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다투이(抱大腿)'라는 표현이 있다. 권력자에게 기대어 이익을 얻는다는 뜻인데, 최근 중국에서는 AI라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야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변용되고 있다.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장쑤성 난징과 안후이성 허페이를 방문해 현지 첨단기업들을 직접 둘러봤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취재는 주한 중국대사관 초청으로 이뤄졌으며, AI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허페이에 본사를 둔 음성인식 전문기업 아이플라이텍이 대표적 사례다. 1999년 중국과학기술대학 실험실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성공적인 산학협력 모델로 평가받는다. 실시간 녹음과 텍스트 변환, AI 요약 기능을 탑재한 전자잉크 태블릿 'AI 노트'는 회의가 잦은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10개 언어 실시간 번역과 83개 언어 필기 인식이 강점이다.
약 4천200위안(94만원) 상당의 AI 번역 안경을 직접 착용해봤다. 대화 내용이 파란색 자막으로 시야에 실시간 표시됐다. 투명 스크린 통역기, 교사 필기를 디지털화하는 스마트 칠판도 선보였다. 산업용으로는 음성 차량 제어 시스템, 미세 이상음을 감지해 결함 위치를 특정하는 음향 센서까지 개발됐다.
청천 아이플라이텍 AI 번역부문 총경리는 중국어-영어 번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했다. 엔비디아 칩 없이 화웨이 AI 칩만으로 구동되는 대형언어모델(LLM)을 완성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기차 업체 니오의 허페이 F2공장에서는 900여 대 로봇이 분당 1대씩 차량을 생산한다. 용접 로봇은 쉼 없이 가동되고, 운반 로봇은 분주히 부품을 이동시킨다. 품질 검사 완료 차량은 무인운전으로 지정 구역까지 알아서 움직인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권총 모양 기구를 든 작업자가 눈에 띄었다. 차체에 갖다 대기만 하면 결함을 자동 탐지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자체 개발한 스마트 운영체제 스카이OS 덕분에 2014년 설립 이후 재고 제로를 유지 중이다. 공장 지하에는 하루 1.5테라바이트 규모의 전 공정 데이터를 수집하는 센터가 가동된다. 향후 의사결정 자동화가 목표라고 관계자는 밝혔다.
배터리 기업 고션하이테크는 색다른 해법을 내놨다. 전기차 방전 시 앱 호출을 받으면 자율주행으로 달려가 최대 8대를 완충시키는 이동형 충전기다.
전통 미디어도 변신 중이다. 난징의 장쑤방송공사(JSBC)는 60여 개 대학과 손잡고 AI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하고 있다. 중국어 인터뷰 답변을 입 모양까지 정교하게 영어로 변환하는 기술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허페이혁신관에는 코끼리 코 움직임을 정밀 모사하는 로봇 팔, 인공태양 핵융합 기술, 양자 기술 등 2천600여 건의 혁신 성과물이 전시돼 있다.
다만 일부 기업은 한국 취재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취재 허용 후 번복하거나 현장 촬영을 제지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핵심 기술 축적에 따른 보안 의식이 강화된 결과로 보인다.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는 미국 제재가 촉매제가 됐다. 허페이시는 트럼프 1기 때 고율 관세로 위기에 몰린 니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살려냈다. 액정 패널 기업 BOE도 같은 방식으로 기사회생했다. 지방정부가 벤처캐피털 역할을 자처하는 '허페이 모델'이 정립된 배경이다.
허페이시 고위 관료는 성공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 방향을 강제하지 않고 필요한 자원과 공간을 제공하는 조력자 역할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AI를 도구 삼아 생산성을 높이고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철학도 강조했다.
김용준 전 성균관대 교수 등은 저서 '테크노 스테이트 차이나'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의 전례 없는 제재 속에서 중국 정부는 전시 상황처럼 모든 자원을 기술 자립에 쏟아붓고 있다고.
난징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별명을 귀띔했다. '촨젠궈(川建國)'다. 트럼프의 중국식 성씨 '촨푸'와 건국을 합친 말이다. MAGA를 외치지만 실상 중국 부상을 돕는 건국 영웅 같다는 비꼼이다.
그러나 그림자도 존재한다. 높은 청년 실업률에 시달리는 중국 경제에 AI 확산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난징의 한 기업 관계자는 생산 자동화로 과거 수백 명이던 현장 인력을 약 20명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인력이 기술로 대체되는 현장을 직접 목도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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