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저임금 1만 2000원 꺼낸 노동계…경영계 ‘화들짝’(AI 생성)
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16.3% 인상한 시급 1만 2000원을 제시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의 본격적인 샅바 싸움이 시작됐다. 지역 노동계에선 강력 지지하는 반면 사용계에선 무리한 금액이라고 반발한다.
◆노동계 “집값·물가 뛰는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비롯한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시급 1만 2000원을 요구했다. 올해보다 16.3% 오른 수준이다. 이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내놓은 2027년 적용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이다. 월급여로 환산 시 250만 800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운동본부는 “지난 3년간(2023∼2025년)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이 2.37%로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 2.6%보다 낮아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대전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2027년 적정 실태생계비 시급 환산액은 1만 3737원인 만큼 양대노총도 현실적인 인상 폭을 고려해 적정 생계비의 87.4% 수준인 1만 2000원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초 민주노총 내부에선 1만 3000원대 요구안도 거론됐지만 최저임금위원회 협상 과정과 소상공인·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감안해 나름 절충안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16.3% 인상 폭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88년 이후 16% 이상 인상된 사례는 1989년(29.7%·23.1%), 1991년(18.8%), 2000년(16.6%), 2018년(16.4%) 등 네 차례에 불과하다. 노동계 요구안이 그대로 반영될 경우 2018년에 버금가는 역대 최고 수준의 인상률로 기록된다. 이 같은 강력한 인상안에 크게 작용한 명분은 세 가지다. 대전의 한 노무사는 “이날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최근 대기업 성과급 논란, 자산 가격 급등, 점심값보다 낮은 최저시급을 강조했다”며 “반도체 호황에 따라 삼성전자에서 1인당 6억 원에 달하는 성과금이 지급되고 그 경제 과실이 부동산을 끌어올리는 구조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주택의 가격을 주택별·지역별 세대수로 가중평균해 산출한 전국 아파트 매매평균가격(KB부동산 제공)은 2020년 5월 3억 9698만 원에서 지난달 5억 7348만 원으로 44.5% 올랐다. 같은 기간 충청권도 대전은 2억 9765만 원에서 3억 7606만 원(26.3%), 세종은 3억 5771만 원에서 5억 5702만 원(55.7%), 충남은 1억 7469만 원에서 2억 3170만 원(32.6%), 충북은 1억 4904만 원에서 2억 3800만 원(59.7%)으로 상승했다. 외식물가도 가파르게 올랐다.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에 따르면 대전지역의 지난 2021년 3월 냉면 7900원, 비빔밥 8500원 김치찌개 백반 6100원, 짜장면 5400원, 칼국수 5800원었으나 올 4월엔 냉면 1만1200원(41.8%), 비빔밥 1만700원(25.9%), 김치찌개 백반 1만800원(77.0%), 짜장면 7400원(37.0%), 칼국수 8600원(48.3%)으로 크게 인상됐다.
◆제조·자영업계 “현실 외면 요구”
사용자 측은 화들짝 놀란 분위기다. 문재인정권 당시 소득 주조 성장 기조 아래 2017년 6470원이던 최저임금이 2022년 9160원으로 무려 41.6% 오른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충남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최저임금 최종 합의에서도 근로자위원 중 민주노총 위원 4명이 불참한 바에서 알 수 있듯 내년 최저임금 논의에 민주노총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삼성전자의 1인당 6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 등을 근거로 소득 격차가 확대됐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반도체만 호황일뿐 대외전쟁발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이 크게 떨어진 것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주휴수당, 연장·야간수당도, 퇴직금과 출산 휴가 급여도 모두 올라 경영 위기가 가중된다”고 호소했다.
사용자 측은 아직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경영계는 내수 침체와 소상공인 경영난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만큼 노동계와 상당한 격차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81%를 기록했다. 중소법인 대출 연체율은 0.88%,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71%로 집계됐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대전상점가상인회 관계자는 “제조업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충청권에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곧 내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며 “특히 대전은 전체 사업체 약 20만 개 가운데 자영업 관련 업소가 8만 7483곳에 달하고 이 중 외식업이 2만 3347곳, 소매업이 2만 2477곳을 차지할 정도로 소비 의존도가 높다”며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와 폐업 위험으로 직결되는 만큼 최저임금도 노동자와 소상공인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향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경영계가 주장하는 업종별 구분 적용도 올해 최저임금 심의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음식·숙박업 등 지불 능력이 취약한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이 요구는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라 십수년 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를 ‘누군가는 인간답지 않게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로 인식하면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하향식 차등 적용은 노동자와 자영업자 모두에게 해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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