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칼럼] 그림을 팔아 먹고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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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칼럼] 그림을 팔아 먹고살 수 있다면

문화매거진 2026-06-16 10:59: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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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나 잉어를 찾는 물새들 / 그림: 정혜원
▲ 붕어나 잉어를 찾는 물새들 / 그림: 정혜원


[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이제라도 작업을 줄이고 취업을 할 것인가? 

아는 사람이 내 푸념을 듣더니 예술인에 대한 환상이 박살 난 듯 실망한 눈초리로 말했다. 
“예술가란 일반 사람들과 달리 직장에 안 다니고 자기 작업을 하기 때문에 멋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당황했다. “그럼 돈은 어떻게 벌어요? 그림은 돈이 되지 않아요.”

“팔리는 그림을 그리면 되죠. 주변을 둘러보면 붕어나 잉어 그림 같은 거 좋아하던데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잘 팔릴 것 같다고 취향에 맞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 내가 그린 붕어나 잉어가 잘 팔릴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요즘 그런 그림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실감 나게 재현해 주는 시대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새 젊은 작가의 그림이 잘 팔린다던데, 혜원 씨도 그림을 팔아 보는 건 어때요?”

적어도 내 주변에서 그림을 잘 팔고 있다는 사람은 못 봤는데 대체 누가 그렇게 잘 판다는 걸까? 다들 잘 팔면서 쉬쉬하고 있는 걸까? 의아했지만 나로서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메이저만의 세계가 있는지도 모르므로, 그림 같은 건 아무도 사지 않는다고 함부로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나도 그림을 팔 수만 있다면 팔고 싶다. 결코 내 작품이 너무 소중해서 어디로도 보내지 않고 품에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돈으로 바꿀 수만 있었다면 취업을 고민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어느 일본 작가의 글을 봤다. 작품 판매 사이트를 열었다는 안내였다. 그는 흰 바탕에 검은 선으로 된 심플한 드로잉을 즐겨 그리는 작가다. 드로잉을 엮어 독립출판물을 펴내기도 해서 나도 그의 책을 한 권 소장하고 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하얀 화면에 그림들이 격자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제목과 가격이 단정한 폰트로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풍부한 여백 속에서 낙서 같은 그림의 심플한 매력이 돋보였다.

사이트가 멋져 보여서 문득 나도 인터넷으로 작품을 팔아 보고 싶어졌다. 사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마다 번번이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 그림이 과연 팔릴까? 판다면 얼마에 팔아야 할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통신판매업 사업자로 네이버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독립출판을 하면서 인터넷상으로 책을 팔기 위해 갖춘 시스템이다. 비록 개점휴업 상태라 판매는 제로지만 차마 접지 못하고 5년 넘게 연초마다 등록면허세를 따박따박 납부하고 있다. 심지어 도메인 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판은 깔아 둔 셈이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깔아 뒀다. 잔뜩 들떠서 장비만 그럴싸하게 갖춘 아마추어처럼. 나는 별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작품이 팔릴 거라곤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림을 팔아 보라’는 말에 속으로 ‘팔려야 팔지’라고 발끈했던 것은 어쩌면 자격지심이 앞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심 ‘그게 될 것 같냐?’, ‘당신이 한번 해 보시지’라고 한없이 고깝게만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말들은 뭘 몰라서 하는 소리라기보다 그저 나를 응원하기 위한 다정한 조언이었다. 그런데도 괜히 혼자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럴 게 아니라 작은 걸음이라도 떼어 보자고 다짐하는 요즘이다. 조금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 가면 되고, 정 안 되면 언제 그런 걸 했었냐는 듯 시치미 떼며 은근슬쩍 도망쳐도 된다. 

종이와 연필도 없이 본가를 떠나와 1년 넘게 드로잉 없는 생활을 이어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다이소에 들러 드로잉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료인 종이와 연필을 마련했다. 오랜만에 그리고 싶은 것들이 떠올라 작은 드로잉 시리즈를 근근이 그려 나가고 있다. 조만간 작은 사이트를 열어 그거라도 하나둘 내걸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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