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 쓰며 시 도전하다 작년 '허수아비'로 신춘문예 당선
"시 통해 시련과 고난 되돌아봐…'자옥아' 성공 때 가장 행복"
제8대 대한가수협회장도 맡아…"K팝 아이돌 협회 이사도 나오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마음이 외롭고 쓸쓸할 때,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어려운 시는 어려운 대로 시름을 덜어주고, 쉬운 시는 그 나름대로 마음을 풀어주죠. 시는 인생을 풍성하게 해 줍니다."
'무조건', '자옥아' 등 히트곡으로 유명한 가수 박상철이 첫 번째 시집 '허수아비'(넥센미디어 펴냄)를 내고 시인으로 변신했다.
오랜 가수 생활을 하며 노랫말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고, 수년의 도전 끝에 지난해 시 '허수아비'가 오륙도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첫 시집에는 표제작 '허수아비'를 비롯해 '콩', '배꼽 해바라기', '기다림의 쓸쓸함', '슬픈 둥지' 등 그가 틈틈이 써 온 시 100여편이 담겼다.
제8대 대한가수협회장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박상철은 좋은 가사를 쓰는 비결로 독서를, 좋은 시를 쓰는 비결로 경험을 꼽았다.
그는 "좋은 가사를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시집도 종종 손에 잡았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많이 읽었다"며 "트로트 가수 생활을 하면서 전국 팔도 가 보지 않은 곳이 없고,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경험이 풍부했던 게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시집에는 삶을 관조하는 작품이 많이 수록됐다.
"그냥 걷는다 / 그것이 인생이다"('인생이란'), "나는 두부가 된다 / 맛있는 두부가 된다 / 눌려도 밟혀도 된다"('콩'), "못 이룬 꿈은 / 옷장 맨 밑의 편지같아 / 집어 들 일도 없다"('오늘이 좋은 날') 등의 시구에서는 삶을 바라보는 애틋하면서도 쌉싸름한 시선이 느껴진다.
박상철은 특히 표제시 '해바라기'에서 "우거진 수풀 사이 / 내 겨드랑이는 종달새 집 / 바람에 기울어진 몸이 / 몇몇 새를 쫓지 못하고 동거를 허락한다"라며 찢기고 해어졌지만 이방인을 품는 삶을 노래했다.
그는 "저는 지금쯤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을 텐데, 시를 통해 지난 시련과 고난을 되돌아봤다"며 "트로트 장르가 어르신들이 좋아하다 보니, 시를 쓴다면 팬분들의 눈높이에 맞춰 삶의 희로애락을 다루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시집을 읽다 보면 강풀, 계곡, 감나무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호락질로 모를 심는다 / 아버지, 뜨락을 걷는다 / 흙이 발 등에 달라붙는다"('고향의 봄') 같은 시구를 읽다 보면 흙내음이 밀려오는 듯하다. 박상철은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중학교 때까지는 바다에 나가본 경험도 없을 정도로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랐단다.
박상철은 "아주 깨끗한 두메산골서 살았는데, 논농사는 거의 짓지 않았고 밭 일구고 보리와 조를 심는 동네였다"며 "집 앞에 아주 깨끗한 강이 흘러서 수영도 하고 소꿉장난도 하면서 자랐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게 제 시의 정서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철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학력고사를 치르자마자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1980년대 후반 메들리 음반도 냈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2000년에서야 1집 '부메랑'으로 정식으로 데뷔했다. 1993년에는 고향 삼척을 찾아온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를 불러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박상철은 "제가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노래를 무척 잘 불렀다. 가늘면서도 간드러지게 소리를 잘 냈다"며 "어머니를 따라 부르다 동네 노래자랑에 나가서 줄곧 인기상을 받곤 했다. 상을 받다 보니 가수의 꿈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자, 김수철, 태진아 같은 선배님들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며 "가수에 도전하던 시절에는 생계를 위해 미용도 배워 미용실도 한 적이 있다"고 되돌아봤다.
박상철은 '자옥아'(2001년), '무조건'(2005년), '황진이'(2007년) 등의 노래가 연이어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이들 노래는 지금도 노래방에서 숱하게 불리고, 선거철이면 유세 송으로 개사돼 전국 팔도에 울려 퍼진다.
그는 "'자옥아'가 처음 히트했을 때가 (제 가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웃으며 회상에 잠겼다.
당시 이 노래가 들리지 않는 노래방이 없을 정도였고, 박상철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자옥이 지나간다'고 외치기도 했다는 것.
또 최고 히트곡 '무조건'에 얽힌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작곡가 박현진이 처음에 '특급 사랑'이라고 만든 것을 제가 젊은 층을 겨냥해 '무조건'으로 바꾸자고 했어요. 편곡만 8번 했을 정도로 기대가 컸습니다."
이어 그는 "'무조건'은 절 반석 위에 올려준 노래다. 이 곡이 이십년 넘게 사랑받으면서 저도 가수로서 롱런하게 됐다"고 했다.
박상철은 지난해 8월 대한가수협회 제8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트로트 등을 가리키는 '성인가요'라는 용어를 '대중가요'로 바꾸고, 원로 가수를 지원하는 일 등에 힘을 쏟았다.
박상철은 또 가수협회에 K팝 아이돌의 참여도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K팝 아이돌 가운데에서도 대한가수협회 이사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 자리를 비워두고 있습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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