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고기 가운데 가장 귀하고 비싼 축에 드는 쏘가리가 강원도 인제 양식장에서 대규모 양식에 성공해 눈길을 끌고 있다.
9일 유튜브 채널 'EBS다큐'에 따르면 EBS 극한직업 제작진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온 쏘가리 양식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밀착 취재했다. 해당 영상은 2022년 7월 30일 방송된 '극한직업 - 희귀 양식의 세계 참다랑어·연어·쏘가리' 편의 일부로, 유튜브에 공개된 뒤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조선 선비도 즐긴 '민물의 제왕'…신사임당도 그림으로 남긴 물고기
쏘가리는 한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어종이다. 조선시대 백자에 새겨진 물고기 문양 가운데 쏘가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신사임당이 쏘가리를 그린 그림도 전해지며, 당대 어화(魚畵)의 대표적 화가 장한종(1768~1815)이 남긴 8폭 병풍 어해도 중 한 폭에도 쏘가리가 실감 나게 묘사돼 있다. 이 유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쏘가리를 가리키는 한자 '궐어(鱖魚)'의 궐이 대궐(大闕)의 궐과 발음이 같아, 과거시험에 급제해 대궐에서 벼슬살이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 때문에 시문과 도자기, 회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조선 중기 문신 맹사성은 자신의 작품 '강호사시가'에 "탁료계변에 금린어(錦鱗魚) 안주로다"라는 구절을 남겼는데, 여기서 금린어가 바로 쏘가리를 뜻한다. 정도전도 쏘가리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급수에서만 사는 까다로운 어종…서식지 자체가 제한적
쏘가리는 서식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어종이다. 자갈이 깔리고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맑은 물에 주로 서식한다. 충북 단양이 예로부터 쏘가리 주산지로 유명한 것도 이런 서식환경 때문이다. 대청호·충주호·의암호·소양호 등 큰 댐을 중심으로도 서식하고 있다.
야행성 육식 어종이기도 하다. 낮에는 바위 밑에 숨어 지내다가 지나가는 작은 물고기를 기다려 순식간에 낚아채는 매복형 포식자다. 밤에는 은신처 밖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위협을 느끼면 등지느러미의 가시를 세워 방어한다.
어육은 흰빛깔로 담백하여 회는 물론이고 어떤 요리로 만들어도 좋지만 특히 매운탕이 유명하다. 다른 민물고기와 달리 잡내나 흙냄새가 거의 없고, 육질이 우럭이나 돔 같은 바닷고기보다 더 쫄깃하고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운탕을 끓이면 국물 위에 노르스름한 황금빛 기름이 뜨는데, 이것이 쏘가리 특유의 감칠맛의 근원이다.
자연산 1kg에 15만 원…국내 유통 상당수는 중국산
쏘가리가 귀한 가장 큰 이유는 좁은 서식지다. 1급수에서만 살 수 있어 자연산 개체 자체가 많지 않다. 여기에 남획까지 더해지며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지자체들이 꾸준히 치어를 방류하며 개체수가 다소 회복됐지만 공급은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산 자연산 쏘가리는 kg당 15만 원 정도지만, 중국산 냉동 쏘가리는 kg당 3만~4만 원에 식당 납품가는 kg당 6만~7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절반 이상의 쏘가리는 토종이 아니라 중국산이다. 단양 쏘가리 매운탕으로 유명한 지역에서도 2013년 11곳 중 5곳이 중국산을 쓰다가 적발된 일이 있었다. 업자들에 따르면 12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는 국내산 공급 자체가 크게 줄어들어 중국산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금어기 위반하면 징역 1년
쏘가리는 한국에서도 아무 때나 잡을 수 없다. 내수면어업법 제21조의2에 따라 자원 보호를 위해 산란기 포획 금지 기간이 설정돼 있다. 강하천에서는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댐과 호소에서는 5월 20일부터 6월 30일까지가 금어기다.
18cm 미만 개체는 계절에 관계없이 잡는 즉시 방류해야 한다. 포획 금지 기간에 쏘가리를 불법으로 잡거나 유통한 사실이 적발되면 내수면어업법 제25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낚시 중 잡혔더라도 꿰미에 꿰어 확보하는 순간 처벌 대상이 된다.
일본에선 방류도 금지…잡으면 징역, 벌금
한국에서 고가 수산물로 대접받는 쏘가리지만, 일본에서는 완전히 다른 처지다. 일본은 쏘가리를 외래종으로 취급한다. 쏘가리가 원래 일본 담수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미야자키현은 관상용으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쏘가리가 급증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쏘가리 방류를 금지하고 살아있는 채로 반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규정을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엔 이하의 벌금 등의 처벌이 적용된다.
한국에서는 귀한 보양식 재료로 손꼽히는 어종이 일본에서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침입종으로 분류된 셈이다. 같은 물고기를 두고 나라마다 처지가 극과 극으로 갈린 사례다.
치어 2만 5000마리…잉어 치어 먹이며 키우는 인제 양식장
EBS 극한직업 제작진이 찾아간 강원도 인제의 양식장에서는 쏘가리 치어 약 2만 5000마리를 키우고 있다. 쏘가리는 육식성이라 부화 직후부터 살아있는 먹이를 공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갓 부화한 잉어 치어를 먹이로 준다.
치어가 3cm 이상 자라면 인공 사료로 바꿔야 한다. 살아있는 먹이에 익숙한 쏘가리 치어들이 사료를 거부하며 폐사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양식장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사료를 잉어 치어 모양으로 직접 제작해 먹이는 방법까지 동원한다. 어느 정도 자란 쏘가리는 크기별로 선별 작업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도 작은 자극 하나에 폐사할 수 있어 작업자들은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쏘가리가 그만큼 야생성이 강하고 다루기 어려운 어종이라는 뜻이다.
쏘가리 양식 성공 소식은 해당 영상이 2022년 방송 당시에도 화제였지만, EBS다큐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뒤 다시 조회수가 오르며 쏘가리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 민물고기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면서도 가격 탓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쏘가리를 둘러싼 궁금증이 다시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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