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스페이스X의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통신 인프라로 자리 잡으면서 군 통신망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과거에는 위성을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느냐가 우주산업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최근에는 통신 서비스와 네트워크 운영 능력이 새로운 경쟁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도 차세대 우주 통신망 확보에 나서면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 스타링크, ‘위성’이 아닌 ‘통신망’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러-우 전쟁은 위성통신망이 현대 전장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실제로 스타링크는 러-우 전쟁 초기부터 군과 정부, 민간 통신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활용됐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타링크는 지상 통신망이 파괴되거나 전파 교란이 발생한 지역에서도 인터넷 연결을 제공하며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와 드론 운용을 지원했다.
스타링크의 영향력은 최근에도 확인됐다. 지난달 22일,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미 국방정보국(DIA)과 유럽사령부 평가를 인용해 러시아군이 사용하던 불법 스타링크 단말기 수천 대가 차단된 이후 일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이동 조율과 무인기 운용 능력이 저하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현대 전장에서 위성 자체보다 위성과 단말기, 관제 체계, 사용자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통신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미국과 유럽도 군 통신망 확보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페이스X는 민간용 스타링크 외에도 정부·군 전용 서비스인 스타실드(Starshield)를 운영하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 2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 국방부가 올해부터 스타실드 기반 군 통신 서비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독자적인 위성통신망 구축을 위해 IRIS²(Infrastructure for Resilience, Interconnectivity and Security by Satellite)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IRIS²는 정부기관과 군, 공공서비스에 안전한 위성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우주산업 수익 ‘서비스’로 이동
미국과 유럽이 위성통신망 구축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산업 구조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 우주산업은 오랫동안 로켓과 위성 제작 중심 산업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발사보다 운영 서비스의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퀼티 스페이스(Quilty Space)가 올해 발표한 위성산업 시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세계 위성산업 매출의 상당 부분은 위성 제작이 아닌 통신 서비스와 데이터 활용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스타링크가 대표적 사례다. 스페이스닷컴이 이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스타링크는 현재 1만 기가 넘는 위성을 발사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도 위성 숫자보다 가입자 기반의 통신 서비스 수익이다.
군사 분야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미 우주개발청(SDA)은 저궤도 위성을 활용해 통신과 미사일 경보, 정보 전달 기능을 하나로 연결하는 차세대 우주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달 개최한 ‘2026년 가장 큰 우주 위협은 무엇인가(What Are the Biggest Space Threats in 2026?)’ 토론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이후 군사작전에서 위성 기반 통신과 데이터 연결성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우주산업의 경쟁이 통신·데이터·네트워크 서비스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 군위성통신체계-Ⅲ, 한국 우주산업의 새로운 시험대
이런 추세인 가운데 우리 군이 추진하는 사업이 ‘군위성통신체계-Ⅲ’ 사업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2일 제175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군위성통신체계-Ⅲ 체계개발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사업 규모는 약 1조2700억원이다.
군위성통신체계-Ⅲ는 현재 운용 중인 군 위성통신체계의 후속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으로, 정지궤도 통신위성과 지상체계를 함께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군 통신위성 1기를 개발하는 사업이 아니다. 위성체와 통신 탑재체, 지상 통제체계, 운용 시스템, 사용자 단말기 등이 함께 구축되는 대형 체계 사업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국내 우주 통신산업 역량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로 평가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성체 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한화시스템은 위성통신과 우주 인터넷 분야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LIG D&A는 군 통신체계와 위성 탑재체 분야 역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KT SAT은 국내 대표 위성통신 운영 사업자로 꼽힌다.
과거 우주산업이 위성 제작 기업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위성 운용과 통신 서비스, 지상 인프라 구축 기업의 역할도 함께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방위사업청도 지난 2월 민·관·군 합동 K-LEO 산업협의체를 출범시키며 한국형 저궤도 위성통신 생태계 구축에 나선 바 있다.
러-우 전쟁 이후 각국이 경쟁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위성이 아니다. 위성과 단말기, 관제 체계, 통신 서비스를 하나로 연결한 네트워크다. 스타링크가 전장에서 보여준 변화 역시 위성 제조 기술보다 통신망 운영 역량이 현대 군사력의 핵심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우주산업 경쟁의 무게중심 역시 위성을 만드는 기술에서 이를 연결하고 운영하는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경쟁은 무엇을 쏘아 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그 위성을 통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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