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TV 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기존의 원거리 중계 화면 대신, 그라운드 한가운데서 선수들과 같은 시선으로 펼쳐지는 생생한 명장면을 목격했다. 황인범 선수가 상대 진영을 파고들어 찌른 찔러준 패스부터 오현규 선수의 자로 잰 듯한 왼발 슈팅까지, 시청자들은 마치 경기장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경험했다.
이 극적인 장면을 포착한 주인공은 심판의 귀 옆에 장착된 무게 14g의 초소형 카메라, 이른바 ‘레프리캠(Ref Cam)’이다.
동전만큼 가벼운 레프리캠이 촬영한 초고화질 영상이 단 수 초 만에 안방까지 배달되기 위해서는 초저지연 네트워크와 가공할 만한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월드컵 그라운드가 단순한 스포츠 축제를 넘어,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의 최첨단 경연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경기 운영 전반에 인공지능(AI) 기술이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경기장과 관중, 운영 시스템은 물론 중계·방송 인프라까지 전 분야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기반 AI 운영체계’ 아래 촘촘히 연결됐다.
이번 대회 공식 기술 파트너인 레노버(Lenovo)의 ‘인텔리전트 커맨드 센터’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AI가 대회의 모든 운영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인파 혼잡도를 관리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경기 운영에 관한 일일 브리핑 요약본까지 AI가 자동으로 생성해 제공하는 등, 2026 월드컵은 AI가 완성하는 ‘스마트 경기장’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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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경기장서 인파 시뮬레이션… ‘디지털 트윈’이 지키는 안전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번 대회에서 현실과 똑같은 16개의 경기장을 가상 공간에 그대로 복제했다. 이른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이다.
FIFA는 가상 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일시에 몰리는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했다. 이를 통해 병목 현상이 발생하거나 인파가 밀집할 것으로 예상되는 구역을 사전에 파악하고, 관중 분산 유도 동선과 안전요원 배치 등 선제적인 안전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이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 경기장 이면에서는 치열한 ‘컴퓨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준 레노버 코리아 부사장은 “이번 월드컵은 실시간에 가까운 데이터 처리와 초저지연 콘텐츠 전송, 그리고 안정적인 온프레미스(자체 구축 구축) 컴퓨팅 역량이 동시에 요구된다”며 “모든 방송 전송과 경기 운영 요건을 원격 클라우드 시스템만으로 충족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레노버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국제방송센터(IBC)에 고성능 서버 시스템을 전면 배치했다. 아울러 각 경기장과 팀 베이스캠프 훈련 시설 전반에 1만 7,000대 이상의 레노버 및 모토로라 디바이스를 공급하고, 200명이 넘는 전문 엔지니어를 현장에 투입해 기술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팀에 배정된 AI 보조 코치, ‘풋볼 AI 프로’
선수단 벤치 풍경도 AI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대회에서 첫선을 보인 ‘풋볼 AI 프로(Football AI Pro)’는 참가팀의 감독과 분석가들에게 전술적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전공책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수백만 개의 경기 데이터와 지표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상대의 전술 패턴과 선수의 움직임 등 핵심 정보를 텍스트와 직관적인 시각화 자료로 요약해 주는 ‘AI 지식 어시스턴트’다.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경기 전 상대 팀의 전술적 약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경기 후에는 우리 선수의 퍼포먼스를 한층 세밀하게 복기할 수 있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AI 데이터 분석 솔루션은 존재했지만, 막대한 비용 탓에 주로 자본이 풍부한 일부 축구 강국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FIFA가 공식 공통 플랫폼으로 전격 도입하면서, 월드컵에 출전한 모든 대표팀이 데이터에 기반한 ‘AI 보조 코치’를 평등하게 거느릴 수 있게 됐다. 정보력의 격차가 줄어든 만큼, 이번 월드컵의 전술 대결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월드컵 상징 ‘공인구’…물리학 넘어 데이터 창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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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인구 역시 대회마다 기술 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월드컵 공인구는 1970년 멕시코 대회 ‘텔스타’를 시작으로 공식 후원사인 아디다스에서 제작해왔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공인구 ‘트리온다(TRIONDA)’는 내부에 초당 500회 데이터를 측정하는 500Hz IMU(관성측정장치)가 탑재됐다. 이를 통해 공의 속도와 가속도, 회전 정보, 터치 시점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다. 공이 선수의 발에 닿는 순간부터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회전했는지까지 데이터화되는 셈이다. 수집된 정보는 SAOT(반자동 오프사이드 판정) 등 판정 보조와 AI 기반 경기 분석에 활용된다.
트리온다의 또 다른 특징은 진화한 ‘커넥티드 볼 테크놀로지’다. 기존 공인구는 중앙에 센서를 배치했지만 이번에는 4개 패널 중 한 곳에 특수 레이어 형태로 센서를 내장했다. 나머지 패널에는 균형추를 넣어 무게 중심을 유지했다.
이러한 4패널 특성 때문에 트리온다가 이전 공인구보다 방향 의존성이 강한 공기역학적 특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울여대 스포츠운동과학과 홍성찬 교수와 일본 쓰쿠바대학교 아사이 다케시 교수 연구팀이 최근 논문을 통해 고지대는 공기 밀도가 낮아 공기 저항이 줄어 트리온다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패널 수가 줄어들수록 방향에 따른 공기역학적 차이가 커진다”며 “트리온다는 이전 공인구보다 강한 방향 민감도를 가진 공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대한민국이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는 멕시코는 해발 1550m가 넘는 고지대여서 이번 공인구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다”고 조언했다.
◇“손흥민 골 넣고 2분 뒤 인스타 업로드”… 하이라이트도 AI가 자동 제작
중계와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도 AI의 활약이 돋보인다. 기존에는 사람이 일일이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 자르고 편집해 플랫폼에 올리느라 편당 15~30분이 걸렸지만, 이제는 AI 자동화 솔루션을 통해 단 수 분 만에 끝마친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인 이스라엘 기술기업 ‘WSC 스포츠’는 AI가 경기 중 주요 장면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세로형 숏폼 등 다양한 하이라이트 클립을 자동으로 제작·배포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만 전 세계 35개 이상의 방송사가 이 기술을 채택했다.
WSC 스포츠 관계자는 “지난 카타르 월드컵 당시 64개 경기에서 3만 개 이상의 하이라이트를 생성해냈다”며, “미국 프로축구(MLS)의 경우 손흥민 선수가 골을 터뜨리면 단 2분 만에 공식 인스타그램에 해당 하이라이트 영상이 업로드될 정도로 제작 공정을 혁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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