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선거의 시간이 지나갔다. 거리마다 걸렸던 현수막은 하나둘 내려가고 확성기의 소음도 멈췄다. 그러나 선거가 남긴 마음의 흔적까지 쉽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위한 축제여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책보다 비난이 앞섰고 토론보다 감정의 대립이 더 깊게 남았다. 가까운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고 오랜 인간관계마저 흔들리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경쟁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승자는 승리의 기쁨보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돌아봐야 하고 패자는 결과를 인정하며 지역과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이다. 선거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방치하면 갈등은 일상이 되고 불신은 공동체를 더욱 메마르게 만든다. 서로를 향해 던졌던 날 선 말들을 이제는 거둬야 한다.
역사는 갈등보다 포용이 더 큰 힘을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넬슨 만델라는 오랜 인종 갈등 속에서도 보복이 아닌 용서를 선택했다. 자신을 억압했던 이들까지 품어 안으며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묶었다. 미국 정치사에서도 로널드 레이건과 팁 오날은 치열하게 논쟁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했다. 정치적 견해는 달랐지만 국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사에도 갈등을 넘어 통합의 길을 선택했던 순간이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보수와 진보,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회복을 위해 힘을 모았던 경험이다. 당시 정파적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생존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고통 분담에 동참했다. 시민은 자발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고 사회 전체가 위기 극복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움직였다.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있었지만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대립과 분열이 아니라 함께 책임을 나누려는 ‘연대의 정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지역 소멸의 위기, 경기 침체, 청년 문제, 기후 위기까지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갈등과 반목에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경쟁의 에너지를 지역 발전과 민생 회복을 위한 힘으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같은 생각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겨야 할 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공동체는 무너지고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 사회는 앞으로 나아간다.
선거의 열기가 남긴 상처를 이제는 지워야 한다. 마음속에 남은 불신과 감정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시 손을 맞잡아야 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지역과 대한민국은 ‘누군가 한쪽’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터’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 서로를 어떻게 품어 안느냐에서 완성된다. 이제는 승패를 넘어 존중과 포용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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