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K-방산은 가격 경쟁력을 넘어 신뢰 기반의 전략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산 파트너들이 굉장한 최신 무기를 수개월 안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다른 파트너들의 경우 인도까지 수년이 걸린다고 했다."
안제이 두다(Andrzej Duda) 폴란드 대통령이 나토 본부에서 마르크 뤼터(Mark Rutte) 나토 사무총장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연이은 대규모 해외 수주에 성공하며 국가 핵심 수출 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K-방산의 현주소를 압축한다.
다만 계약서엔 새로운 조건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폴란드·루마니아·UAE 등 주요 구매국들이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수주의 전제로 요구하면서, 수출 호황의 과실이 국내 경제로 얼마나 돌아오느냐는 질문이 생겼다.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뛰는 동안 협력사의 일감은 줄고, 기술 유출 우려는 커진다.
글로벌 방산 시장의 룰이 바뀌고 있다. 수주 규모만큼이나 그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중요해진 시대다.
<뉴스락>뉴스락>은 K-방산 수출 호황의 성과와 그 이면의 구조적 과제를 짚어본다.
150억 달러 K-방산의 역설...수출 훈풍, 협력사엔 '그림의 떡'
K-방산 수출 호황이 깊어질수록,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방산 수출 수주액은 전년 대비 62.5% 증가한 154억 4000만 달러(약 23조 6324억 원)를 기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 D&A 등 이른바 ‘방산 빅4’의 2025년 합산 영업이익은 4조 6322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약 2조 6500억 원) 대비 두 배 가까운 규모로 확대됐다.
그러나 세부 계약 조건을 들여다보면 지표와 현장 사이의 명확한 온도 차가 드러난다.
최근 주요 무기 구매국들이 자국 방위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핵심 조건으로 내걸면서, 수출 총액이 늘어도 창원 등 국내 주요 방산 생산기지의 가동률 상승이나 신규 고용으로 비례해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송방원 우리방산연구회 회장(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은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뉴스락> "방산 수출 시 구매국이 현지 생산 부품 적용과 현지 조립생산을 기본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국내 중소 협력사 부품이 외산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수출 시 국내 납품가격 이상의 이윤이 발생하지만, 이는 대기업의 순익으로 귀결된다. 중소 협력사는 국내 납품가 수준으로 대금을 받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판로 개척과 마케팅, 계약 위험 관리에 대한 대가라고 하고, 중소기업은 그래도 낙수효과가 없다고 불만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주 규모 확대가 국내 협력업체 일감 증가로 직결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주요 방산 대·중견기업 15개사의 영업이익은 2조 3000억 원을 기록한 반면, 69개 주요 협력업체의 영업이익은 1458억 원으로 대기업의 1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이익률 격차도 뚜렷하다. 2018년 4%였던 방산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3%로 뛰었지만, 같은 기간 협력업체들은 5%에서 6.8%로 소폭 오르는 데 머물렀다.
국방 조달시장 내 중소기업 제품 구매액은 2022년 4514억 원에서 2024년 3593억 원으로 오히려 역성장했으며, 전체 방산 매출과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9.2%, 3.9% 수준이다.
하도급 거래 관행을 둘러싼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말 방산 빅4를 상대로 하도급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하도급 대금 지연 지급, 기술자료 요구 및 유용, 부당 단가 인하 의혹 등이 주요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번 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본격화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열린 토론회에서 "방산 분야에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기업들이 산업 생태계를 살려야 한다"며 "대기업이 원가 후려치기 등 지위 남용을 한다면 치명적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했다.
K-방산 수주 이면의 '현지화 딜레마'...빅4, 협력사 상생 플랜 가동
K-방산이 잇단 대규모 해외 수주에 성공했지만, 수출의 핵심 전제 조건으로 '현지 생산'이 굳어지며 국내 중소 협력사들의 일감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주요 방산 기업들은 대규모 수주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까다로운 현지화 조건을 적극 수용 중이다.
방산 '빅4'의 주력 수출 사업은 이미 해외 현지 생산망 구축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민영 방산업체 WB그룹과 천무 다연장로켓 유도탄 현지 생산 합작법인 설립 절차를 밟고 있다.
