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정부가 하반기부터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각계의 우려와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청년층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정부의 입장과 달리, 의료계와 정치권에서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 중증질환 환자단체의 반발과 중장년층의 형평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정책 추진에 험로가 예상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가장 먼저 우려를 표한 곳은 암과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중증 환자 단체들이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의 투입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포퓰리즘식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화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연합회는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청년층 민생 대책이라는 명분으로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 확대를 추진하는 데 대해 깊은 좌절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의 기본 취지는 예기치 못한 질병과 고액 의료비 부담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사회 안전망”이라며 “탈모 급여 확대는 건강보험의 근간인 의학적 필수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정면으로 흔드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신약이 개발돼도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지연돼 수많은 중증 희귀난치질환 환자와 말기 암 환자들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며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제 급여화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미루면서 생명에 직접적인 지장이 없는 질환에 건보 재정을 먼저 투입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라고 지적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 검토를 하반기 주요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전적 탈모에 건보를 적용할 경우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오는 7월 국민 200명이 참여하는 ‘모두의 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공언했다.
탈모약 급여화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2년에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지난해 말에도 국무회의에서 탈모는 젊은이들에게 생존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건보 적용 검토를 지시했다.
실제로 탈모약 급여화 논의의 배경에는 꾸준히 늘어나는 탈모 인구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탈모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20년 23만4780명에서 2024년 24만1217명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같은 기간 요양급여비용 총액도 322억원에서 389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는 원형 탈모나 지루성 피부염 등 질환성 탈모로 인정돼 이미 건강보험(본인부담률 30%) 혜택을 받고 있는 환자들만 집계한 수치다. 현재 유전성이나 노화로 인한 탈모 치료는 ‘미용 목적’의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된다.
의료계에서는 비급여 처방을 받거나 병원을 찾지 않는 인구까지 포함하면 국내 실질적 탈모 환자 수가 약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광범위한 잠재적 탈모 인구가 겪는 취업, 사회적 관계 등 일상에서의 심리적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급여 확대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환자 수가 10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많다 보니, 비급여 대상인 유전성 탈모까지 건보를 전면 적용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다.
특히 정책의 주 타깃이 20·30 ‘청년층’으로 맞춰지면서 세대 간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청년층 민생 대책의 일환으로 탈모 급여화를 언급하자, 정작 탈모 비율이 높은 40대와 50대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직장인 익명 게시판 등에서는 “가장 세금과 건보료를 많이 내는 중장년층은 소외시키고 표심을 위해 특정 세대만 지원하느냐” “나이가 들수록 유전성 탈모가 심해지는데 청년층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역차별이다” 등 불만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건강보험은 경증질환 할인제도 성격이 강한데 그리 비싸지 않은 탈모약에 건보 재정 쓰는 건 반대한다”며 “차라리 중증외상, 희귀난치질환, 소아과, 분만 쪽 수가를 올려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방 쪽은 지금도 건보 재정이 연간 3조원가량 투입되는데 비염 같은 질환에 첩약 적용으로 2000억원가량 추가 투입될 예정으로 안다”며 “중요도 및 의학적 근거가 높고, 가계 재정 부담이 큰 분야를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게 맞다”고 제언했다.
전 연령을 아우르는 명확하고 보편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도적 형평성 시비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건강보험 재정이 향후 적자로 전환돼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전액 소진될 것으로 전망한 만큼, 재정 관리가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피나스테리드 계열의 경우 이미 특허가 풀려 제네릭(복제 약)이 쏟아져 나와 월 1~3만원이면 치료가 된다”며 “약이 없어서, 비싸서 못 쓰는 게 아니다. 여기에 수천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더 쏟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 현장에서는 희귀질환과 싸우는 환자들이 많고, 그 치료에 쓰이는 신약의 가격은 수천만원대에 달하지만 급여화가 안 된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부터 건강보험은 4조원대 적자로 돌아선다. 탈모약에 쓰는 수천억은, 그만큼 희귀, 중증 질환에 고생하는 분들에게 갈 돈에서 빼는 돈”이라며 “같은 돈을 얕게 흩뿌려서 많은 표를 얻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표를 얻기 위해 건강보험의 원칙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건강 보험은 정치의 선심성 하사품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천하람 전 원내대표 역시 전날 “복지부가 정부에 대한 반대가 높은 20~34세 청년층만 콕 집어 지원하려 한다”며 “젊은 세대의 표심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건보 재정은 응급의료와 중증 질환에 우선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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