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파산 859건의 경고… 기업 회생은 숫자보다 시간이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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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파산 859건의 경고… 기업 회생은 숫자보다 시간이 가른다

뉴스로드 2026-06-12 13:19: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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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생법원 [사진=연합뉴스]
서울회생법원 [사진=연합뉴스]

기업이 무너지는 소리는 장부보다 현장에서 먼저 난다. 매출은 남아 있고 공장은 돌아간다. 직원도 출근한다. 그러나 은행 만기 연장과 추가 대출, 세금 납부 유예, 거래처 결제 지연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회사가 늘고 있다. 올해 들어 4월까지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859건을 기록했다. 통계월보와 전문가 전망을 종합하면 연말에는 역대 최고치 경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금리와 고물가, 글로벌 공급망 불안, 중동 지역 분쟁에 따른 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중소·중견기업의 체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 일부에서는 온기가 보인다. 그러나 기업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물건은 팔리지만 이익이 남지 않는다. 매출채권 회수는 늦어지고 원자재값과 인건비, 금융비용은 먼저 나간다. 신규 대출은 막히고 기존 대출은 연장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재무제표상 적자가 누적되는데도 대표는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버틴다. 그 사이 체납은 쌓이고, 임금은 밀리고, 거래처 신용은 끊어진다. 회생을 검토할 수 있었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이민규 법무법인 한수 대표변호사는 “겉으로는 정상 영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만기 연장과 추가 대출로 하루하루 버티는 법인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장부를 들여다보면 이미 자본잠식 단계이거나, 작은 충격에도 버티기 어려운 구조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상담 시점이다. 이 대표변호사는 연체와 체납이 상시화된 뒤에야 전문가를 찾는 기업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때는 회생보다 파산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 도산 절차는 크게 회생과 파산으로 나뉜다. 회생은 채무를 조정하고 영업을 유지하면서 회사를 살리는 절차다. 파산은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재산을 채권자에게 배분하는 절차다. 회생은 망한 기업에 특혜를 주는 제도가 아니다. 청산했을 때보다 기업을 계속 운영하는 편이 채권자에게도 더 나은 회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작동한다. 살릴 가치가 있는 기업을 법원이 감시하는 틀 안에서 다시 세우는 절차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회생을 늦게 떠올린다. 대표들은 회생 신청을 거래처와 금융기관에 대한 항복 선언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파산은 깔끔한 정리로 여기고, 회생은 낙인으로 여긴다. 이 판단이 회사를 더 빠르게 무너뜨린다. 회생은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핵심 거래처가 유지되고, 기술과 인력이 남아 있고, 세금과 4대보험 체납이 통제 가능한 수준이어야 회생계획을 짤 수 있다. 현금흐름이 끊기고 인력이 이탈한 뒤에는 법원도 회생 가능성을 낮게 본다.

이민규 대표변호사는 “회생은 결코 나쁜 기업을 살려주는 특혜 제도가 아니며, 채권자에게도 청산보다 나은 회수를 보장하겠다는 전제 하에 운영되는 제도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생과 파산을 가르는 기준이 재무 수치 그 자체만은 아니라고 본다.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도 핵심 거래처와 영업 기반, 기술 인력, 정상적인 매출 구조가 남아 있으면 회생 가능성은 있다. 반대로 부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도 거래처가 끊기고 임금 체불과 세금 체납이 장기화되면 회생 절차에 들어가도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회생·파산 실무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간이회생 절차 활용, 관할 특례 운영, 회생법원 확대 등으로 지역 기업도 과거보다 절차 접근성이 높아졌다. 서울과 수원 중심이던 회생법원 기능이 전국 주요 거점으로 넓어지면서 지방 기업의 절차 진행 속도도 개선될 여지가 생겼다. 그러나 제도가 열렸다고 기업이 자동으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회생계획의 실현 가능성, 채권자 구성, 대표자의 신뢰도, 자금 조달 가능성을 냉정하게 본다. 숫자를 꾸미거나 낙관적 전망만 제시해서는 회생 인가를 받기 어렵다.

도산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남아 있을 때 움직이는 일이다. 현금흐름이 6개월 이상 불안정하다면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매출은 유지되는데 영업이익이 계속 줄고, 금융비용이 이익을 잠식하며, 세금과 4대보험 납부가 밀리기 시작하면 회생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거래처 결제가 반복적으로 지연되고, 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지고, 임금 지급일을 맞추기 어려워지면 시간은 더 짧아진다. 회생은 마지막 순간에 꺼내는 카드가 아니라, 파산을 피하기 위해 앞당겨 검토해야 하는 전략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생과 파산 사이에 구조조정, 자산 매각, 신규 투자 유치, 인수합병(M&A) 같은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영업망이 남아 있고, 핵심 인력이 버티고 있으며, 채권자와 협상할 여지가 있을 때 구조조정이 작동한다. 모든 신용이 끊어진 뒤에는 협상력이 사라진다. 결국 회생·파산법의 핵심은 법조문이 아니라 타이밍이다. 언제 멈추고, 언제 줄이고, 언제 법원의 틀 안으로 들어갈지 판단하는 일이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859건이라는 숫자는 올해 한국 기업 현장의 압력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 숫자가 연말에 역대 최고치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미 나타나는 흐름은 분명하다. 버티는 기업은 늘고 있고, 늦게 상담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회생은 늦으면 파산이 되고, 파산은 늦으면 대표 개인의 책임과 임직원 피해, 거래처 연쇄 부실로 번진다. 도산은 한 기업의 실패가 아니라 협력업체와 금융기관, 근로자, 지역경제로 이어지는 사건이다.

이 변호사는 “살릴 기업은 살리고, 정리할 기업은 정리하게 돕는 것이 도산 전문 로펌의 역할”이라며 “회생·파산·구조조정·M&A 등 가능한 옵션을 모두 검토한 뒤 가장 합리적인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준비 없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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