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박동선 기자] 영화 '눈동자' 리뷰: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야가 닫히는 순간, 억눌렸던 내면의 결핍과 광기는 비로소 가장 선명하게 눈을 뜬다. 시각을 잃어가는 '육체의 맹목'과 사랑을 가장한 집착이라는 '심리의 맹목'이 스크린 위로 서늘하게 뒤엉키며, 올여름 대중의 오감을 옥죌 웰메이드 서스펜스가 극장가에 펼쳐진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눈동자'는 유전병으로 시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사진작가 서진(신민아 분)이 쌍둥이 동생 서인(신민아 분)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다 그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 심리 스릴러다.
'무림여대생' 이후 오랜만에 1인 2역에 나선 신민아가 시력을 잃어가는 서진과 이미 시각장애를 안고 살아온 동생 서인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여기에 김남희가 서진의 의심을 대신 추적해 나가는 형사 도혁으로 분해 지극히 이성적인 시선으로 극의 무게감을 더했고, 이승룡은 지칠 줄 모르는 맹목적인 스토커 전남친 현민 역을 맡아 폭력적인 긴장감을 조율한다.
실제 '눈동자'를 살펴보면, 염지호 감독 스스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며 찍었다”고 밝혔듯 영화의 표면적인 스릴러 전개 이면에는 일그러진 사랑의 극단적인 온도 차가 자리하고 있다. 동생의 죽음을 좇는 서진의 내면에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았던 동생을 아끼면서도 온전히 곁을 내어주지 못했던 애증, 그리고 뒤늦은 후회와 그리움이 혼재되어 있다.
머지않아 자신도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뼈저린 동질감은 시각 차단이라는 원초적 공포와 맞물려 그녀의 심리를 걷잡을 수 없이 약화시키고, 역설적으로 누군가에게 기대게 만드는 맹목적인 생존 본능을 자극한다.
이러한 서진의 심리적 빈틈을 맴도는 타인들의 각기 다른 온도는 작품 고유의 서스펜스를 빚어낸다. 브레이크 없는 스토킹과 폭력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현민이 사랑의 가장 파괴적인 단면을 상징한다면, 조력자로 나선 형사 도혁의 존재는 또 다른 질감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서진의 의심을 대신 파헤치며 지극히 차갑고 현실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이내 다정한 연민을 건네는 그의 간극은, 암흑 속에서 누구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서진의 예민한 심리와 맞물려 은근한 심리적 마찰을 일으킨다.
이렇듯 얽히고설킨 심리는 주인공의 시야를 제한하는 시청각적 연출과 더해져 텐션을 폭발시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상대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서진의 1인칭 시점은 필연적으로 대중을 청각적 자극에 곤두서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서인의 가마를 돕는 장애인 조수와 그의 아버지 등 일상적인 주변인들은 서진의 불안 속에서 장르 특유의 텐션을 높이는 서늘한 미끼로 탈바꿈한다.
특히 절박한 생존 본능 탓에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섣불리 안도하고 의지하는 모습은, 도리어 가스라이팅의 덫처럼 느껴지며 질식할 듯한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스토커 현민의 무자비한 폭력이 휩쓴 지하 주차장 신 이후 집에서 펼쳐지는 상상 신이 극도의 불안이 빚어낸 환상으로 구현되는 것이나, 간접적으로 목격한 호텔 대형 화재 등 산발적인 위기들조차 점차 서진의 숨통을 옥죄는 거대한 공포로 돌변하는 것도 이 치밀한 심리적 설계 덕분이다.
물론 스페인 원작을 한국적인 정서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스토리 전개나 표현법이 여느 작품처럼 하나로 매끄럽게 흐르기보다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여지도 존재한다. 다만 시각적 차단이라는 절대적인 제약을 영리하게 활용해 인물들의 파괴적인 감정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법은, 낯선 위협과 맹목 속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애의 본질적인 의미를 한국적 정서로 자연스럽게 바꿔놓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 '눈동자'는 애증과 집착이라는 일그러진 결핍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웰메이드 스릴러의 미덕을 입증한다. 완전한 암흑 속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서늘한 통찰은 대중의 심연에 압도적인 잔상을 남긴다.
한편 영화 '눈동자'(감독 염지호, 제작 드림캡쳐·타임하이스트, 제공 쏠레어파트너스, 바이포엠스튜디오)는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상영시간은 105분이다.
뉴스컬처 박동선 dspark@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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