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유월이면 당신 그늘 아래/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내일 열겠다고, 내일 열릴 것이라고 하면서....”(최승자, 유월이 오면 중에서).
고속도로가 공주로 접어들자 밤꽃 향이 자욱하다. 한 해 동안 뵙지 못한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이다. ‘죄송합니다. 고마웠습니다.’ 아무런 작별 인사도 드리지 못한 두 분이어서 내내 가슴 아팠다. 딸과 외손주, 손녀를 대동했다. 현충원은 충혼의 넋들로 가득했다. 부모님께 맘 깊은 꽃 한 송이 바친다. 딸의 큰절에 손녀딸이 따라 하는 모습이 귀엽다. 내력 모르는 요 녀석들 현충일에 꽃아 놓은 태극기를 뽑아 들고 넓은 묘지를 뛰어다닌다.
아이들의 천진한 행동에 부모님도 기뻐하실 거다. 돌아오는 길은 늘 갑사나 마곡사에 들러 산채비빔밥이라도 함께 먹었는데 이번엔 그냥 오게 됐다. 두 아이를 키우는 딸의 스케줄에 맞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휴게소에 들러 공주 군밤을 주문했다. 특산물 코너의 아저씨, 말도 행동도 무척 느렸다. 광교산 자락의 군밤 파는 아저씨보다 두세 배 느렸다. 억울하지만 아저씨의 가족사를 다 듣고 나서야 군밤 한 봉지를 받아 들었다. 차창에 스쳐 가는 밤나무 군락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두 분 사이에서 잠들었던 행복했던 시절처럼 많은 일들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기분이다. 다시 시를 잇는다.
“그 짬과 짬 사이에/해마다 유월에는 당신 그늘 아래/한번 푸근히 누웠다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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