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직원들의 AI 역량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명확한 기준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교육과 채용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평가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기반 온라인 테스팅 플랫폼 기업 그렙은 17일 국내 중견·대기업 HR 담당자와 경영진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대한민국 기업 AI 역량 진단’ 리포트를 공개했다. 조사는 지난 4월 17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됐으며, 응답자의 68%는 임원·부장급으로 구성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AI 역량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실제 측정과 관리는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역량이 기업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항목의 평균 점수는 3.76점이었지만, ‘조직의 AI 역량 수준을 파악하고 있다’는 응답은 평균 2.63점에 머물렀다. 두 항목 간 격차는 1.13점으로 집계됐다.
특히 AI 역량을 정의하는 기준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 확인됐다. 응답 기업 가운데 ‘AI 역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반면 기준이 없거나 비공식적으로만 운영된다는 응답은 66.5%에 달했다.
기업들이 AI 역량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는 팀과 직무별 활용 수준 차이(45.0%), AI 활용과 성과(ROI)를 연결하기 어려운 점(43.0%), 객관적 평가 기준 부재(42.5%) 등이 꼽혔다.
문제는 교육과 채용 현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조사 대상 기업의 84.2%는 향후 1년 내 AI 교육 도입 계획이 있다고 답했지만, 이 가운데 79.0%는 효과를 측정할 기준이나 적절한 평가 도구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채용 과정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신입 및 경력 채용에서 AI 역량 중요도는 평균 3.20점으로 높게 평가됐지만, 실제 평가 단계에서는 ‘적절한 평가 도구가 없다’는 응답이 42.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상당수 기업이 여전히 서류 평가와 면접 중심 채용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이 선호하는 평가 방식은 뚜렷했다. 응답자의 40.5%는 ‘실무 과제 평가’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택했다. 반면 이론과 지식 위주의 평가는 7.5%로 가장 낮은 선호도를 기록했다. 평가 결과 활용 목적 역시 개인 서열화보다 ‘조직 전체 역량 진단’(54.5%)에 집중되는 모습이었다.
그렙은 이런 수요에 대한 대안으로 ‘AI 역량 루브릭(AI Competency Rubric)’을 제시했다. 직무별 AI 활용 수준을 단계별 행동 지표로 세분화하고, 결과물뿐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까지 평가하는 체계다.
예를 들어 데이터 분석 과제에서는 결과 정확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 정의 과정, 데이터 교차 분석 여부, 의사결정 기준의 일관성 등을 함께 평가한다. 단순히 AI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넘어 실제 업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측정하겠다는 접근이다.
최근 기업들의 AI 투자 확대와 함께 ‘AI 활용 역량’이 새로운 인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AI 활용 경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아직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의 과제로 남아 있다. AI 역량이 또 하나의 정성 평가 영역으로 남을지, 데이터 기반 평가 체계로 발전할지는 향후 시장의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윤성혜 본부장은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AI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 것인지를 통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진정한 AI 역량”이라고 말했다.
임성수 대표는 “기업들이 AI 역량을 정의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량화할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직무별 행동 지표를 기반으로 한 AI 역량 루브릭이 교육, 채용, 조직 진단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AI가 업무 환경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관심은 ‘AI를 도입할 것인가’에서 ‘AI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객관적인 AI 역량 측정 체계가 새로운 HR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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