루마니아 정부와 맺은 계약에서도 2027년부터 현지 거점에서 순차 납품하기 위한 생산 시설 구축을 공식화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 산하 부마르-와벤디(BUMAR-ŁABĘDY)와 K2PL 전차 및 구난전차에 대한 기술 이전 계약(2025년 10월), 현지 생산·정비 협력 계약(2026년 4월)을 순차적으로 공식 체결하며 폴란드 현지 생산 체계를 본격 가동하고 있다.
KAI는 페루 국영 항공기업 SEMAN과 FA-50 부품 공동생산 MOU를 체결했고, 이후에는 페루의 KF-21 도입을 전제로 한 부품 현지 공동생산 협력도 추진했다.
LIG D&A 역시 UAE 방산기업 칼리두스와 미사일 공동생산 합작법인 설립에 합의하고, 현지 제조·정비 기반 구축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런 현지화 흐름이 확대될수록 국내 협력사의 조립·생산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교수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뉴스락> "K방산이 역대급 호황을 맞았지만 방산 중소 협력사들의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다"며 "오히려 사채를 써서 부도 직전이라고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의 목소리가 한두 곳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방산 대기업들이 협력사 처우 개선과 상생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며 "방산업계가 더 낮은 자세로 중소 협력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질적인 육성과 상생을 위한 지원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생태계 위축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자 방산업계는 협력사의 자금난 완화와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위한 상생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00억 원 규모의 '혁신 성과공유제'를 도입해 협력사 R&D 비용 전액을 지원하고 창출된 지식재산권을 공유한다. 동반성장펀드 역시 기존 500억 원에서 1500억 원으로 3배 늘렸다.
현대로템은 향후 2년간 협력사 R&D에 2000억 원을 투자하고 기존 700억 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를 1500억 원으로 2배 이상 확대했다. 부품 국산화 성공 시 계약 첫해 절감 비용의 100%를 협력사에 환원하는 제도를 신설했으며, 전담 조직인 '상생협력실'을 꾸려 실행력을 높였다.
KAI는 고가 장비 투자에 300억 원 규모의 저리 대출을 시행하고, 상생협력기금에 올해 22억 원을 추가 출연했다. 아울러 협력사 공동근로복지기금을 20억 원으로 증액 유지하고, 중대재해처벌법 대비를 위한 안전보건 상생협의체를 발족해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한다.
'상생추진단'을 신설한 LIG D&A는 올해 총 2000억 원 규모의 상생 지원을 실행한다.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1600억 원 규모의 무역금융과 300억 원 규모의 상생예금을 핵심 지원책으로 내세웠다.
수주 잔치 뒤 '기술 유출·양극화' 경고음...생태계 체력 바닥나나
K-방산 수출 과정에서 현지화 계약 구조가 고착되면서 핵심 기술 유출과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우려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산 전문가들은 기술 이전 협상 과정에서 공개·이전 불가 항목을 명확히 규정한 '레드라인'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방원 우리방산연구회 회장은 "방산 수출 과정에서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핵심은 무엇을 내어주고 무엇을 통제할 것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먹구구식 협상이 아닌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핵심 기술과 장기 수익 창출 기술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며 "현지 생산을 진행할 경우 일부 핵심 부품을 제외하면 남는 수익원이 적어, 업계는 이미 로열티와 기술료 기반의 수출 모델로 전환해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법적 공백도 구조적 문제로 지목됐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교수는 "기술을 이전받은 국가가 제3국으로 이를 다시 넘기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지만, 국내법의 제한 사항이 해외까지 미치지 않아 상대국이 책임을 회피하면 클레임 제기 외에는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전 가능한 기술과 절대 넘겨선 안 될 기술을 신중하게 분별하고 사후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개별 기업이나 부처 차원을 넘어 외교·국제관계까지 아우를 수 있는 대통령실급 방산 컨트롤 타워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술 유출 문제와 맞물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익 격차도 산업 기초 체력을 갉아먹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첨단 무기 체계일수록 부품·소재의 경쟁력이 전체 품질을 좌우하지만, 현재의 이익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공급망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복잡한 국방 조달 절차와 제한적인 정보 접근성 탓에 신규 스타트업이 시장 진입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정부는 생태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방위사업청은 오는 2030년까지 방산 스타트업 100개사,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 벤처기업 30개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제조 대기업 중심의 방산 구조를 신산업 분야로 확장하고, 스타트업의 생태계 진입을 지원해 국내 방위산업의 상생 기반과 강건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제조·대기업 위주의 방산 생태계에서 신산업·스타트업도 강한 방산 생태계로의 도약을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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