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배터리' 뒤편에 독성물질…헝가리 삼성SDI 공장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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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배터리' 뒤편에 독성물질…헝가리 삼성SDI 공장의 그림자

프레시안 2026-06-13 13:25: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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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환경 오염과 정보 은폐로 현지 주민의 공분을 사 온 삼성SDI 헝가리 배터리 공장 지역 괴드(Göd)의 주민 활동가가 처음으로 한국 시민과 노동조합을 만났다. 6년 넘게 현지에서 싸움을 이어온 이 활동가는 '친환경'과 '인권 경영' 문구 뒤에 가려진 배터리 공장의 환경·인권 침해 문제를 고발했다. 아울러 모회사 삼성SDI가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해 국경을 넘어선 관심과 연대를 촉구했다.

헝가리 괴드 주민이자 전직 지방의원인 유디트 흘라바치(Judit Hlavács) 씨는 지난 11일 저녁 온라인으로 열린 토론회 '삼성SDI 헝가리 공장의 진실'에 주제 발표자로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과 기업과인권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엔 주최 측을 비롯해 한국과 헝가리 시민사회 관계자 등 40여 명이 참가했다.

헝가리는 2010년대 후반부터 유럽의 배터리 생산 허브로 부상했다. 당시 정부는 배터리 부문을 경제성장의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했고, 삼성SDI를 비롯해 SK온, 중국 기업 CATL, EVE Power 등 주요 배터리 셀 제조사가 대거 진출했다. 2022년 기준, 헝가리는 중국, 폴란드,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의 배터리 생산량을 기록했다.

괴드엔 2018년과 2022년에 각각 삼성SDI 헝가리 1·2공장이 들어섰다. 괴드는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북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전원 도시다. 그런데 준공 시기부터 지금까지 공장을 둘러싼 각종 정보 은폐와 환경오염, 주민 수용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유디트 씨는 "중앙정부와 시 정부 모두 공장 건설 계획을 주민에게 제대로 알리거나 협의하지 않았고, 주민 반발에도 불구하고 부지를 80만 제곱미터 더 확장하는 계획도 일방적으로 관철했다"며 "오히려 정부는 2020년 이곳을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해 괴드시 면적의 20%를 주 정부 소유로 바꿨고, 이곳에 무엇이 건설되든 주민들이 어떤 관여도 하지 못하게 권리를 박탈했다"고 밝혔다.

2020년 괴드 삼성SDI 공장 건설과 운영을 둘러싼 문제에 대응하는 주민 조직 괴드-에르트 협회(Göd-ÉRT Association)가 결성된 이유다. 유디트 씨도 협회 구성원으로 활동 중이다.

▲유디트(오른쪽) 씨와 괴드-에르드 협회 주민 활동가들이 2024년 4월 시내에서 서명운동을 하는 모습. ⓒ유디트 흘라바치

니켈·코발트 기준치 초과... 뒤늦게 알려진 손가락 절단 산재

문제는 공장이 가동되면서 더욱 불거졌다. 먼저 유해화학물질 누출이다. 유디트 씨는 대표적으로 마을 지하수에서 태아발달 등에 악영향을 미치는 독성물질인 NMP(N-Methyl-2-pyrrolidone)가, 대기 중에서 발암물질인 니켈과 코발트가 검출된 사례를 발표했다. 이에 그린피스가 2024년 '농지로 보라색 폐수가 유출됐다'는 제보를 받고 폐수 웅덩이를 조사한 결과, NMP가 검출됐다.

관련해 <텔렉스(Telex)> 등 현지 언론은 정부의 내부 보고서를 입수해 '공장의 공조 시스템이 유독성 가루를 제대로 걸러내지 않고 대기 중으로 방출했다'고 올해 초 보도했다. 2022년 노동 당국 조사 자료에 따르면, 공장 내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니켈·코발트 농도가 여러 차례 측정됐다.

주민들은 이에 공장에서 어떤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는지, 오염물질 폐기와 배출은 제대로 감독되고 있는지 등을 알고자 했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텔렉스> 기자들은 공장의 위성사진을 직접 분석해 공장 지붕 환기구 주변이 새카맣게 변한 모습을 파악했고, '니켈, 망간, 코발트 등의 누출 흔적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디트 씨는 "공장은 '흑연'이라고 답했고, 당국은 이를 조사하지 않았다"며 "이것이 독성물질이었는지, 아닌지 여전히 우린 모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유디트 씨는 "법적 한계치를 초과하는 소음 문제도 정말 심각해, 주민들은 당국에 이미 수천 건의 민원을 제기했다"며 "거리에 배수구에서 상당량의 거품도 흘러나온 적이 있는데, 이게 삼성SDI 공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몇 년이 지나서야 인정됐다"고 밝혔다.

