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역사상 두 번째이자 68년 만에 ‘하루 전 경기 무승부’라는 진기록이 탄생했다. 조별리그 초반부터 강호들이 덜미를 잡히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대회에 대거 도입된 파격적인 신설 규칙들도 그라운드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으며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 치바스 바예 베르데 훈련장에서 개최국 멕시코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 뉴스1
68년 만에 재현된 ‘하루 4무승부’… 요동치는 조별리그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16일(한국 시간) 당일 펼쳐진 조별리그 4경기가 모두 무승부로 끝난 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하루 4경기가 모두 무승부로 마감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68년 만에 처음이자 대회 역사상 역대 두 번째 기록”이라고 보도했다. ESPN에 따르면 월드컵 역사상 하루 일정의 전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사례는 과거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이한범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백승호에게 패스를 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대한민국이 체코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 뉴스1
이날 이색 기록을 낳은 결정적인 무대는 H조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맞대결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이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인 스페인은 랭킹 67위이자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카보베르데와 0-0으로 비겼다. 스페인은 무려 27개의 슈팅을 퍼부었으나 카보베르데의 보지냐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과 육탄 방어에 막혀 득점 없이 경기를 마쳤다. 약팀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비에 모든 것을 건 카보베르데는 ‘대어’ 스페인을 상대로 귀중한 승점 1점을 챙겼다.
같은 조의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우루과이를 상대로 예상을 뒤엎는 선전을 펼친 끝에 1-1로 비기며 무승부 대열에 합류했다. 한편 G조에서는 벨기에와 이집트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이란과 뉴질랜드도 2-2로 팽팽하게 맞서며 승점 1점씩을 나눠 가졌다. 조별리그 초반부터 의외의 무승부가 쏟아지면서 32강 토너먼트 진출을 향한 경쟁은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역대 최대 규모, 최초의 3개국 공동 개최
지난 11일 막을 올린 이번 월드컵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열리는 두 번째 공동 개최 대회이자, 역사상 최초로 3개국(미국·멕시코·캐나다)이 함께 치르는 대회다. 본선 진출국은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대폭 확대됐으며 기존 조별리그 방식 역시 32강 토너먼트로 전환돼 치러진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뉴스1
개최국들의 기록도 다채롭다. 멕시코는 1970년과 1986년에 이어 40년 만에 세 번째 월드컵을 개최하며 역대 최다 개최국 반열에 올랐다. 미국은 1994년 이후 32년 만에 두 번째 대회를 맞이했으며 캐나다는 사상 최초로 남자 월드컵을 개최하는 경사를 누렸다. 아울러 이번 대회는 3개 대륙성 국가를 아우르는 만큼 역대 월드컵 중 가장 넓은 개최지를 자랑한다.
대회 규모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은 FIFA가 경기 속도를 높이고 오심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파격적인 제도적 장치들이다. 특히 의도적인 시간 끌기 행위에 대한 제재가 대폭 강화됐다. 지난 카타르 대회 당시 추가 시간을 무제한 부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시간을 끄는 팀에 실질적인 페널티를 주는 규칙을 도입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스로인과 골킥에 적용되는 ‘5초 카운트다운’이다. 주심이 고의적인 시간 지연으로 판단해 초읽기에 들어간 후 5초 이내에 경기가 재개되지 않으면 공격권이 상대 팀으로 넘어간다. 스로인은 상대의 스로인으로, 골킥은 상대의 코너킥으로 바뀐다.
선수 교체 시간 역시 10초로 제한된다. 교체 신호 후 10초 이내에 가장 가까운 터치라인을 통해 필드를 벗어나지 않으면 교체 투입될 선수는 경기가 재개된 후 1분간 경기장에 들어올 수 없다. 경기가 멈추지 않는다면 해당 팀은 몇 분간 10명으로 싸워야 하는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이번 월드컵 규칙을 시범 적용해 치러진 일본과 아이슬란드의 친선경기에서 아이슬란드 선수가 10초 규칙을 위반해 일본이 2분간 수적 우위를 점했고 이 과정에서 결승골이 터져 일본이 1-0으로 승리한 바 있다. 또한 그라운드 내에서 부상 치료를 받은 선수는 경기 재개 후 1분 동안 장외에서 대기해야 한다.
비디오 판독(VAR)의 범위도 전례 없이 넓어졌다. 기존의 득점, 페널티킥, 직접 퇴장, 선수 오인 상황에 더해 이번 대회부터는 명백히 잘못된 코너킥 판정과 두 번째 경고(옐로카드)로 인한 퇴장 상황에서도 VAR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경기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번 대회 모든 경기에서는 전·후반 각각 22분 고지에서 주심의 주도하에 3분간 ‘물 보충 휴식(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시간이 운영된다. 이에 따라 전·후반 45분씩 치러지던 축구가 마치 농구처럼 4쿼터 형태로 변모했다. FIFA는 ‘선수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거액의 중계권료를 지불하는 방송사에 ‘광고 시간’을 보장하려는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수들의 행동 규제도 엄격해졌다. 상대 선수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는 선수를 퇴장시킬 수 있는 일명 ‘비니시우스 규정’이 전격 시행됐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무단으로 그라운드를 이탈하는 선수에게도 즉각 레드카드가 부여된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입을 가리고 한 말이 인종차별적 결과를 초래한다면 퇴장시켜야 마땅하다”며 “숨길 것이 없다면 입을 가릴 이유도 없다”고 규정 도입 배경을 강력히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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