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필수의약품 가격 인상과 제네릭 약가 인하, 혁신 신약 우대,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약가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면서 의약품 공급을 안정시키고 제약산업까지 육성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서로 다른 목표가 충돌하며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도 불분명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특히 항생제와 소아용 의약품, 마취제, 수액제 등 치료 현장에서 필요한 약의 공급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모 급여화가 다시 추진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필수약 생산 기반을 먼저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청년층의 치료비 부담도 건강보험이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서는 모습이다.
정부는 유전적 요인이 큰 남성형·여성형 탈모까지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원형탈모와 지루성 피부염 등 질환에 따른 탈모에만 보험이 적용.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 청년층의 치료비 부담은 낮아질 수 있지만, 수천억원 규모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약업계에서는 탈모약 시장에 이미 값싼 제네릭이 다수 출시된 만큼 고가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보다 보장성 확대가 시급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필수약은 낮은 가격으로 생산 중단이 반복되는데 상대적으로 미용 성격이 강한 치료에 재정을 먼저 투입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정부도 필수약 공급 문제에 대응해 오는 8월부터 퇴장방지의약품 기준금액을 최대 10% 올릴 계획이다. 내복제 기준 금액은 525원에서 578원, 주사제는 5257원에서 5783원으로 조정된다. 생산 중단 가능성이 큰 품목을 정부가 직권으로 지정하고 별도 가산을 적용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원료비와 인건비, 물류비 상승 폭을 고려하면 10% 인상만으로 적자 구조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상당수 필수약은 오래전에 정해진 낮은 가격에 묶여 있어 생산량이 늘수록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품목별로 가격을 한 차례 올리는 방식보다 실제 제조원가 변화를 반영하는 조정 체계와 장기 공급계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재정 절감을 위한 제네릭 약가 인하도 업계 부담을 키우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는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53.55%인 제네릭 산정률을 45% 수준으로 낮출 예정이다. 동일 성분 제품이 일정 개수를 넘으면 가격을 추가로 깎는 방안도 추진. 이미 등재된 제품은 향후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제네릭 난립을 줄이고 건강보험 지출을 효율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제네릭 판매 비중이 높은 중소 제약사는 수익 감소가 연구개발과 고용 축소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약사들이 운영비와 외부 활동비를 줄이면서 학술대회 지원과 지역 의료교육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도 의료계에서 나온다.
약가를 낮춰 재정을 절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추가 지출이 필요한 정책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이 개발한 의약품에 우대 가격을 적용하고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비용효과성 기준 완화 등을 차례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높이고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제네릭 인하로 아끼는 금액보다 혁신약 우대와 신속등재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전체 재정 소요와 정책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건강보험 재정을 산업 지원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도 실효성 논란에 놓였다. 정부는 국내에서 직접 생산한 원료를 사용한 제네릭에 오리지널 가격의 68%를 10년 이상 인정할 방침이다. 일반 제네릭 산정률과 비교하면 큰 혜택이지만, 완제약 회사가 원료까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국내 주요 제약사는 생산설비와 품질관리, 인허가 체계가 다른 원료 사업을 별도 자회사에서 운영한다. 유한양행은 유한화학, 종근당은 경보제약과 종근당바이오, 대웅제약은 대웅바이오, 한미약품은 한미정밀화학을 통해 원료를 생산한다. 현행 기준대로라면 이들 기업은 우대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혜택의 폭은 크지만 실제 적용받을 기업이 거의 없는 ‘보여 주기 식 인센티브’에 그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개별 제도에는 각각 재정 절감과 공급 안정, 환자 접근성,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정책별 비용과 우선순위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제네릭에서 줄인 재정을 혁신약과 탈모 치료에 투입하고, 필수약 공급이 끊긴 뒤 다시 가격을 올리는 임시 대응이 반복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필수의약품은 생산할수록 손실이 발생하고 국산 원료 우대는 실제 산업 구조와 맞지 않는데, 한편에서는 탈모 급여화와 혁신약 지원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며 “개별 품목의 가격을 올리고 내리는 방식보다 생산원가와 공급 위험, 환자의 치료 필요성, 건강보험 재정 여력을 함께 따지는 약가체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