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손충당금 4조 2300억 폭탄 털어낸 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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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손충당금 4조 2300억 폭탄 털어낸 건설사

폴리뉴스 2026-06-17 12:23:25 신고

10대 건설사 대손액 2조 847억원 [이미지=AI생성]
10대 건설사 대손액 2조 847억원 [이미지=AI생성]

건설사가 아프면 대한민국 경제는 독감에 걸린다. 과장 섞인 엄살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1.1%로 주저앉았고, 그 중심에는 -9.7%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낸 건설업이 있다.

아파트 현장 하나가 멈추면 철근과 시멘트 공장이 서고, 레미콘 트럭이 시동을 끄며, 현장 식당과 동네 철물점, 자금을 댄 지역 금융권까지 줄줄이 쓰러진다. 이 거대한 도미노의 맨 앞줄에 있는 10대 건설사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국가 경제를 지키기 위해 정부의 '구제 튜브'가 던져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숫자로 증명된 이들의 민낯을 마주하고 아주 상식적이고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최근 주요 건설사들의 장부를 보면 수천억, 많게는 조 단위의 적자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업계는 이를 '빅배스(Big Bath)'라고 부른다. 과거의 부실이나 묵은 때를 한 번에 밀어내고 '깨끗한 장부로 새출발하겠다'는 일종의 회계적 마법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뜯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문제없다"던 장부였다. 그런데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10대 건설사의 대손충당금(돈을 떼일 것에 대비해 쌓아두는 돈)은 작년 한 해에만 약 2조 원이 폭증해 총 4조 2,300억 원에 달했다.현대엔지니어링은 2023년 2,500억 원대 흑자에서 2024년 1조 2,401억 원의 대규모 영업손실로 돌아섰고, 부채비율은 225.5%로 치솟았다. 대우건설 역시 '빅배스'를 단행하며 8,15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부채비율은 284%까지 급등했다. 

문제는 손실을 감당하는 방식에 있다. 조 단위의 적자를 장부에 적어낸 그 해, 건설사 직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2024년 말 5만 2,233명이던 10대 건설사 직원은 1년 새 5.5%인 2,863명이나 줄었다.  DL이앤씨는 무려 847명을 내보내며 감원 1위를 기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합병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635명을 줄였고, GS건설(487명)과 대우건설(357명)도 인력을 대거 축소했다.

롯데건설 역시 희망퇴직의 칼을 빼들었다. 감원된 인력의 상당수는 현장을 뛰던 기간제 노동자들이었다. 반면, 수십억 원의 임원 보수와 주주 배당은 사실상 제자리를 지켰다. '손실은 말단 현장 직원이 책임지고, 이익과 보너스는 윗선이 챙기는' 기형적 구조가 고스란히 숫자로 드러난 셈이다.

국가경제 방어 차원서 정부 개입 필요

한국 경제가 반복되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정부의 자금 지원 앞에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깐깐한 조건표가 붙어야 한다. 지금처럼 "다 합쳐서 4조 원 충당금 쌓았어요"라고 뭉뚱그려 발표할 일이 아니다. 어느 사업장, 어느 시행사에게 얼마를 물렸는지 철저히 공시해야 한다. 옥석을 가려내지 않으면 세금은 밑 빠진 독으로 흘러간다.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은 임원 보수 동결, 배당 제한, 과거 부실 결재 라인에 대한 내부조사 결과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회사는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직원을 수백 명씩 자르는데, 임원들은 억대 연봉을 챙기는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

현재 10대 건설사들의 영업현금흐름은 반토막이 났다. 건설사 금고에 돈이 마르면 가장 먼저 쥐어짜이는 곳은 힘없는 하도급 업체들이다. 원청 건설사를 살려주는 궁극적 목적은 하청업체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함이다. 하도급 대금 지불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장치 없이 유동성만 공급한다면, 대기업 금고만 채우고 하단 생태계는 붕괴하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

10대 건설사가 털어낸 수조 원의 대손상각비와 2,800여 명의 해고 통보서는 단순한 장부상의 기록이 아니다. 성장률을 갉아먹고, 일자리를 증발시키며, 대한민국 경제의 혈맥을 막아버린 복합 위기의 청구서다.

정부가 나서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형 건설사 구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방어'여야만 한다. 이 지원이 국민적 동의를 얻으려면, 건설사들은 변명 대신 책임 있는 구조조정안과 투명한 장부를 먼저 책상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위기를 돌파할 '명분'은  건설사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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