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소아·분만·응급의료 공백이 환자 사망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추진, 재정 배분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청년층의 치료비와 심리적 부담을 낮출 필요성은 있지만,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을 생명과 직결된 분야보다 먼저 투입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충북 청주에서는 임신 29주 차 산모가 태아 심박수 저하로 긴급 이송이 필요했지만, 전국 병원 12곳에서 수용을 거절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신생아 중환자실과 진료 인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산모는 헬기를 타고 3시간30분 만에 부산으로 이동했지만, 태아는 끝내 숨졌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해당 사례를 언급하며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비판했다. 응급 분만과 신생아 중환자실, 소아 진료 기반이 무너지는 가운데 탈모 급여화를 주요 의제로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제한된 재원을 우선 생명과 직결된 영역에 투입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올 하반기 국민 의견을 수렴해 탈모치료의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다. 행정안전부와 함께 다음 달 4일 서울에서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주제로 첫 ‘모두의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 발제와 참가자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원형탈모는 의학적 질환으로 분류돼 진료비와 약값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환자 본인부담률은 30%다. 반면 흔히 M자형 탈모로 불리는 안드로겐성 탈모와 비흉터성·흉터성 탈모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정부 논의의 핵심은 이들 유형까지 보장 범위를 넓힐지 여부다.
급여화 요구의 배경에는 젊은 환자 증가와 장기 치료 부담이 자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탈모로 진료받은 20·30대는 8만8760명이다. 전체 환자 가운데 20대와 30대 비중도 37%에 달했다.
안드로겐성 탈모는 약물로 진행 속도를 늦추는 방식이어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 젊은 층에서는 외모 변화가 자신감 저하와 대인관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탈모 커뮤니티 ‘대다모’가 회원 8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4%가 건강보험 적용에 찬성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도 탈모가 청년의 건강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견을 정책 검토 배경으로 들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급여화에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보장 확대에 필요한 비용은 적지 않다. 안드로겐성 탈모 치료까지 지원하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이 소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병원을 찾지 않는 잠재 환자까지 제도권으로 들어오면 실제 지출은 예상치를 웃돌 가능성도 있다.
환자층이 넓고 복약 기간도 길어 한 번 급여에 포함하면 비용이 지속적으로 쌓이는 구조다. 중증질환이나 희귀질환, 응급·소아·분만 분야와 비교한 형평성 문제도 피하기 어렵다. 필수의료 수가와 인프라를 강화할 재정이 부족하다는 의료계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이어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전면 급여화보다 제한적인 지원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나이에 따라 혜택을 달리하거나 연간 지원 횟수와 총액을 정하는 방안, 중증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본인부담률을 높여 환자 부담을 일부 줄이면서 재정 증가를 억제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쟁점은 탈모를 질환으로 볼 수 있는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급여 대상을 어디까지 정하고 보장 수준을 어떻게 설계할지,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을 필수의료와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지가 핵심으로 꼽힌다. 재정 추계와 우선순위 조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청년층 부담 완화라는 정책 취지보다 형평성과 포퓰리즘 논란이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정 장관은 “탈모가 청년의 건강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견과 건강보험은 중증질환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며 “다양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 의견을 듣고 추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탈모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치료비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응급·소아·분만 분야는 적절한 시간 안에 치료받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원이 한정된 만큼 새로운 급여 항목을 늘리기 전에 필수의료 인력과 병상, 이송체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정부터 충분히 확보됐는지 살펴야 한다”며 “생명을 살릴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탈모 급여화가 앞서 논의되면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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