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N] 쇠줄 얹은 가야금… 서은영의 손끝에서 남도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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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N] 쇠줄 얹은 가야금… 서은영의 손끝에서 남도가 운다

뉴스컬처 2026-06-16 12:00: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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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영. 사진=국립국악원
서은영. 사진=국립국악원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명주실을 걷어낸 가야금은 울림이 다르다. 산조가야금의 둥근 음색과 달리 철가야금은 소리의 윤곽은 차갑다. 쇠줄 위 농현은 버티며 깊어진다. 가야금 연주자 서은영이 독주회 ‘공력(功力) Ⅴ’를 갖는다. 부제는 ‘철가락 - 이태백류 철가야금산조 전바탕’이다. 명인 이태백이 오랜 기간 다듬은 철가야금산조 한 바탕을 서은영의 손끝으로 풀어낸다.

공력은 빠른 성과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다. 반복된 연습과 소리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시간의 힘을 뜻한다. 서은영은 화제성보다 축적을 택했다. 산조 한 갈래를 오래 붙들어 자기 손 안에 새기는 과정을 무대와 음반에 남겼다. ‘공력’ 시리즈는 산조 공부의 밀도를 드러낸다. 서은영은 신관용류, 한숙구류,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거쳤다. 유파마다 다른 손맛과 장단 운용, 시김새의 위치를 익혔다. 다섯 번째 공력은 기존 산조가야금의 울림권을 떠나 철현 앞에 앉는 일이다.

철가야금은 명주실 대신 금속현을 얹은 악기다. 현의 재질이 달라지면 손의 감각부터 바뀐다. 줄은 덜 물러서고, 음은 예리하게 솟는다. 눌러 흔드는 힘과 음을 끌어당기는 각도, 왼손이 머무는 시간이 조율된다. 익숙한 가락이라도 손끝이 기억하던 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금속현의 차가움은 남도 선율과 만나 낯선 온도를 낸다. 강하게 누르면 음이 거칠어질 수 있다. 얕게 밀면 성음이 얇아진다. 깊은 농현과 미세한 꺾임, 음과 음 사이를 파고드는 시김새가 정확하게 살아야 철가야금의 맛이 난다. 연주자는 힘을 쓰면서도 소리를 억누르지 않아야 한다. 산조는 무속 음악, 시나위, 판소리의 어법이 기악 독주 형식 안에 스며든다.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속도의 증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산조 한 바탕은 한 연주자의 호흡이 장단마다 다른 표정을 얻는 과정이다. 가락은 쌓이고, 풀리고, 되감긴다. 마지막에는 다른 긴장에 닿는다. 우면당 무대는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굿거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세마치 순서로 구성된다. 다스름은 악기와 연주자의 숨을 맞추는 문턱이다. 진양조는 가장 느린 호흡으로 성음의 바닥을 다진다. 중모리는 말하듯 선율을 세운다. 굿거리는 남도 음악의 흥을 드러내고, 엇모리는 박의 비틀림으로 긴장을 바꾼다. 자진모리와 휘모리는 손끝의 밀도를 끌어올리며, 세마치는 긴 여정을 맺는다.

전바탕은 짧은 발췌 연주와 다르다. 산조 일부만 들려주는 방식은 특정 장단의 매력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전바탕은 연주자의 체력, 집중력, 장단 이해, 성음 운용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느린 호흡에서 빠른 박까지 끌고 가는 긴 선을 유지해야 한다. 청중은 한 유파가 품은 구조와 정서를 한 번에 듣는다. 이태백류 철가야금산조는 명인 이태백의 남도 음악 이력과 깊게 닿아 있다. 진도에서 태어난 그는 이임례 명창의 아들로 성장하며 남도 소리를 몸에 익혔다. 판소리고법, 진도씻김굿, 아쟁산조 등 여러 영역을 섭렵했다. 이태백류 아쟁산조와 철가야금산조를 세운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서은영 가야금 독주회 공력 Ⅴ 공연 포스터. 사진=국립국악원
서은영 가야금 독주회 공력 Ⅴ 공연 포스터. 사진=국립국악원

 

명인 이태백이 이날 장구를 잡는 점도 공연의 무게를 키운다. 산조에서 장구는 연주자의 숨을 받아주고, 가락의 길을 밀어준다. 장단의 변곡마다 긴장을 조절한다. 스승이 장구로 호흡을 내고 제자가 철가야금으로 응답할 때, 철가락은 악보의 재현보다 사제 간 귀의 대화에 가까워진다. 서은영은 2024년 겨울부터 이태백류 산조와 철가야금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고 알려졌다. 이미 여러 유파 산조를 연주해 온 음악가에게도 철현은 별도의 훈련을 요구한다. 금속현의 탄성, 남도 시김새의 두께, 장단마다 달라지는 왼손의 압력은 오래된 가야금 감각을 다시 점검하게 한다.

서은영은 국립국악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예술사·예술전문사를 거쳐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연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가야금 지도단원, 국가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한다. 제16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가야금 금상, 제23회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 일반부 대통령상을 받았고,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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