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중동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물가 급등에 맞서 통화긴축 카드를 꺼내들었다. 2023년 9월 이래 처음으로 금리를 올린 것으로, 이란전쟁 발발 이후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인상에 나선 셈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 직후 ECB는 예금금리를 기존 연 2.00%에서 2.25%로 상향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기준금리인 주요재융자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2.40%, 2.65%로 인상됐다. 새 금리는 오는 17일부터 시행된다.
지난해 6월 예금금리를 4.00%에서 2.00%까지 끌어내리며 완화 기조를 유지해온 ECB가 1년 만에 방향을 바꾼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있다. 올해 2월 말 터진 이란전쟁 초기만 해도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단기 충격을 관망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에너지 가격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자 결국 긴축으로 선회했다. 지난 4월 회의에서도 동결 결정이 아슬아슬했다며 위원들이 이달 인상을 시사한 바 있다.
ECB 측은 "중동전쟁이 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유발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로 전쟁발 불확실성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물가 전망치도 대폭 수정됐다. 유로존 21개국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예측은 기존 2.6%에서 3.0%로, 내년은 2.0%에서 2.3%로 각각 높아졌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올해 0.9%에서 0.8%로, 내년은 1.3%에서 1.2%로 소폭 하향 조정됐다.
라가르드 총재는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여름 내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식료품·상품·서비스 가격 전반에 파급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물가가 목표치인 2.0%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에너지 가격 하락과 전반적인 물가 둔화로 2027년 하반기에는 목표 수준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중동 사태가 여전히 변수라고 덧붙였다.
전쟁으로 인한 심리 위축과 에너지 비용 증가에 따른 실질소득·내수 감소가 경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겠지만, 국방 및 인프라 분야 공공투자가 일정 부분 완충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라가르드 총재의 분석이다.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2%를 기록해 ECB 중기 목표를 훌쩍 넘겼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직전 분기 대비 0.2% 역성장해 고물가 속 경기침체, 즉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키웠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에너지 가격 폭등에도 금리 인상이 늦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ECB가 이번에는 경기 부진에도 서둘러 긴축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결정이 통화정책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음을 강조하며 "경제가 성장세를 잃거나 심각한 위협에 처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시장은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이미 가격에 반영한 상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물가 상승에 금리 인상 효과가 제한적이고 경기만 꺾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베렌베르크은행의 홀거 슈미딩은 이번 조치가 "이란전쟁 피해를 가중시키는 역풍"이라고 지적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잭 엘런레이놀즈는 "에너지 가격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며, 이는 ECB 긴축 사이클이 단명할 것임을 시사한다"며 한 차례 추가 인상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인상으로 유로존 예금금리와 한국 기준금리(2.50%) 간 격차는 0.25%포인트로 좁혀졌고, 미국(3.50~3.75%)과는 1.25~1.50%포인트 차이를 보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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