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신작 '아코디언',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힘든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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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신작 '아코디언',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힘든 작업"

연합뉴스 2026-06-17 13:46: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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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장편소설 출간…한국전쟁 직후 '앵벌이' 아이 생존기 그려

"그 시대 노래들에 바치는 헌사…인생 마지막은 소설 쓰며 보낼 것"

3년 전 '고래'로 부커상 최종후보…"인생에서 재미있었던 해프닝"

인사말 하는 천명관 작가 인사말 하는 천명관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6.17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개작을 하다보니 처음에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제가 원래 글을 어렵게 쓰지는 않는 편인데, 이 책이 제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가장 힘든 작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지난 2023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한국 문단의 '독보적 이야기꾼' 천명관(62)이 10년 만에 장편소설 '아코디언'으로 돌아왔다.

천 작가는 17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아코디언' 집필 과정 등을 풀어냈다.

'아코디언'은 2016년 발표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이후 10년 만의 신작.

본래 '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2012년 창비 블로그에 연재한 작품으로, 대대적인 개작을 거쳐 책으로 묶여 나오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문단과 영화계를 오가며 활동해온 그는 "사십 대에 (소설가로) 데뷔해서 1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다가 다시 병이 도져서 영화를 한다고 또 10년을 보내고, 오랜만에 다시 책을 내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처음엔 꽤 두꺼운 책을 쓰려고 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생각이 바뀌고 감각이 바뀌었다"며 "1천매 넘는 분량을 300매 정도 줄이고 다시 구상해서 전체를 완전히 다시 바꿔 썼다. 스타일도, 문체도, 구성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처음 작품 연재는 1년 가까이 이어졌으나, 이번에 작품을 고쳐 쓰는 데만도 2년이 걸렸다고 그는 덧붙였다.

작품은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거리로 내몰렸던 앵벌이 아이들의 생존 투쟁을 다뤘다.

주인공은 피난길에 엄마의 손을 놓친 바람에 고아가 된 '동이'. 동이는 떠밀리듯 '양 목사'가 거느린 앵벌이 움막에 정착하게 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양 목사의 거짓된 자비와 폭력, 굶주림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아비규환이다.

작가는 이런 거칠고 비루한 삶의 밑바닥에서 뜻밖의 빛을 포착해낸다. 동이의 운명을 바꾼 것은 고물 덩이 가운데 주운 한 대의 아코디언이었다.

신작 장편소설 '아코디언' 펴낸 천명관 작가 신작 장편소설 '아코디언' 펴낸 천명관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6.17 ryousanta@yna.co.kr

한번 들은 가락을 손끝으로 되살려내는 동이를 중심으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맑고 깊은 목소리를 지닌 소녀 '연이', 두 다리로 걷지 못하지만 영리한 두뇌로 세상의 이치를 읽어내는 '거북이' 등이 만나고 어우러지며 '생의 합주'를 생동감 있게 들려준다.

아이들은 자신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연주할 수 있는 존재란 사실을 깨닫고, 착취의 올가미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천 작가는 "'고래'를 쓰고 난 뒤 한국전쟁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저도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한국전쟁이야말로 인류사에 드문 끔찍한 거대한 비극이면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의 진영을 만든 근원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작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며 "가장 비참한 밑바닥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에 끌렸다"고 '앵벌이'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 책에서 음악은 단순한 소재를 넘어 그 자체로 시대를 반영한다.

'럭키 서울', '목포의 눈물', '슈산 보이', '홍콩아가씨', '베사메 무초' 등 당대 유행가로 이어지는 각 장의 제목은 시대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인사말 하는 천명관 작가 인사말 하는 천명관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천명관 작가가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장편소설 '아코디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6.17 ryousanta@yna.co.kr

작가는 "당시 노래들은 민중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었고, 우리의 상처와 트라우마, 익살과 아이러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도 담아냈다"며 "그 노래들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며 많은 영감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그 시대의 노래들에 바치는 헌사"라고 밝히기도 했다.

천명관은 영화와 소설을 오가며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영화 '총잡이'(1995), '북경반점'(1999), '이웃집 남자'(2009) 등의 각본을 쓰며 영화인으로 살았지만, 마흔 무렵까지 영화감독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 무렵 처음 쓴 단편 소설 '프랭크와 나'가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2004년엔 장편 '고래'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이후 '유쾌한 하녀 마리사',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건히 다졌으며, 2022년 개봉한 누아르 영화 '뜨거운 피'로 영화감독의 꿈도 이뤘다.

무엇보다 '고래'가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소설가로서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천 작가는 당시 최종 후보에 올랐던 소감을 묻자 "제 인생에서 재밌는 해프닝이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어느덧 환갑을 넘긴 그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50대 때 다시 영화를 하면서 '10년은 영화를 해보자. 그 이후 마지막에는 소설을 쓰면서 남은 삶을 보내지 않을까'라는 구상을 했어요. 앞으로도 소설은 계속 쓸 것입니다. 밀려있는 집필 스케줄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계속 달려야 할 것 같네요."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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