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4일(이하 현지시간) 교황청 방문 일정을 시작하고, 첫 일정으로 이날 오후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석해 기념 연설을 했다.
이 대통령은 기념연설에서 "26년 전 6월 15일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저는 지금도 그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확신한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15일에는 교황궁에서 레오 14세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이어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과도 만날 예정이다.
李 '평화·연대' 교황청 특별미사 참석…유흥식 미사 집전·한국어 첫 미사
"한반도 평화가 세계 평화로 이어지길…선순환 함께 만들어 가길 희망"
이재명 대통령이 주일을 맞아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석해 전 세계 평화와 연대를 향한 한국의 의지를 표명했다.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황청의 지속적인 지지와 관심을 당부하며 국제사회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 바오로 대성당은 로마 4대 대성당 중 하나로, 매년 1월 기독교인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가 봉헌되는 장소다. 이날 미사는 유흥식 추기경이 집전했으며, 300명 이상의 한국인 성직자와 신자, 교황청 주요 인사 및 외교단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기념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 평화로 이어지고, 세계의 연대가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굳건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함께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 국제 갈등 상황을 언급하며 "한반도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은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며 "경제 위기와 사회적 격랑 속에서도 우리는 총과 칼이 아닌 촛불로, 폭력이 아닌 평화로 어둠을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또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언급하며 "그 희망의 불씨가 지금도 살아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대통령은 전단 살포 중단,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긴장 완화 조치를 추진해 왔음을 설명하며 "군사적 신뢰 회복과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를 언급하며 "세계 청년들이 국경과 언어, 문화의 차이를 넘어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배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교황청의 관심과 건설적 역할을 요청했다.
끝으로 이 대통령은 성경 이사야서의 구절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를 인용하며 "오늘 우리의 기도가 온 세상의 평화와 연대를 위한 복된 밀알이 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유흥식 "평화 포기 안 돼"…"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李대통령 남북정책에 "동의하며 매일 기도"
이날 특별미사는 유흥식 추기경이 집전을 맡아 한반도 평화와 세계 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유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대통령님의 직무 수행에서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남북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자는 호소에 깊이 동의하며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결보다 대화가, 증오보다 화해가, 두려움보다 신뢰가 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대한민국 대통령과 함께 온 세상에 증언하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추기경은 교황 레오 14세의 첫 인사인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를 언급하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와 형제애 정신을 계승한 표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황님은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며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셨다"며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온 인류가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현실을 지적하며 "분단의 상처 속에 형제·자매가 갈라져 있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며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평화를 포기할 수 없으며, 이를 건설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한 "참된 평화는 단순히 갈등을 멈추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구체적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설파했다. 정치와 외교의 언어가 달라도 생명을 지키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마음은 결국 복음의 정신 안에서 만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2014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한 일도 다시 불러냈다. 유흥식 추기경은 당시 교황이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라고 말한 대목을 소개하며, 상처 입은 사람 곁에 함께 있는 일이 교회가 지녀야 할 연민의 방식이라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유 추기경은 "아무리 어려운 곳에도 희망은 있다. 메마른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꽃은 피어난다"며 "폭력의 자리에 연민이, 무관심의 자리에 소통이 들어서야 한다.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대라도 경청의 마음으로 만남을 추구해야 평화의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대통령의 기념연설 전문이다.
유흥식 추기경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사도 바오로의 영성이 살아 숨 쉬는 이 거룩한 자리에 서게 돼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건함을 느낍니다.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따뜻하게 환대해 주신 추기경님과 교황청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날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갈등과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성은 멈추지 않고, 중동에서는 새로운 충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협력과 공존의 기반이 흔들리며, 국제사회 곳곳에 분열과 대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야기했던 남과 북은 다시 단절의 시대로 되돌아갔습니다. 남북을 연결하던 소통의 통로는 닫혔고, 불신과 긴장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수많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굳건히 이겨낸 전력이 있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고, 전쟁의 폐허 위에서 나라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독재와 억압의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경제 위기와 사회적 격랑 속에서도 우리는 총과 칼이 아닌 촛불로, 폭력이 아닌 평화로, 냉소가 아닌 연대로 짙은 어둠을 밝혀왔습니다.
평신도의 자발적인 신앙 공동체로 시작해 혹독한 박해를 견뎌낸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우리 사회가 어려운 순간을 겪을 때마다 인간의 존엄과 평화, 연대의 가치를 지켜온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26년 전 6월 15일,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오랜 적대와 긴장을 넘어,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협력, 교류와 왕래가 이어지며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확신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비롯한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를 추진해 왔습니다. 또한 흡수통일이나 일방적 체제 경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하게 이어가겠습니다. 정전 상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생각입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오랜 세월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염원해 왔고, 대한민국 역시 그 기대와 성원에 부응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결같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신 교황청에 이 자리를 빌려 대한민국 국민들과 함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갈등과 불확실성이 세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지금, 이제 대한민국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민주주의가 길어 올린 빛으로, 풍요로운 문화가 빚어낸 품격으로, 과학기술과 혁신이 열어가는 미래의 가능성으로 더욱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모든 이가 존엄한 삶을 누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으겠습니다.
국경과 이념,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손을 맞잡고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불신이 있는 곳에 신뢰를, 분열이 있는 곳에 연대를 더하며 평화가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될 수 있도록 국제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이사야서 2장 4절의 귀한 말씀이 온 나라에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로 이어지고, 세계의 연대가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굳건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함께 만들어 가길 희망합니다.
내년 서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립니다. 국경과 언어, 문화의 차이를 넘어 우정을 나누며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전선(戰線)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이를 위한 교황청의 관심과 건설적 역할을 요청드립니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도 위로와 용기, 그리고 희망으로 전해지길 바랍니다.
오늘 함께 봉헌하는 우리의 기도 역시 온 세상의 평화와 연대를 위한 한 알의 복된 밀알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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