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넘은 남성 뷰티, 20대 색조부터 60대 안티에이징까지 '연령 세분화'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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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넘은 남성 뷰티, 20대 색조부터 60대 안티에이징까지 '연령 세분화' 가속

폴리뉴스 2026-06-16 21:28:30 신고

예전의 얼굴은 이력(履歷)이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깊은 주름은 현장을 버텨낸 흔적으로 읽혔고, 흰머리는 퇴장이 아니라 관록의 표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얼굴은 더 이상 얼굴로만 남지 않는다. 프로필 사진이 되고, 화상회의 화면이 되며, 강의 홍보물과 면접장의 첫인상이 된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인상으로 먼저 판정받는 시대, 얼굴은 이미 시장에 자신을 내거는 '간판'이 됐다.

또렷한 눈매로 강한 인상을 남기려 눈썹을 매만지는 일이 카메라 앞에 서는 정치인에게도 익숙한 채비이듯, 지난 6·3 지방선거의 유세장에서도 '첫인상이 곧 경쟁력'이라는 공식은 어김없이 작동했다. 환갑을 넘긴 남성의 눈썹 문신이 단순한 멋 내기가 아니라 '밀려나지 않으려는 현역의 방어'로 읽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6000억에서 1조 원으로… '5년 두 배'의 의미

이런 정서의 변화는 곧장 숫자로 나타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9년 6000억 원이던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5년 만에 두 배로 불어 2024년 1조 원을 넘어섰고, 2029년에는 1조23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면도 후 애프터셰이브 하나로 족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세럼과 쿠션, 향수까지 두루 쓰는 '그루밍족'이 일상화되면서, 스킨케어·향수·헤어케어가 성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세대의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은 더 의미심장하다. 국내 18~24세 남성의 메이크업 경험 비율은 50%에 육박했고, 그중 17%는 매일 화장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꾸민다'를 넘어 '관리한다'는 감각이, 적어도 젊은 남성층에서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성장의 다음 축은 색조다. 글로벌 남성 색조화장품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9%대 성장이 점쳐진다. 면도·세정 위주의 '필수 그루밍'을 넘어, 인상을 적극적으로 연출하는 '선택 메이크업'으로 수요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채널이 시장을 키운다… 다이소와 올리브영의 역할

주목할 대목은 시장 확장의 상당 부분이 '채널'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애경산업 등이 잇따라 다이소 전용 세컨드 브랜드를 내놓는 배경에는, 1000~5000원 균일가에 맞춰 용량과 패키지를 조정함으로써 기존 브랜드 가치를 지키면서도 가격 문턱을 낮추려는 셈법이 있다.

화장품에 익숙지 않은 남성 소비자에게 다이소는 '실패해도 부담 없는 첫 진입로'가 되고, 올리브영은 맨즈케어 코너를 통해 비교 · 체험의 장을 제공한다. 제품의 진화만큼이나,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하느냐가 시장을 키우는 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변화는 매대 안에서 확인된다. 올해 올리브영 맨즈케어 카테고리에서 메이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2.9%, 스킨케어까지 합치면 43.6%에 달했다. 신흥 브랜드의 약진도 채널과 맞물린다. 남성 브랜드 오브제는 2021년 출시 이후 올리브영 단독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고, 대표 제품 '내추럴 커버 로션'의 누적 판매량은 지난해 9월 87만 개를 넘어섰다.

아모레퍼시픽, 나이로 시장을 나누다

업계의 대응은 정교해지고 있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남성 시장을 연령대별로 잘게 쪼개는 전략을 택했다. 20대 Z세대를 겨냥한 '비레디(B.READY)'는 올인원과 메이크업 기능을 결합해 누적 120만 개가 팔렸고, 30대 이상 성숙한 남성층은 프리미엄 한방 브랜드 '설화수 본윤' 라인으로 안티에이징 시장을 공략하며, 2030 감각층에는 8년 만에 신제품을 낸 '오딧세이'가 향 중심의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한다. 하나의 '남성 화장품'이 아니라, 생애 단계별로 욕구가 다르다는 전제 아래 포트폴리오를 분화시킨 것이다.

채널 전략도 함께 움직인다. 아모레퍼시픽은 가성비·접근성을 앞세운 '프렙 바이 비레디'를 다이소 유통망 중심으로 선보였고, 이 브랜드는 2025년 론칭 이후 누적 30만 개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바디워시·바디 미스트 등 5종을 더해 체취·트러블 관리까지 영역을 넓혔다.

색조와 스킨케어를 넘어 '냄새'와 '바디'까지, 남성의 자기 관리 동선을 통째로 겨냥하는 흐름이다. 소비 방식 또한 단순형에서 정교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고객 조사에서 20대 남성의 올인원 사용 비율은 3040세대보다 낮게 나타났는데, 한 제품으로 모든 단계를 끝내던 방식에서 피부 타입·상황별로 제품을 조합하는 '루틴형 소비'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모레, AI로 '얼굴 노화 지도'까지… 경쟁 축이 바뀌다

제품 경쟁의 이면에서, 아모레퍼시픽은 무게중심을 '기술'로 옮기고 있다. 회사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국제피부생물물리학·영상학회(ISBS World Congress 2026)에서, 인공지능(AI) 기반 피부 영상 분석으로 한국인의 얼굴 부위별 노화 패턴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아모레퍼시픽이 AI로 도출한 '얼굴 노화 맵'. 20대에서 60대로 갈수록 주름(위·파란색)은 눈가에서 시작해 이마·미간·입가로 번지고, 색소침착(아래·갈색)은 볼과 눈 밑을 중심으로 얼굴 전반에 짙어진다. (자료=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이 AI로 도출한 '얼굴 노화 맵'. 20대에서 60대로 갈수록 주름(위·파란색)은 눈가에서 시작해 이마·미간·입가로 번지고, 색소침착(아래·갈색)은 볼과 눈 밑을 중심으로 얼굴 전반에 짙어진다. (자료=아모레퍼시픽 제공)​​​​​​

