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경진 기자] 온누리상품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상품권 깡’을 막기 위한 정부의 구조개혁이 본격화된다.
불법 환전 범죄를 원천 차단해 골목 유통가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지만, 거점 인프라가 묶이면서 발생할 ‘소비자 이탈’ 현상과 가맹점 유효기간 만료로 촉발될 ‘행정 사각지대’ 등 역효과를 최소화할 정책 보완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15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기준 정비와 부정유통 방지를 골자로 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기준 정비를 통해 고가의 사치 제품이나 기호 식품 취급 업종을 유통망에서 제한하는 한편, 한정된 정책 자금을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소상공인에게 집중시켜 골목 유통가 전반의 자금 선순환 효과를 이끌어낼 방침이다.
그동안 온누리상품권은 가맹점 매출 상한선이 부재해 전통시장과 상점가 내에 위치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형 식자재마트나 고소득 전문직까지 수혜를 보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다. 이에 따라 중기부는 ‘연매출 30억원 이하’라는 상한선과 고소득 전문직종까지 가맹점 제한 대상에 포함해 유통 시장 혼선 방지에 나섰다.
소상공인들은 온누리상품권 가맹 기준 개편을 두고 제도의 본래 취지를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기대감을 나타냈다. 제한 없이 결제가 이뤄지던 대형 점포에 제한이 생겼다는 점을 소비자들이 인지하기 시작하면 한정된 정책 자금이 실질적으로 더 영세한 소상공인들에게 집중돼 골목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통가 안팎에서도 과거 10% 안팎의 특별 할인 기간마다 유통 생태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던 ‘상품권 깡’ 등의 부정 거래를 원천 차단하고, 하단 소매 유통망 전반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청정 유통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 중기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부정유통 금액의 71.7%(약 1800억원)가 결제액 50억원 이상인 9개 대형 가맹점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에는 온누리상품권으로만 월 63억원의 허위 매출을 올린 사례가 적발되는 등 연간 부정유통 규모가 25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은 “매출 기준을 낮춤으로써 영세 소상공인들의 매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단순 수치로 계량화하긴 어렵겠지만 골목상권 제한 조치를 통해 온누리상품권이 원래 취지대로 돌아가는 선순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조치와 관련, 소비자 이탈 현상과 유효기간 만료에 따른 즉각적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골목형상점가 등 지역 상권 내에서 매출 상위권을 견인하며 유동 인구 유입을 이끌던 핵심 거점 점포들이 대거 가맹 취소 명단에 오를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들 점포는 온누리상품권 수요를 바탕으로 외부 소비층을 골목상권으로 유인해 인근 영세 점포로 분산시키는 ‘낙수효과’를 창출해 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규제 강화에 따라 거점 인프라가 묶이면서 상권 전반의 집객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연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2023년 행정안전부가 연 매출 30억원 이상 업체의 가맹 등록을 제한하며 유발한 ‘지역사랑상품권’ 혼란과 유사하다. 당시 강원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농협 하나로마트 등 거점 점포에서 상품권 결제가 차단되면서 소비자 불편과 지자체 혼선이 현실화된 바 있다. 학계는 이번 중기부 개정안 역시 기계적인 매출 기준으로 거점 점포를 강제 퇴출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상권 위축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주의를 당부했다.
여기에 현장 소상공인들이 마주한 ‘행정 장벽’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등록된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오는 10월 법정 유효기간(3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자격 유지를 위해서는 과세표준증명원을 비롯한 국세청 매출 증빙 서류를 갖춰 지자체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제출하고 전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문제는 연 매출 30억원 기준 정비에 따른 퇴출 조치와 수십만 가맹점의 유효기간 만료 시점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갱신 대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로드숍 중심의 일반 골목형상점가는 행정 절차를 보조할 전담 매니저가 부족한 실정이다. 디지털 기기 조작에 익숙하지 않고 복잡한 세무 절차 처리에 취약한 영세·고령 상인들의 경우, 신청 시기를 놓치거나 서류 보정 과정에 대응치 못해 가맹 지위를 불명예 퇴출당할 가능성이 크다.
유통 전문가들은 부정유통 차단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상품권 자체의 범용성 축소로 인한 ‘수요 급감’ 자충수를 막기 위해 섬세한 ‘투트랙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제언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형 업체의 매출 쏠림과 부정유통이 우려된다면 이용처 자체를 잘라버릴 게 아니라, 이들을 결제망에 묶어두되 상권 활성화 기금 출연이나 영세 상인 공동 마케팅 지원 등 간접적인 상생 루트를 마련하는 설계가 필요하다”며 “소비자가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범용성이 유지돼야 온누리상품권의 유동성이 마비되지 않고 골목상권으로 자본이 흘러 들어갈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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