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학습 효율 증대 등을 목적으로 마약 성분이 든 수면제나 우울증,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를 반복 처방받는 ‘의료 마약 쇼핑’이 횡행하지만, 이를 막을 장치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기존 투약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가 이미 구축돼 있지만 이를 활용한 약사의 개입은 의무가 아닌 탓이다.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의료용 마약류 취급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의료용 마약류를 2번 이상 처방 받은 환자 수는 2천1만여명, 총 처방량은 19억2천663만개로 집계됐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의료용 마약류를 중복 처방받은 것으로, 단순 계산 시 환자 1인당 96개의 마약류를 처방받은 셈이다.
이미 정부는 의료 기관이 환자 처방 단계에서 처방 약 내 마약류 유무부터 중복 처방 이력까지 실시간 조회해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DUR을 운영하고 있다. 마약류 처방 이력이 있을 경우 DUR은 의료기관에 해당 사실을 알리며, 의료인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처방 약 성분을 변경해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약사의 처방 개입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식약처 집계 결과 지난해 DUR이 걸러낸 병원 및 약국의 마약류 중복 처방 경고 건수는 14억9천137만건이었지만 실제 이를 반영해 처방을 변경한 약국은 1% 수준에 그쳤다.
특히 해당 통계가 집계한 약물 오남용 의료기관 188개소 중 38개소(20%)는 경기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약국들은 현실적으로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평군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환자가 약을 잃어버렸다거나 여행을 가면서 약이 더 필요해졌다며 수면제 등 마약류 처방을 더러 요구한다”면서도 “DUR 적용이 의무가 아닌 마당에 개입하면 손님 발길이 끊길 우려가 있어 망설여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마약 쇼핑’을 악용한 마약류 활용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4월 부천에서는 반복 처방 받은 수면제 성분의 약물에 소주를 타 먹여 남편을 살해하려 한 20대 여성이 적발됐다.
또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20대 여성이 반복 처방 받은 마약류를 남양주, 서울 등지에서 만난 남성들에게 먹여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의료 기관의 DUR 정보 적용 의무화와 병원-약국 간 의료 정보 연계 활성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영덕 한국마약회복협회 이사장은 “마약류 중복 처방으로 인한 개인의 오남용, 범죄 악용을 예방하려면 처방 체계를 촘촘히 해야 한다”며 “이미 (DUR)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만큼 허점을 보완하고 무분별한 과처방을 막을 수 있게 하는 의료기관 정보 연계 등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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