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플 때 유독 귀찮아하던 눈빛
갑자기 지독한 감기몸살이 찾아온 주말. 열이 끓고 온몸이 쑤셔, 침대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그에게 전화를 건다.
- - “나 오늘 너무 아파서 데이트 못 할 것 같아.”
수화기 너머로 짧은 한숨이 들린다. 걱정하는 말 대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돌아온다.
- - “아, 오늘 영화 예매 다 해놨는데. 진작 말하지.”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돌아온 건 짜증이다. 이 반응은 나를 보살피려는 마음보다, 제 하루가 방해받은 불쾌함이 더 크다는 뜻이다.
귀찮은 상황을 피하려는 속내
어떻게든 집으로 찾아온 그가 침대 옆에 선다. 물수건을 얹어주거나 약을 챙겨주는 손길은 없다. 대신 팔짱을 낀 채 미간을 구기며 나를 내려다본다.
- - “그러게 어제 얇게 입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 병원은 다녀왔어?”
아파 누워 있는 사람한테 훈계를 늘어놓는다. 내현성 나르시시스트에게 연인의 병은 함께 나누고 돌봐야 할 고통이 아니라, 제 시간과 기운을 빼앗는 성가신 일거리다. 아픈 사람을 위로할 줄 모른다기보다, 남을 위해 제 편의를 희생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어 한다.
고통마저 빼앗으려는 대화
침대에 누워 눈치를 보다가 서운한 마음에 입을 뗀다.
- - “나 진짜 아픈데 말 좀 다정하게 해주면 안 돼?”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제 피로를 꺼내 든다.
- - “너만 아파? 나도 이번 주 내내 야근하느라 쓰러지기 직전이야. 나도 힘든데 왜 자꾸 나한테 기대려고 해.”
사람은 아프거나 약해지면 본능적으로 곁의 사람에게 기댄다. 애착 이론을 세운 존 볼비는 이렇게 기댈 수 있는 상대를 ‘안전한 피난처’라 불렀다.
위험하거나 아플 때 달려가 안기는 자리. 관계란 본래 그런 자리다. 그러니 “왜 자꾸 기대려 하냐”는 핀잔은 번지수가 틀렸다. 기댄 게 잘못이 아니라, 피난처가 돼주지 못하는 그가 문제다.
그는 아픈 사람 앞에서도 기어코 자기가 더 힘들고 불쌍한 사람이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내 고통에 공감하고 자리를 내어주는 대신, 관심의 초점을 다시 자기에게로 끌고 온다.
몸이 아픈 와중에 돌봄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그의 피곤함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감정노동까지 떠맡는다.
귀찮아하는 눈빛에서 시선을 거둘 때
몇 달 뒤, 다시 지독한 위경련이 찾아왔다.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 있는데 그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 - ‘오늘 아파서 못 만난다고? 나 참.’
예전 같으면 서운함을 꾹 누르고 미안하다며 그의 기분을 살폈다. 이번엔 아픈 배를 부여잡고 화면을 두드려 짧게 답장한다.
- - “응. 나 혼자 쉬는 게 편해. 오늘은 오지 마.”
핸드폰을 무음으로 뒤집어두고, 이불을 끌어당겨 눈을 감는다.
내가 약하고 아플 때 귀찮은 얼굴로 내려다보는 사람에게 다정한 위로를 바랄 이유가 없다. 애초에 남의 고통을 품어줄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그 눈빛을 애써 견디며 상처받는 대신, 내 몸과 마음을 스스로 챙기고 조용히 문을 닫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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