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뿌리(X)에 걸려 넘어진다고 한다. 걸을 땐 걷는 데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딴짓하다 꼭 낭패를 본다. 그런데 이상하다. 돌은 나무나 풀이 아니니까 뿌리가 없지 않나. 설령 있는 양 빗댄대도 뿌리는 땅 아래 파묻혀 있을 텐데 걸려 넘어지다니. 돌뿌리는 돌부리(O)의 오기다. 돌과 부리가 뭉친 이 말은 땅 위로 내민 돌멩이('돌맹이'는 오기)의 뾰족한 부분을 말한다. 소리는 [돌:뿌리]로 내지만, 표기는 돌부리로 한다.
부리는 새나 일부 짐승의 주둥이다. 사전의 첫째 정의다. 부리는 길고 뾰족하다. 뿔의 재질과 같은 딱딱한 물질로 되어 있다. 날카롭고 단단한 부리로 나무를 쪼아서 구멍을 내는 딱따구리를 떠올려 보라. 딱딱한 부리를 가졌다 하여 딱따구리일까. 어릴 적 유별나게 콧물을 많이 흘리던 매부리코 기억도 새롭다. 매+부리+코 조합이다. '매부리와 같이 코끝이 아래로 삐죽하게 숙은 코. 또는 그런 코를 가진 사람'이 매부리코다.
부리의 둘째 풀이가 물건 끝이 뾰족한 부분인 건 자연스럽다. 흔한 말로 총부리가 있다. 총에서 총구멍이 있는 부분이다. 군인들의 총부리는 적을 겨누라고 있는 것이지 국민을 겨누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돌부리도 이 계열이다. '돌부리를 차면 발부리만 아프다'는 속담은 쓸데없이 화를 내면 저만 해롭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부리를 두 번 써서 멋을 부리고 맛을 살렸다. 병처럼 속이 빈 물건의 한끝이 터진 부분도 부리라고 한다는 게 셋째 뜻이다. 병의 부리, 주전자의 부리라고 표현한다.
부리는 사람의 입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마지막인 넷째 의미다. "늘 이놈의 부리가 말썽이다"라고 한다. "그는 부리를 깔 뿐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말만 앞세우는 행태를 속되게 비난하는 것이다. 쓰이는 빈도로 보아 속어 '야부리'를 모르는 체하기 어렵다. 입을 자주 놀려 잇따라 말한다는 '야불거리다'에서 이 말이 왔다는 분석이 있다. 속된 말로 야불거리는 게 야부리 까는 것이다. 이를 따른다면 야부리의 부리는 여기서 다루는 부리와 다르다. 그러나 야부리 역시 사람의 입과 관련된 말이고 사람의 입은 뾰족하다. 느닷없는 돌부리만큼이나 공교롭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문법편)』, 한국교육방송공사(EBS), 2023
2. 표준국어대사전
3.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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