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대한조선이 최근 이란 전쟁 여파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초대형 가스운반선(VLGC)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하고 선급 인증 획득 등 VLGC 시장 진출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현재 대한조선의 주력 건조 선종인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의 발주 수요가 5년 안에 정점을 찍고 감소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차세대 핵심 선종으로 개발, 수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VLGC가 ‘귀하신 몸’이 된 것은 중동 사태에 따른 지정학적 변수가 만든 일시적인 현상일 뿐 신조 발주 수요 증가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반면 해외 투자은행에서는 VLGC의 순 선대 증가율이 3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세계 최대 선주사, VLGC 선대 교체 일환...대량 발주
11일 외신·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이 최근 1주일 사이 초대형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인 VLGC 10척을 수주했다.
다국적 에너지 트레이딩 기업 BGN인터내셔널(BGN)이 최근 HD현대중공업과 9만3000㎥급 이중연료 추진 VLGC 2척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했다고 노르웨이 해운·조선 전문 매체 트레이드윈즈가 지난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척에 대한 수주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납기는 오는 2029년으로 예정돼 있다.
HD현대중공업은 6월 첫 째주 세계 최대 VLGC 선주사인 BW LPG로부터 VLGC 8척을 싹쓸이 수주한 데 이어 BGN으로부터 같은 선종 2척을 신규 일감으로 추가한 것이다.
터키계 자본으로 스위스 제네바와 두바이에 주요 거점을 둔 BGN은 지난 4월에도 HD현대중공업에 9만㎥급 이중연료 추진 VLGC 4척을 발주한 바 있다. 당시 HD현대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4척의) 계약 규모를 6747억원으로 공시했다. 이번 추가 발주로 BGN의 자체 보유 VLGC 선대는 총 19척으로 늘어나게 된다.
▲ HD현대·삼성重, 각각 38척·4척 수주
앞서 BW LPG는 지난달 31일 HD현대중공업에 9만㎥급 VLGC 8척을 총 1조4161억원에 발주했다. 척당 선가는 1770여억원이며 BW LPG는 2029년 초부터 2030년 2분기까지 순차적으로 선박을 인도받는다. 현재 50여척의 VLGC를 운용 중인 BW LPG는 이번 대규모 발주를 선대 교체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HD현대중공업은 올들어 현재까지 LPG·암모니아·액화이산화탄소운반선 등 VLGC 범주에 포함되는 가스운반선을 38척이나 수주했다. 삼성중공업도 올해 누적 수주 실적에 VLGC 4척이 들어가 있다.
이처럼 글로벌 선사들이 국내 주요 조선소에 잇따라 VLGC를 발주하는 배경으로는 운임 상승세가 우선 꼽힌다. 중동 사태로 이란발 LPG 수출에 타격이 가해지면서 아시아 지역 바이어들이 미국 걸프만에서 나오는 LPG로 수요를 돌렸다. 이에 따라 톤마일(화물 이동량(톤)×운송거리(마일))이 증가했다.
▲ 美-日항로 VLGC 하루 운임 19만달러 '최고치'
여기에 파나마 운하의 혼잡까지 더해지면서 5월 말 기준 미국-일본 항로 VLGC 현물 운임은 일일 19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연초 대비 2배 수준으로 운임이 오른 것이다. VLGC의 1년 용선료 역시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두 배 가까이 뛰며 월 200만달러에 근접했다.
대한조선의 주력 포트폴리오인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의 글로벌 신조 발주는 한동안 유지될 전망이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유조선 시장이 정점을 찍고 구조적 쇠퇴기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전망은 중국 조선소들이 해당 선종에서 국내 조선사들을 거의 따라잡았고 석유 수요 감소,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가속화로 유조선의 발주가 급감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대한조선도 향후 수에즈막스급 탱커를 대체할 수 있는 신규 선종을 개발·수주해야 한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대한조선은 중형조선사 최초로 해당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최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2026 포시도니아에서 대한조선은 영국 로이드선급·한국선급으로부터 8만8000㎥급 VLGC에 대한 설계 개념 승인(AIP)을 각각 획득했다.
▲ 대한조선, 8만8000㎥급 VLGC AIP 선급 인증
VLGC에 대한 선급 AIP를 획득한 만큼 대한조선은 3분기부터 해당 선종의 실질적인 영업에 착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VLGC 영업 성과에 따라 큰 폭의 매출 신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VLGC의 선가가 척당 1억1000만달러로 현재 주력 선종인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9000만달러)보다 높게 형성돼 있고 대한조선이 보유한 도크의 재원상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VLGC를 최대 두 척까지 동시 건조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와 같은 VLGC 신조 발주 러시가 향후 지속될지 여부를 놓고 업계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우선 VLGC 시장이 앞으로도 계속 호황일 것이란 전망을 보면 해당 선종의 발주잔량이 우선 거론된다. 실제 전 세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VLGC의 수주잔량은 전체 운용 선대의 36.9% 수준까지 치솟은 상태다. 즉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VLGC가 100척이라면 앞으로 37척이 추가로 시장에 공급된다는 이야기다.
투자은행인 아크틱 증권은 VLGC의 순 선대 증가율은 올해 10%, 내년 12%에 달하고 2028년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 VLGC 발주 수요 예측 엇갈려...후발주자 리스크↑
반면 현재 VLGC 발주 급증은 중동 사태에 따른 톤마일 증가 등 일시적인 현상이란 반론도 상존한다. 단기적으로 VLGC의 발주 수요가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을 넘어설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선 다수의 선박이 꾸준히 발주되긴 어렵다는 해석이다.
양종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객원교수는 “VLGC 발주 확대 여부는 현재 초기 단계인 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되는 암모니아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느냐에 달려있다”며 “암모니아 연료 혼소발전소가 증가 추세라 수요가 높긴 하나 이러한 혼소발전소는 동아시아 국가에 국한돼 있어 글로벌 단위의 운송 수요를 기대하기엔 무리다”라고 말했다.
이어 “VLGC의 주요 화물인 연료용 암모니아·액화이산화탄소의 해상 운송 수요가 조금씩 증가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대한조선의 주력 선종인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을 완전히 대체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조선이 향후 VLGC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이미 국내에서도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들이 VLGC를 주력 선종으로 삼고 수주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선종에서 후발 주자인 대한조선이 건조 실적(트랙레코드)이 전무한 가운데 보수적인 선사들로부터 선택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수주 선종이 다변화돼 있어 VLGC 발주 러시가 끝나도 영업과 운영에 지장이 거의 없다”며 “반면 대한조선은 2030년 이후 다가올 유조선 발주 급감 전망에 따른 대체 선종으로 개발, 수주를 준비 중인 VLGC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변동성이 커질 소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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