R&I센터는 노화의 시작점과 확산 경로를 시각화한 '얼굴 노화 맵(Facial Aging Map)'을 제시했다. AI로 얼굴 이미지를 동일 기준에 맞춰 정렬한 뒤 부위별 주름·색소침착 정보를 추출해 하나의 표준화된 얼굴에 통합하는 '표준화 얼굴 오버레이(Standardized-Face Composite Overlay)' 기법을 적용해, 연령대별 노화 패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주름과 색소침착은 서로 다른 경로로 진행됐다. 주름은 눈가에서 시작해 표정 · 구조 변화가 큰 부위로 확산된 반면, 색소침착은 볼과 눈 밑에서 먼저 나타난 뒤 얼굴 전반으로 번졌다.

주름(왼쪽)과 색소침착(오른쪽)의 확산 경로. 주름은 눈가에서 출발해 표정·구조 변화가 큰 부위로 퍼지고, 색소침착은 볼 · 눈 밑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화살표로 나타냈다. (자료=아모레퍼시픽 제공)
주름(왼쪽)과 색소침착(오른쪽)의 확산 경로. 주름은 눈가에서 출발해 표정·구조 변화가 큰 부위로 퍼지고, 색소침착은 볼 · 눈 밑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화살표로 나타냈다. (자료=아모레퍼시픽 제공)

기존의 부위별 평가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노화의 공간적 진행 양상을, 얼굴 전체 관점에서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동일 연령대 데이터를 평균화한 표준화 얼굴로 부위별 노화의 진행 순서를 직관적으로 시각화했고, 이를 토대로 노화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피부 연구 · 평가법을 개발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 연구의 함의는 '측정'을 넘어 '예측'에 있다. 노화를 발생 이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를 조기에 감지해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서병휘 R&I센터장(CTO)은 "AI 기반 이미징 기술과 피부 분석 역량을 바탕으로 노화의 진행 양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한 사례"라며 "향후 피부 변화 예측을 기반으로 '홀리스틱 롱제비티 솔루션(Holistic Longevity Solution)' 구현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LG생활건강, '보닌' 앞세워 추격

LG생활건강도 다층적 진용을 갖췄다. 대표 남성 브랜드 '보닌(Bonin)'은 장동건·강하늘 등 정상급 배우를 잇따라 모델로 기용해 왔으며, 현재 '트리플 액션 원샷 플루이드', '더스타일 모멘토 모이스처 선' 등 올인원·선케어 중심의 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비욘드 옴므·CNP 등 여러 라인에 남성용 제품을 배치해 가격대별 수요를 겨냥하며, 지난해에는 다이소 전용 세컨드 브랜드 'CNP 바이 오디-티디'를 선보이며 균일가 채널에도 거점을 마련했다. 프리미엄과 가성비를 동시에 포괄하는 양면 전략으로, 선두권을 추격하는 모양새다.

색조의 약진과 '액티브 시니어'

향후 시장의 향방을 가를 두 변수는 색조와 고령층이다. 색조는 앞서 본 글로벌 두 자릿수 안팎의 성장률과 올리브영 비중 확대에서 보듯, '주류'로 안착하는 흐름을 타고 있다. 또 하나의 전선(戰線)은 시니어다.

한 카드회사 분석에서 1인당 화장품 구매액이 가장 많은 연령층은 60세 이상으로 나타났고, 60대 이상의 화장품 구매는 남성이 약 73% 늘었다는 조사도 있다. 외모와 건강에 적극 투자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주름·흰머리·피부·탈모를 주된 고민으로 꼽으며, 특히 남성은 탈모에 민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환갑 남성의 눈썹 문신, 곧 남성 반영구 화장의 대중화는 이 거대한 인구 집단이 시장의 '큰손'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관리'인가 '불안'인가, 산업이 답해야 할 질문

다만 시장의 팽창을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다. 화장품 산업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불안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측면이 있다. 주름을 결함으로, 잡티를 흠으로, 나이 듦을 실패처럼 느끼게 만든 뒤 문제마다 제품을 붙이는 구조다. 여성들이 오래전부터 겪어온 이 '얼굴 산업'의 압박이, 이제 남성에게로 고스란히 번지고 있다. AI가 '미래의 얼굴'을 앞당겨 보여 주는 예측 기술은 이 질문을 한층 날카롭게 만든다.

경계선은 분명하다.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도구를 쓰는 것은 '관리'이지만, 자기 얼굴을 미워한 끝에 덮는 것은 '중독'이다. 사람 앞에 서는 날 피로한 인상을 정돈하는 일이 구두를 닦고 셔츠를 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는 한, 그것은 허영이 아니라 '출전 준비'에 가깝다. 그러나 광고와 플랫폼이 정해 준 '표준 얼굴'을 제 얼굴로 착각하는 순간, 화장은 품격이 아니라 족쇄가 된다.

결국 1조 원을 넘어선 남성 뷰티 시장 앞에서 기업이 마주한 물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소비자가 스스로를 가꾸도록 돕는 산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기 얼굴을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산업이 될 것인가. 시장의 크기를 키우는 일과 소비자의 자존을 지키는 일이 양립할 수 있는지, 그 답을 먼저 내놓는 기업이 다음 5년의 주도권을 쥘 것이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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