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곽민구 기자ㅣ생성형 인공지능(AI)의 전면적인 도입으로 게임의 코드나 이미지를 제작하는 ‘구현’의 장벽이 무너진 시대,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핵심 경쟁력으로 시간이 쌓아 올린 무형의 가치인 ‘맥락 자본’이 제시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자 지식공유 축제인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exon Developers Conference, 이하 NDC 2026)'가 16일 경기도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개막한 가운데, 강대현 넥슨코리아 공동대표가 첫날 기조연설(키노트) 연사로 단상에 올랐다.
'구현이 쉬워지는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경쟁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진 강대현 공동대표는 AI 대전환기를 맞이한 게임 개발자들의 미래 생존 전략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밀도 있게 짚어냈다.
강 공동대표는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코드를 짜고, 고품질 이미지를 구현하며, 프로토타입을 빌드하는 일련의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쉬워졌다”며 “말 그대로 ‘구현이 쉬워지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글로벌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 출시된 게임 수가 2015년 2800개 수준에서 2025년 기준 2만 개로 10년 만에 7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다만 그는 “콘텐츠의 양은 무한히 늘어났지만 이를 소비하는 이용자의 시간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으며, 선택지가 과잉되면서 오히려 이용자들은 어떤 게임을 즐겨야 할지 고르기가 더욱 어려워진 역설적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강 공동대표는 “역사적으로 기술의 상용화로 누구나 어떠한 일을 쉽게 행할 수 있게 되면, 결국 기술 외적인 본질에서 우열이 가려진다”고 강조했다.
상용 게임엔진 보급과 디지털 유통 플랫폼 활성화로 인한 변화를 예로 든 강 공동대표는 “과거 상용 게임엔진의 보급으로 기술 격차가 줄어들자 시장은 더 정교한 아트와 깊이 있는 콘텐츠를 원했고, 디지털 유통 플랫폼의 활성화로 출시 장벽이 무너지자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낙점받는 ‘브랜드의 힘’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강 공동대표는 이러한 변곡점에서 게임의 성패를 가르는 궁극적인 기준은 구현의 화려함이 아닌 ‘맥락(Context)’에 있음을 단언했다. 그는 “일례로 범용 생성형 AI에게 ‘메이플스토리 캐릭터의 모자를 디자인해달라’고 명령하면 기술적으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지만, ‘메이플스토리’가 지난 20년간 공들여 쌓아온 고유의 스타일 가이드와 유저들의 역사적 선호도 및 감성을 온전히 이해한 디자인처럼 이용자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데이터나 자본만으로는 결코 복제하거나 단기간에 살 수 없는 시간의 총합인 ‘맥락 자본’이라고 정의한 강 공동대표는 “AI가 코딩과 아트를 대신해 주는 역설적인 시대일수록 특정 장르에 대한 깊은 통찰이나 이용자의 숨은 취향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개발자 고유의 '감각'이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맥락에는 데이터만으로 옮겨지지 않는 이용자와의 살아있는 관계, 지켜온 시간이 만들어낸 신뢰가 존재한다”며 “이 깊이만큼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오직 절대적인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더 나아가 강 공동대표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맥락이 저절로 자산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본의 증식 메커니즘을 비유한 맥락의 ‘단리’와 ‘복리’라는 혁신적 개념을 제시해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정의한 ‘맥락의 단리’는 고정된 공간에서 과거의 성공 패턴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답보 상태다. 반면 ‘맥락의 복리’는 전작의 치열한 개발 및 라이브 경험을 발판 삼아 작품의 완성도를 입체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게임 안의 우주를 넘어 게임 밖의 오프라인 라이프스타일까지 경험의 영토를 무한히 확장하는 진화의 개념이다.
그는 “맥락의 연결은 복리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초기 축적 과정은 다소 더디고 눈에 띄지 않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그 가치는 폭발적으로 커진다”며 “위대한 맥락은 실무 현장에서 직접 운영하고, 지켜보고, 실패하고, 다시 고쳐가며 쌓아 올리는 광장에서 천천히 축적되는 것”이라고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어 “축구가 150년에 걸쳐 월드컵, 조기축구, 축구 게임 등 온·오프라인 생태계를 넘나들며 인류의 거대한 문화적 복리를 이뤄낸 점과 최근 넥슨이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킨 ‘아이콘 매치’의 감동 역시 이러한 맥락의 연결성이 가져다준 결실”이라고 부연했다.
강 공동대표는 “이러한 ‘맥락 자본’은 결코 오랜 역사를 지닌 올드 IP(지식재산권)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신생 신규 IP 역시 이용자와의 ‘약속’을 우직하게 지켜나간다면 얼마든지 강력한 맥락 자본을 형성할 수 있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끝으로 그는 "과거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라디아 스튜디오나 초기 시장 진입 시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로블록스가 글로벌 플랫폼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아주 작은 경험 하나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고 진정성 있게 이용자에게로 이어지도록 소통했기 때문"이라며 “진정성 있는 약속의 이행이 AI 시대 개발자들의 궁극적인 마스터키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Copyright ⓒ 데일리 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