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분쟁의 충격이 세계 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는 에너지 시장을 흔들었다. 유가와 비료 가격은 올랐고, 물가와 차입 비용도 높아졌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성장률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은행그룹(WB)은 11일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최신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5%로 낮춰 잡았다. 지난해 성장률 2.9%보다 0.4%포인트 낮은 수치다. 올해 1월 전망과 비교해 세계 경제의 3분의 2에서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다. 세계 성장률은 2027년 2.8%로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010년대 평균과 비교하면 여전히 0.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저성장의 충격은 개발도상국에 더 깊게 남는다. 성장세가 꺾이면 선진국과의 소득 격차도 줄어들기 어렵다. 세계은행은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개발도상국들이 2028년까지 1인당 소득 기준으로 선진국을 거의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개발도상국의 추격이 10년 가까이 멈춰 서는 것이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그룹 총재는 개발도상국의 대응 과제를 민생 안정과 성장 유지로 요약했다. 그는 “국가마다 충격의 크기는 다르지만 과제는 같다”며 “오늘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안정을 지키되, 내일의 성장과 일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필요한 곳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며 “압력이 커지면 추가 금융과 보증, 민간 부문 해법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첫 충격은 에너지에서 왔다. 세계은행은 호르무즈 해협 폐쇄로 에너지 공급망이 크게 흔들렸다고 봤다. 최악의 공급 차질이 내달 완화된다는 가정에도 브렌트유 가격은 2026년 배럴당 평균 94달러, 약 14만3979원으로 전망됐다. 2025년보다 36% 높은 가격이다. 비료 가격도 올해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비료값이 오르면 농산물 생산비가 오른다. 식품 가격에도 압력이 커진다.
물가 전망도 어두워졌다. 세계 인플레이션율은 2025년 3.3%에서 2026년 4.0%로 0.7%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변수는 에너지 공급이다. 공급 차질이 더 길어지고 금융시장 불안이 겹치면 세계 성장률은 1.3%까지 내려갈 수 있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율은 4.4%까지 오를 수 있다고 세계은행은 경고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세도 꺾인다. 성장률은 2025년 4.4%에서 2026년 3.6%로 0.8%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팬데믹 이후 가장 낮다. 2027년에는 4.2%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됐다. 가장 큰 충격은 걸프 지역에 집중된다. 분쟁의 직접 영향을 받는 이 지역 성장률은 2025년 3.9%에서 2026년 거의 0%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교역이 살아나고 재건 지출이 시작되면 2027~2028년에는 약 5%로 반등할 것으로 세계은행은 내다봤다.
세계은행그룹은 중동 분쟁에 대응해 즉시 최대 500억~600억 달러(약 76조5850억~91조9020억원)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중 250억 달러(약 38조2925억원)는 이미 사전 조율된 금융이다. 지원금은 취약계층 사회안전망과 재정 여력 확충에 쓰인다. 기업과 농가에는 운전자금과 유동성 지원으로 투입될 수 있다. 현재 30개국 이상이 세계은행그룹과 위기 대응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분쟁이 길어지면 지원 규모는 15개월 동안 800억~1000억 달러(약 122조5360억~153조1700억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지역별 전망은 엇갈린다. 남아시아는 2026년에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남아시아도 속도는 줄어든다. 성장률은 2025년 7%에서 2026년 6.3%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됐다. 2027년에는 6.9%로 회복될 전망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식품 물가가 부담이다. 비료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농산물 생산비를 밀어 올리고 있다. 이 지역 성장률은 2026년 4.0%로 낮아진 뒤 2027년 4.4%로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동아시아·태평양 성장률은 2026년 4.2%에서 2027년 4.4%로 0.2%포인트 오를 전망이다. 유럽·중앙아시아는 2.1%에서 2.3%로 소폭 개선된다.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는 2.2%에서 2.5%로 0.3%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중동·북아프리카·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지역은 낙폭이 크다. 2026년 성장률은 1.6%로 떨어진다. 이후 2027년에는 5.0%로 반등할 전망이다.
세계은행그룹은 개발도상국의 약한 재정 구조도 지적했다. 개발도상국의 약 3분의 2는 원자재 수출국이다. 저소득국은 거의 90%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한다. 이들 국가는 수입이 원자재 가격에 크게 흔들린다. 재정 수입원도 넓지 않다. 그만큼 재정 여력이 약하다. 원자재 가격이 올라 일시적으로 돈이 들어와도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5년이 지나면 상당 부분이 저축이 아니라 지출로 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채는 또 다른 위험이다. 2010년 이후 개발도상국의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미만에서 70% 이상으로 뛰었다. 이미 빚이 많은 나라는 추가 차입 비용도 더 가파르게 오른다. 세계은행은 이 효과가 취약국에서 더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부채를 줄이면 재정 공간이 생긴다. 인프라와 보건, 교육에 쓸 돈도 늘어난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아얀 코세 세계은행 부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분쟁은 세계 경제 활동에 부담을 줬지만 모든 위기에는 기회도 있다”며 “지금은 정책 체계를 강화하고, 인프라에 투자하며, 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개혁을 가속화하고,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민간 자본을 동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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