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전 금융권 가계대출이 급증세를 보이며 2000조원에 육박했다. 이에 시중은행들이 잇달아 신규 대출 제한에 나섰다. 증시 호황을 틈탄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가 마이너스통장을 중심으로 신용대출을 폭증시키자 금융당국이 비상 관리체계를 가동한 데 따른 조치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9조3000억원 증가했다. 전월(3조5000억원)과 비교해 증가폭이 2.6배 이상 확대된 것으로, 2024년 8월(9조7000억원) 이후 21개월 만의 최대 폭이다. 주택담보대출은 4조원 늘어 전달 대비 증가폭이 줄어든 반면 마이너스통장 등 기타대출이 5조3000억원이나 불어났다. 신용대출 증가폭이 전달 -9000억원에서 3조4000억원으로 급반전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은행권 마이너스통장 대출만 한 달 새 2조6000억원이 늘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서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93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같은 증가 추세가 이어지면 이르면 2분기 안에 2000조 원 돌파가 현실화될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 2024년 2분기 이후 8개 분기 연속 증가라는 점에서 정부의 잇따른 가계대출 관리방안에도 불구하고 ‘영끌’과 ‘빚투’ 흐름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금융 주담대가 제한되자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2금융권으로 쏠리는 풍선효과로 이어졌고, 이번엔 증시 활황이 신용대출 또한 팽창시킨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비상 관리체계를 가동,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지키지 못하는 금융사를 매주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은행권은 고액 연봉자 신규 신용대출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신용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 상환을 유도할 예정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와 지난 2024년에도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5000만원으로 제한한 바 있어, 이번에도 유사한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 현재 마이너스통장은 지난해 6.27 대출규제로 ‘연 소득 이내’까지 제한됐다.
은행들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별도 통지 시까지 토스·카카오페이·네이버파이낸셜·핀다·뱅크샐러드 등 대출비교 플랫폼을 통한 가계신용대출 신규와 갈아타기를 모두 중단했다. NH농협은행도 같은 날부터 주담대 MCG 모기지보험 가입을 한시적으로 제한했다. 앞서 지난달 MCI 모기지보험 가입을 제한한 데 이은 추가 조치로, 보험 없이 대출을 받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빌릴 수 있어 사실상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하나은행 또한 고액 연봉자를 대상으로 신용대출 한도를 제한하고 나섰다. 신용대출을 신규 신청할 때 차주의 연소득과 관계없이 받을 수 있는 최대 한도를 1억원으로 두고, 마이너스통장의 만기 연장 시 미사용 한도 감액 조치도 강화한다. 기존에도 한도 미사용 계좌를 대상으로 만기 연장 시 일정 금액을 감액해 왔으나 상품 특성에 따라 일부 예외를 허용했으나 예외 허용 조항을 금지하고 규정에 따라 한도 감액 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신한은행도 오는 15일부터 대면·비대면 신용대출 합산 일별 접수량이 내부 관리 기준을 초과하면 비대면 신용대출의 일별 접수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서민금융대출과 상생대환대출 등 금융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상품은 제외된다.
약정금액이 3000만원을 초과하는 마이너스통장에 대해서는 약정기간 및 만기 직전 3개월 기준 한도사용률이 10% 미만인 계좌를 대상으로 만기 연기 시 최대 20%까지 한도를 감액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 또한 오는 16일부터 가계대출 증가세 대응을 위해 별도 안내 시까지 일반신용대출 한도를 최대 1억원, 마이너스통장의 한도를 5000만원으로 조정하겠다고 전했다.
가톨릭대 경제학과 양준석 교수는 “최근 주식시장이 크게 오르며 빚투를 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진 상황”이라며 “가계대출과 신용대출을 비롯해 민간대출이 폭증하면 금융위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양 교수는 “현재까지 정부가 대출 총량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을 때마다 어느정도 둔화됐다”며 “완전히 제어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의 흐름이 중요한데, 최근 조정으로 대출 수요가 줄었을 수 있으나 종전 신호나 미국 반도체 시장의 개선 등이 우려 요소”라고 분석했다.
명지대 경제학과 빈기범 교수는 “이미 대출이 굉장히 많이 늘어 신용대출을 줄일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며 “이번과 같은 대출 규제도 일정 수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 자체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다만 신용대출 조이기의 실효성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신용대출을 주식이나 집 구입하는 데 썼을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대출 총액 증가율을 한정시켜 놓은 상태기 때문에 먼저 주택담보대출이 줄었는데, 여기서 신용대출까지 줄이는 것의 실효성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상명대 경영학부 서지용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증시·부동산으로 향하는 레버리지 수요에 ‘강한 브레이크’를 걸어 신용대출 증가 속도와 가계부채 분기 증가율을 눈에 띄게 낮추는 효과는 분명히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나 은행권 중심의 총액·신규 제한은 기본적으로 ‘속도 조절’ 성격이라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라기보다는 사이클을 누그러뜨리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고, 동시에 2금융·비제도권으로의 풍선효과, 자영업·중소법인 등 생산적·운전자금 수요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이어 “이번 조치의 가시적 효과는 ‘단기 레버리지 억제와 가계부채 증가율 둔화’에는 뚜렷하겠으나 ‘중장기 가계부채 안정과 금융 중개 기능의 효율성’ 면에서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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