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최근 발생한 중앙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국내 콘텐츠 산업 전반에 대한 악화 우려로 번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중앙그룹은 최근 JTBC, 중앙홀딩스,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피앤아이 등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를 서울회생법원에 신청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JTBC와 콘텐트리중앙이 있다. 콘텐트리중앙은 드라마 'D.P.', '옥씨부인전' 등 다수의 흥행작을 제작한 국내 대표 콘텐츠 기업이다. 올해 극장가 최대 흥행작으로 꼽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투자·배급도 맡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대형 콘텐츠 기업의 자금 사정이 악화될 경우 중소 제작사와 스태프, 창작자들에게까지 연쇄적으로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 콘텐츠 성장 공식의 균열
업계가 이번 사태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 산업 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디어 업황에서는 트로트 프로그램처럼 제작비 대비 수익성이 높은 콘텐츠가 아니면 투자 판단이 쉽지 않다"며 "중앙그룹은 CJ그룹처럼 식품·물류 등 안정적인 현금창출 사업을 갖춘 구조가 아닌 상황에서 메가박스 인수와 대규모 콘텐츠 투자 등 외형 확대에 집중하면서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콘텐트리중앙은 연결 기준 2024년 919억원, 2025년 93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237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영업손실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지만 차입금 이자와 금융비용 부담이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핵심 제작 계열사인 SLL도 비슷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SLL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성장기에 공격적으로 드라마 제작 편수를 늘리며 몸집을 키웠다. 글로벌 OTT 사업자들의 콘텐츠 투자 확대와 K-콘텐츠 열풍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유효했던 전략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플랫폼들의 투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제작비가 급등하면서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졌다.
기업공개(IPO)가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회사채와 전자단기사채를 활용한 자금 조달 의존도도 높아졌다. SLL은 최근 수년간 6~8%대 금리로 회사채와 전단채를 발행해 운영 자금을 조달해왔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SLL의 단기차입금과 유동성 사채 규모는 약 2400억원 달했다. 반면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639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을 신규 차입으로 상환하는 차환 구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콘텐츠 생태계 전반으로 번지는 긴장감
업계가 우려하는 대목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콘텐츠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SLL은 올해 1분기에만 콘텐츠 사용료로 739억원을 비용 처리했다. 여기에는 드라마 제작비를 비롯해 외주 제작사 정산금, 저작권료, 작가료, 출연료, 스태프 인건비 등이 포함된다.
SLL 산하에는 하이지음스튜디오, 클라이맥스스튜디오, 프로덕션H, 비에이엔터테인먼트, 필름몬스터 등 다수의 제작사가 포진해 있다. 향후 투자 축소나 제작 편수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관련 제작사와 창작 인력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기준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흥행작 확보와 공격적인 투자만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었지만 OTT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고 제작비와 금융비용이 급증하면서 단순한 흥행만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구조가 더 중요해졌다"며 "중앙그룹 사태는 국내 콘텐츠 산업이 양적 성장에서 수익성 중심의 성장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상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 같은 미디어 그룹 CJ ENM, 캐시카우 확보
영화관, 방송채널, 콘텐츠 제작·배급을 아우르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춘 CJ ENM 역시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일부 주주들은 JTBC를 둘러싼 중앙그룹 유동성 위기를 언급하며 CJ ENM의 사업 구조에도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CJ ENM 역시 콘텐츠 투자 확대 과정에서 실적 부진을 겪었다. 광고 시장 침체와 티빙의 적자 지속, 제작비 상승 등의 영향으로 주가가 장기간 부진했고 유상증자 추진 과정에서는 기존 주주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는 CJ ENM과 중앙그룹의 가장 큰 차이로 안정적인 현금창출원 보유 여부를 꼽는다.
CJ그룹은 작년 그룹의 SI 기업인 CJ올리브네트웍스를 CJ ENM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편입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그룹 내 IT 시스템 구축과 디지털 전환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로 콘텐츠 사업 대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콘텐츠 사업의 실적 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는 캐시카우를 확보한 셈이다.
이에 따라 부채 규모가 3조원을 웃돌더라도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기반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차입금 차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앙그룹과는 재무 구조의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산업의 성장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최근에는 흥행 가능성보다 투자 대비 수익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디어 기업들의 경영 전략도 외형 성장보다 재무 건전성과 현금흐름 관리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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