▲2024년 그린피스 활동가가 폐수 웅덩이를 채취하는 모습. ⓒ유디트 흘라바치

▲마을 하수구에서 발견된 거품(출처 : 괴드-에르트 협회) ⓒ유디트 흘라바치

최근엔 4년 전 끼임 사고로 손가락을 절단한 산재 피해자 사례도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같은 해 전기공 아틸라 마자리 씨는 삼성SDI 헝가리 공장 2차 하청업체에서 배전 작업을 하다 6900볼트 고압 전류에 감전돼 화상을 입었다. 그는 "안전 교육, 산업안전 규정, 보호복 등 기본적인 조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원청 공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디트 씨는 "당국이 적발한 위반사항은 지난해 말까지 약 60건, 과태료 총액은 약 100만 유로"라며 "이는 삼성SDI가 벌어들이는 이익과 받은 지원에 비해 지극히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SDI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최소 1억 7460만 유로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SDI가) 2020년 소방 안전 규정 위반으로 약 1만 유로의 과태료를 낸 적이 있는데, 이는 당시 공장이 3분 동안 벌어들인 이익에 해당했다"며 "이 위반은 2년 동안 시정되지 않아, 2년 후 다시 적발됐다. 1000여 명의 노동자가 위험한 상황에서 2년 간 일을 했다"고 비판했다.

노조 설립과 첫 주민 포럼, 6년 만에 시작된 대화

괴드-에르트 협회 등은 2023년 정부가 소음, 공해,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삼성SDI 공장에 인허가를 내준 것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이를 지난해 10월 헝가리 법원이 인용해 인허가를 취소하는 판결이 났으나, 헝가리 대법원이 지난 2월 하급심 판결을 취소하며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유디트 씨는 "오는 30일 관련 소송 기일이 예정돼있다"며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디트 씨는 "그럼에도 최근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지난 2월 공장 내에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유디트 씨는 또 "지난 화요일(9일)에 우리는 공장의 한국인 책임자를 만났다"며 "그는 친절했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난달 29일엔 '괴드 주민 포럼'이 발족해 지역사회, 지방정부, 관계 기업 등이 함께 모여 대화를 시작했다고도 전했다. 유디트 씨는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았고, 주민들은 직접 질문하고 문제제기하는 기회를 가졌다"며 "종종 긴장감이 흘렀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건설적인 분위기였다. 공장 측이 소음 문제와 관련해 개방적으로 임했고, 실질적인 조치도 약속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29일 괴드에서 열린 '괴드 주민 포럼' 현장. ⓒ유디트

한국 시민사회·노조 "책임감 느껴… 연대하겠다"

다만 이런 변화가 최근 헝가리 내 정세 변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4월 헝가리 총선에서 야당인 티서(TISZA) 당이 압승을 거두며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16년 장기 집권이 막을 내렸다. 기업과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신유정 변호사는 "지역사회와 소통을 늘린 건 다행이나, 헝가리 내부 정치적 변화 이후에야 이뤄졌다"며 "이전까지 공장은 지역사회 피해 호소를 듣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한국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로 '공급망실사법' 법제화를 제시했다. 기업에 국내외를 막론 자회사, 협력사 등 전체 공급망 내 환경·인권 영향 조사 의무를 부여하고, 주민 참여 절차를 보장하게 하는 한편, 실사가 형식적 수준에 그치면 시정명령이나 입찰참가 제한 등 규제 장치를 발동해 실질적인 강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를 들은 정기백 금속노조 삼성SDI지회 사무장은 "한국도 이제 막 노조가 결성되고 성장하고 있어 아직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하지만, 헝가리와 한국이 조금씩 소통하면서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한국 삼성SDI 노동자로서 (괴드의 상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연대하는 마음으로 옆에 있겠다"고 말했다.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지역사회의 환경권, 그리고 기업의 책임을 바탕으로 한 성장을 우리는 바란다"며 "삼성SDI는 유해화학물질 성분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고위험 물질을 안전한 물질로 대체하며, 가장 위험한 설비 유지·보수 작업 등은 외주화하지 말고 직접 고용해 원청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괴드 지역에 들어선 삼성SDI 헝가리 공장 풍경. ⓒ괴드-에르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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