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HD현대중공업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에서 기술 평가 우위를 확보하고도 보안 감점에 발목이 잡히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 결과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국가 핵심 전력 사업의 특성상 보안 기준의 엄정한 적용은 불가피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기술 경쟁력과 절차적 평가 요소 간 균형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KDDX 제안서 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이 약 0.5867점 차이로 한화오션에 밀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기술 평가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우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안 감점(1.2점)이 선정 결과를 뒤집는 결정적 변수가 됐다. 통상 1점 미만의 점수 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방산 사업 특성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특히 기술 평가에서의 우위가 사실상 무력화된 만큼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1일 KDDX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 제안서 평가 결과를 양사에 통보했다. 사후 설명과 우선협상대상자 공식 지정, 본계약 절차가 남았지만, 한화오션이 수주전 승리의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안 감점의 발단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HD현대중공업은 해당 시기 기밀유출 문제로 보안 벌점을 부과받았다. 이 벌점은 2022년 판결을 기준으로 적용 기한이 정해졌으나,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재검토를 거쳐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확정된 사건을 분리 적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그 결과 보안 감점 적용 기한이 올해 12월까지 1년 연장됐다.
HD현대중공업은 즉각 반발했다. 보안 감점 연장 조치를 막아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지난 5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보안 감점 적용 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결정에 대해 항고한 상태다. 항고가 받아들여질 경우 KDDX 사업자 선정 절차에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관계자는 “기술 점수에서 크게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선정되지 못한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향후 디브리핑을 신청해 평가 결과에 대한 세부 내용과 근거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수용하기 위해선 보안 감점을 둘런싼 논란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점 점수가 양사 점수 차의 2배라는 점에서 보안 감점 기간이 사전 설명 없이 갑자기 연장된 부분은 향후에도 잡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평가 결과 전체 구도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HD현대중공업에서 충분히 문제 제기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절차상의 문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전문가는 “기본설계 결과물이 경쟁사에 넘어간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HD현대중공업의 제외 요청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영업비밀이 포함된 자료가 경쟁사에 넘어간 상태에서 입찰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본설계 수행 업체가 후속 사업을 이어가는 구조가 일반적인데, 이번에 경쟁 구조로 바뀌면서 사업 연속성이 끊어졌다”고 우려했다.
방위산업학회 채우석 이사장은 함정 건조 사업에서 기술력이 뒤로 밀린 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보안 문제도 중요하지만, 함정 건조에서는 기술력이 더 중요한 요소”라며 “일반적으로 HD현대중공업이 수상함 분야에서 더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 의사결정에서 그런 부분이 뒤로 밀린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 역시 “기본설계 수행 업체가 후속 사업을 이어서 가는 구조가 맞는 방향”이라며 “절차 중심으로 가다 보니 목적 달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구조가 반복될 경우 산업 전반에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기술력이 더 좋은 기업이 선정되는 게 맞는데, 보안 요소가 과하게 작용하면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기술 투자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산업계 특성상 기술 축적과 사업 연속성이 전력 완성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평가 체계의 균형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된다.
방위사업청은 사업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오는 7월 말 우선협상대상자와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의 항고가 진행 중인 만큼 법적 변수는 남아 있지만, 사업 일정을 되돌리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전문가는 “이번 수주전 결과를 통해 방산업계에서도 보안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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