무감각을 동시에 유발하며 오늘날 플랫폼 환경의 감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또한 그의 작업은 하나의 주체가 완성한 결과물이라기보다 이미지와 알고리즘, 시스템이 얽혀 생성된 흐름 자체를 조명하며, 이미지의 기원과 주체성에 대한 고정된 관념까지 흔들어놓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오늘날 플랫폼 환경 속 디지털 아트가 만들어낼 새로운 언어를 주목하게 한다. _이설희 덴마크 MAPS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 총괄 & 상임 큐레이터
김윤영
2023년 래빗앤타이거에서 열린 김윤영의 개인전 〈음파음파〉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리넨에 수놓은 신체 이미지였다. 바늘이 천을 뚫고 지나간 자국은 문신처럼 피부에 새겨진 감각을 불러냈고, 촉각보다 통각에 가까운 반응을 남겼다. 특히 ‘Mitfühlen’과 ‘Volcano’가 오래 뇌리에 남았다. ‘공감하다’라는 제목으로 서로 맞닿은 두 존재의 전혀 다른 내부 풍경을 담아낸 ‘Mitfühlen’과 화산을 배경으로 신체 내부의 장기와 뿌리가 뒤엉켜 외부의 격렬함과 내면의 혼돈이 하나 된 ‘Volcano’. 가다 아메르나 함경아의 자수 작업이 에로틱하거나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신체를 소환한다면, 김윤영의 작업은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아프다. 그의 작업이 동시대적인 이유는 자수를 여성성과 공예, 비예술의 영역에 머물게 하지 않고, 논리나 선언이 아닌 ‘살아냄’의 방식으로 전복한다는 점에 있다. 독일에서 경험한 언어적 고립과 이방인의 감각은 오히려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었고, 그는 이민자와 유학생들의 기억을 수집하며 뿌리가 달라도 몸에 새겨진 감정의 결은 닮았다는 점을 포착한다. 몸의 내부를 데이터로 변환하는 시대에, 오히려 작가는 바늘로 한 땀씩 감정의 풍경을 꿰매며 취약함과 돌봄의 감각을 조용히 드러낸다. _박지인 PS센터 대표
옌나 수텔라
옌나 수텔라(Jenna Sutela)는 살아 있는 시스템을 매개로 자연과 기술의 경계를 미학적으로 재정의하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 ‘nimiia cétiï’는 인간의 장내 박테리아이자 우주 비행 연구에도 활용되는 바실루스서브틸리스의 움직임을 컴퓨터 서체와 사운드로 변환한 작품이다. 19세기 말 화성과 교신한다고 주장한 영매 헬렌 스미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업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데이터 언어로 번역해낸다. 헬싱키 스튜디오에서 그를 처음 만난 후 아테네 비엔날레와 뉴욕 스위스 인스티튜트 그리고 최근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핀란드관까지 긴밀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 생성형 AI 같은 신기술은 인간의 의식과 윤리의 경계를 허물며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기술적 화두를 누구보다 앞서 사유하면서도, 이를 놀라울 만큼 인간적이고 유쾌한 감각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업은 기술 발전의 방향에 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매혹적인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_슈테파니 헤슬러(Stefanie Hessler) 스위스 인스티튜트 디렉터
CFGNY
대니얼 추(Daniel Chew), 텐 이즈(Ten Izu), 틴 응우옌(Tin Nguyen)으로 이루어진 뉴욕 기반의 아티스트 컬렉티브 CFGNY. 설치와 조각을 중심으로 작업하며, 특히 리서치에 유희와 유머를 결합해 디아스포라적 맥락 안에서 퀴어성과 집단성 그리고 ‘어딘가 아시아적인(vaguely Asian)’ 감각을 탐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올 봄과 여름 뉴욕에서 열리는 휘트니 비엔날레와 파이어니어 워크스의 〈The Endless Garment: Atlantic Basin〉, 그리고 아만트의 개인전 〈Puddles into Pond〉를 통해 이들은 도시 전역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CFGNY는 지금 시대에 필요한 협업과 공동 창작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아만트 전시에서는 브루클린 스튜디오에 동료 작가들을 초대해 함께 도자 조각을 제작했는데, 숙련된 자와 처음 흙을 다루는 이들이 한 공간에서 공동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작업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다이앤 세브린 응우옌(Diane Severin Nguyen), 엘리엇 리드(Elliot Reed), 로터스 L. 강(Lotus L. Kang) 등 다양한 작가와 함께 구축한 설치 환경은 개별 작업의 합을 넘어서는 몰입적 경험을 만들며, 동시대 예술계에서 집단적 저자성과 협업의 가능성을 새롭게 드러낸다. _크리스토퍼 Y. 류(Christopher Y. Lew) C/O 대표
최윤
확장된 뉴 뮤지엄의 첫 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인 최윤은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 도자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다루는 매체의 폭이 넓을 뿐 아니라 아이디어와 이미지, 형식이 하나의 고정된 언어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은 예측할 수 없는 유희적 방식으로 전개되면서도, 오늘날 시각 문화에서 우리가 흡수하는 유머와 불안, 갈망 같은 집단적 감정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동아시아의 역사부터 동시대의 일상적 이미지를 정밀하게 엮어내며, 정지된 이미지를 하나의 생동하는 사회적 성찰의 장으로 전환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최윤의 작업에서 ‘동시대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우리가 물려받고 변형하는 이미지와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구어적 표현과 상업적 간판, 사회적 의례 같은 언어와 상징은 그의 작업에서 갑작스럽게 낯설고 어긋난 감각으로 변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각 문화와 언어 문화가 축적된 역사와 욕망의 결과물임을 드러내며 현재라는 감각이 어떤 불안정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지 가시화한다. _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 뉴욕 뉴 뮤지엄 예술감독
브론윈 카츠
브론윈 카츠(Bronwyn Katz)의 작업을 처음 본 것은 2018년 SAM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다. 중고 박스 스프링 침대에서 가져온 금속 코일을 나선 형태로 엮은 조각과 실처럼 가느다란 추상 구조물들은 공간 안에 연약하지만 강렬한 경계와 장벽을 만들어냈다. 그 구조는 강제 이주와 정치권력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직관적으로 환기시켰고, 물질 자체가 기억과 감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인상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 킴벌리 출신인 카츠는 유기물과 광물 재료,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에너지를 사운드와 퍼포먼스, 설치로 확장하며 잊힌 원주민의 지식과 연결해왔다. 이렇듯 브론윈은 사회구조에 내재한 불평등과 환경적 조건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이 자연과 연결되어 느끼는 치유의 힘에도 주목한다. “우리는 모두 흙에서 왔다”고 말하는 작가는 땅을 기억의 저장소이자 언어의 매개로 바라보며, 자신의 사운드 녹음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언어 체계를 구축한다. 코로나19 이후 현실의 감각과 연결에 대한 갈망이 커진 오늘날, 카츠의 작업은 자연의 회복력과 인간 사이의 근원적 연결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_자나 바우만(Jana Baumann)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시니어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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