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하이닉스가 17일부터 시작되는 신입사원 수시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전면 폐지했다. 채용 공고에 늘 따라붙던 '4년제 학사 학위 이상 지원 가능' 문구가 이번 채용부터 사라졌다. AGI, 즉 일반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 학력이라는 형식적 장벽을 걷어내고 직무 수행 역량과 성장 가능성만으로 인재를 뽑겠다는 취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뉴스1
학력 칸이 사라진 채용 공고, 무엇이 바뀌나
기존에는 지원 자격 항목에 학사 학위 이상이라는 조건이 명시돼 있었지만, 이번 공고부터는 해당 문구 자체가 삭제됐다. 지원자가 보유한 경험과 직무 역량, 조직문화 적합성이 기준에 부합하면 학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지원하고 합격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고졸이나 전문대 졸업자도 4년제 졸업자와 동일한 출발선에서 평가받게 됐다는 의미다.
다만 학력 제한이 풀렸다고 모든 자격 요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 공고 기준 지원 자격은 2026년 9월 중 입사가 가능한 자, 병역을 마쳤거나 면제된 자,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 자로 한정돼 있다. 즉 학력이라는 변수만 빠졌을 뿐 입사 시점과 병역, 해외여행 관련 조건은 그대로 유지된다.
최태원 회장이 강조한 '3대 근육' 인재상과 맞닿은 결정
이번 변화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줄곧 언급해온 미래 인재상과 같은 맥락에 있다. 최 회장은 AI 시대에 필요한 핵심 역량으로 스스로 질문하고 본질을 파고드는 '생각 근육', 새로운 기술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적응 근육', 다양성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협업하는 '공감 근육' 등 세 가지를 강조해왔다. SK 하이닉스 측은 "급변하는 AI 환경 속에서 미래 인재들의 경쟁력은 특정 학위나 정형화된 스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채용 기준을 혁신했다"고 밝혔다. 학위라는 정량적 지표보다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규 수시 채용 시작 SK 하이닉스. / SK 하이닉스 제공
수시채용에서 보기 드문 세 자릿수 규모, 어떤 직무를 뽑나
이번 공고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채용 규모다. SK 하이닉스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이끌 설계 직무를 비롯한 주요 직무에서 수시채용 기준으로는 이례적으로 세 자릿수 단위 대규모 선발을 진행한다. 통상 수시채용은 결원이나 특정 수요에 맞춰 소규모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 틀을 벗어난 채용 규모를 예고한 것이다.
모집 직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Tech R&D 영역으로 '설계', '소자', 'R&D 공정', 'Product Engineering' 네 개 직무가 포함된다. 설계 직무는 시장과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메모리 반도체 제품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역할로, 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 이해부터 아키텍처 설계, 디지털 및 아날로그 회로 설계, 레이아웃, 검증까지 다양한 과정을 다룬다. 소자 직무는 원가와 기술 경쟁력을 갖춘 차세대 핵심 요소 기술을 적기에 제공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R&D 공정 직무는 비용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공정을 연구개발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제품화 단계로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 Product Engineering은 설계, 소자, 공정 전반의 지식을 바탕으로 완제품의 특성과 품질을 끌어올리고, 평가와 분석을 통해 수율과 경쟁력을 높이며 Test Solution을 고도화하는 직무다.
두 번째는 IT 영역으로 'IT(AMHS)' 직무가 모집 대상에 포함됐다. 전사 IT 전략 수립부터 프로젝트 기획과 관리, 시스템 개발과 운영까지 담당하며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IT 환경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역할이다.
근무지는 이천, 분당, 청주로 명시돼 있다. 서류 접수는 이날 오전 9시부터 23일 오후 5시까지 일주일간 진행된다. 구체적인 전형 일정과 세부 직무 정보는 SK 하이닉스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SK 하이닉스가 지금 이렇게까지 화제인 이유
SK 하이닉스 이천 본사. / 뉴스1
채용 소식 못지않게 최근 SK 하이닉스를 향한 시장의 관심도 뜨겁다. 그 배경을 네 가지로 짚어본다.
첫째, HBM 시장에서의 주도권이다. 글로벌 AI 산업이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SK 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프로세서에 필수적인 HBM, 즉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다. HBM3E와 HBM4로 이어지는 차세대 메모리 공급망에서 입지를 다지며 AI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흡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둘째, 실적이다. AI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분기 영업이익률이 70% 안팎에 이르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제조업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수익성으로,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나 AI 반도체 설계 1위 엔비디아의 이익률과 비교되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셋째, 시가총액이다. SK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1,600조 원, 달러 기준으로는 1조 2,000억 달러 수준을 넘어서며 이른바 시총 1조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코스피 부동의 1위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약 2,000조 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두 기업 간 격차가 과거보다 눈에 띄게 좁혀진 셈이다.
넷째,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이다. 과거 한국 주식 시장에서 '대표주'를 이야기할 때 삼성전자가 거의 독점적으로 언급됐지만, 최근에는 SK 하이닉스 관련 종목과 레버리지 상품, 상장지수펀드로 개인 자금이 몰리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채용 규모 확대와 학력 제한 철폐 역시 이런 실적과 시장 위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회사 측이 "잠재력을 지닌 신입사원을 대거 선발해 청년 고용 확대에 기여하는 한편, 인재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육성해 글로벌 AI 시장에서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배경에도 이런 사업 확장 기조가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AI 시대와 최태원 회장.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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