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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코모 보르고뇨 수출 매니저 겸 브랜드 앰버서더 파비오 발프레다는 15일 서울 중구 이테르 명동에서 열린 방한 디너 세미나에서 “보르고뇨는 바롤로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라며 “역사와 전통, 생산 철학을 함께 이해할 때 보르고뇨 와인의 성격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류주희 에티카 와인즈 한국 지사장과 금양인터내셔널 관계자, 와인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보르고뇨 측 인사의 방한은 약 3년 만이다. 파비오 발프레다가 국내에서 보르고뇨 와인을 직접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르고뇨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바롤로 마을에서 시작된 와이너리다. 당시 와인 생산이 귀족과 왕족 중심으로 이뤄지던 시기, 농부 출신 창업자 바르톨로메오 보르고뇨가 자기 이름을 걸고 와인을 생산한 것이 출발점이다. 보르고뇨는 1861년 이탈리아 통일 기념 만찬주로 사용되며 바롤로 명가로서의 상징성을 쌓았다.
생산 철학은 전통성에 맞춰져 있다. 보르고뇨는 콘크리트 탱크 발효와 긴 침용, 대형 슬라보니안 오크 배럴 장기 숙성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빠르게 풍미를 입히는 방식보다 네비올로 품종과 바롤로 토양의 특성을 천천히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둔다. 파비오 발프레다는 “보르고뇨는 변화를 위한 변화보다 역사적 성격을 보존하는 데 무게를 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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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아닌 3년 만에 韓 찾은 바롤로 명가
이날 세미나에서는 보르고뇨의 대표 와인 6종이 소개됐다. 에라 오라 리슬링 랑게 DOC를 시작으로 노 네임 네비올로 랑게 DOC, 바롤로 DOCG, 바롤로 리스테 DOCG 2017, 바롤로 포사티 DOCG 2015, 바롤로 카누비 DOCG 2017 등이 차례로 나왔다.
첫 잔은 에라 오라 리슬링 랑게 DOC였다. 보르고뇨가 오랜 기간 레드 와인, 특히 바롤로에 집중해온 생산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출발이었다. 이 와인은 보르고뇨가 2012년 처음 선보인 화이트 와인이다. ‘에라 오라’는 이탈리아어로 ‘이제 때가 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르고뇨는 바롤로 지역에서 흔치 않은 리슬링을 선택한 이유로 산도와 장기 숙성 잠재력을 들었다. 연간 생산량은 약 800병에 불과하다.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저온 발효한 뒤 콘크리트 탱크로 옮겨 미세 산화를 유도하고, 숙성 과정에서 별도 래킹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복합미를 살린다. 바롤로 생산자답게 화이트 와인에서도 시간에 따른 변화를 중시한 셈이다.
이어 소개된 노 네임 네비올로 랑게 DOC는 보르고뇨의 고집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원래 바롤로 DOCG로 출시하기 위해 양조됐지만 과거 인증 과정에서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데서 출발했다. 이후 같은 와인을 다시 제출했을 때는 인증을 받는 일이 벌어졌고 보르고뇨는 와인의 품질보다 절차가 이름의 가치를 정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름 없는 와인이라는 뜻의 ‘노 네임’으로 출시했다. 파비오 발프레다는 이를 “관료주의에 대한 보르고뇨식 항의”라고 설명했다.
행사의 중심은 바롤로였다. 바롤로 DOCG 2021은 보르고뇨의 기본 철학을 보여주는 와인으로 소개됐다. 이어 포사티, 카누비, 리스테 등 싱글 빈야드 와인이 차례로 제공되며 바롤로 안에서도 밭에 따라 달라지는 개성이 강조됐다.
포사티는 우아함과 미네랄감이 특징인 와인으로 소개됐다. 어린 빈티지에서는 장미와 바이올렛, 붉은 과실향이 두드러지고 숙성이 진행될수록 홍차와 드라이 플라워, 감초 등 복합적인 향으로 발전하는 크뤼다. 카누비는 바롤로 지역에서도 상징성이 큰 밭으로 꼽힌다. 파비오 발프레다는 “카누비는 힘과 우아함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리스테는 보르고뇨가 오래전부터 보유해 온 핵심 포도밭이다. 총 11헥타르 규모의 크뤼 가운데 약 9헥타르를 보르고뇨가 소유하고 있다. 역사적인 리제르바 상당수가 리스테를 중심으로 생산될 만큼 와이너리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파비오 발프레다는 리스테에 대해 “보르고뇨 바롤로의 척추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한식과 만난 피에몬테 바롤로
이날 디너 코스는 이탈리아 와인과 한국적 식재료를 엮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시작은 제철 호래기를 올린 블랙 타르트였다. 이어 초계탕에서 영감을 받은 닭가슴살 요리, 고사리와 트러플, 달래 라구, 이베리코와 된장, 한우 등심과 제철 채소, 나주 곰탕 젤라토까지 이어졌다. 세부 메뉴보다 눈에 띈 것은 방향성이었다. 이탈리아 바롤로를 익숙한 서양식 정찬에만 맞추지 않고, 한국 식재료의 감칠맛과 발효 향, 장류의 깊이와 맞춰보려는 시도였다.
특히 고사리, 달래, 된장, 표고 같은 재료는 와인의 산지보다 식탁의 장소를 선명하게 했다. 잔에는 피에몬테가 있었지만, 접시에는 서울의 감각이 있었다. 바롤로 명가의 와인을 소개하는 행사가 단순 수입 와인 시음회에 머물지 않은 이유다. 1761년 피에몬테에서 시작된 보르고뇨의 시간을 명동의 한 식탁 위에서 한국 식재료와 함께 풀어낸 셈이다.
카누비와 이베리코, 발효 대추, 된장, 표고의 조합은 이날 페어링의 방향을 보여줬다. 강한 구조감과 긴 숙성 잠재력을 가진 바롤로가 한국 장류의 짙은 풍미와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생산자의 역사와 밭의 개성, 음식과의 조합까지 함께 설명해야 하는 시장으로 국내 프리미엄 와인 소비가 세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와인업계 한 관계자는 “보르고뇨는 바롤로의 전통성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 생산자 중 하나”라며 “국내에서도 단순히 유명 산지나 높은 가격만 보는 소비를 넘어 생산자의 철학과 밭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수요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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