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이 보유한 달러 자금이 2021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까지 불어났다. 정부가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꿔달라고 직접 요청했음에도 기업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예치된 기업 달러예금 잔액이 11일 기준 543억7천1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23년 1월 말 552억5천500만달러 이후 약 3년 5개월 만의 최대 규모다.
증가세는 최근 수개월간 가파르게 이어졌다. 3월 말 462억300만달러였던 잔액은 4월 말 490억2천800만달러, 5월 말 507억1천300만달러로 매달 늘었다. 특히 6월에는 불과 열흘 사이 36억5천800만달러(7.2%)가 추가됐다. 반대로 개인 고객의 달러예금은 1억3천900만달러 감소해 121억3천600만달러로 줄었다. 전체 합산 잔액은 5월 말 629억8천900만달러에서 6월 11일 665억700만달러로 35억1천800만달러(5.6%) 증가했다.
달러예금이란 원화를 미국 달러로 바꿔 예치해두었다가 만기나 출금 시점에 다시 원화로 수령하는 외화 금융상품이다.
정부는 시장 진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기아차 등 대형 수출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수출대금의 조속한 원화 전환과 해외에 묶여 있는 자금의 국내 송환을 요청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역시 시중은행들에게 달러예금 유치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한 상태다.
그러나 기업들의 계산법은 다르다. 6월 원·달러 환율 평균치가 주간거래 종가 기준 1,523.3원을 기록하며 1998년 2월 외환위기 당시(1,626.8원)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일일 등락폭도 10.1원으로 5월(6.6원)과 4월(8.9원)을 크게 웃돌았다. 다만 3월의 11.4원보다는 소폭 줄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외화를 손에 쥐고 있으려는 수요가 강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기업들이 수입대금 결제와 외화부채 상환을 대비해 달러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수출기업들도 환전 시점을 최대한 미루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 등 수출 호황으로 달러 유입이 늘었지만 원화 전환 비율은 오히려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예금 잔액이 쌓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환율은 미국 경제지표 발표, 중동 지역 군사적 긴장, 외국인 자금 이동 등 복합적 요인에 흔들리며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5월 15일 이후 1,500원선 위에 머물던 환율은 지난 5일 야간거래에서 1,56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당국의 강력한 개입과 휴전 기대감,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 등이 맞물리며 1,510원대로 하락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1,500원대 초중반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박스권 장세를 예상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이달 중 1,500원에서 1,560원 사이의 높은 변동성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반기 전망도 엇갈린다. 대외 환경에 따라 1,400원대 후반에서 1,550원 사이를 오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신한은행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이란 간 협정이 6월 중 타결되면 환율이 1,480원대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현재 양측 구도가 불안정해 합의가 쉽게 깨질 수 있어 하반기에 전쟁 이전 수준으로 시장이 되돌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나남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