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인공지능(AI) 시장의 무게중심이 반도체를 넘어 제조와 로봇, 물류 등 현실 세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AI가 단순히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단계를 넘어 공장을 운영하고 로봇을 움직이며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시대로 진입하면서 엔비디아와 LG그룹의 협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를 찾아 구광모 ㈜LG 대표와 회동했다. 양사는 피지컬 AI와 AI 인프라, 모빌리티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엔비디아가 구상하는 차세대 AI 산업 생태계 구축의 핵심 파트너로 LG를 선택한 상징적 장면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LG와 함께 로봇과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기술, GPU 클라우드 서비스를 지원하는 AI 팩토리(AI Factory) 구축 계획을 공개하면서 양사의 협력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AI 공장 시대…LG 제조 DNA에 주목한 엔비디아
엔비디아가 최근 가장 강조하는 개념은 AI 팩토리다. AI 팩토리는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를 AI가 실시간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차세대 제조 시스템이다. 원자재 수급부터 생산, 물류, 고객 인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AI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AI 팩토리를 차세대 성장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생성형 AI 이후의 시장은 결국 실제 산업 현장을 AI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열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LG는 이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LG전자는 전 세계 생산 거점을 기반으로 스마트팩토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제조 공정에서 축적한 방대한 운영 데이터와 생산 기술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 가전과 전장, 배터리, 전자부품 생산 과정에서 쌓인 제조 데이터는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자산으로 평가된다.
양사는 LG가 축적한 생산기술 데이터와 엔비디아의 AI 인프라 및 디지털 트윈 기술을 결합해 제조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트윈은 실제 공장과 설비를 가상 공간에 그대로 구현해 생산성과 품질, 설비 운영 효율을 예측·분석하는 기술이다. 엔비디아는 자사의 옴니버스(Omniverse) 플랫폼을 기반으로 글로벌 제조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입장에서 LG는 AI 팩토리를 실제 산업 현장에 구현할 수 있는 대표 제조 기업"이라며 "양사의 협력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스마트팩토리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로봇부터 물류까지…피지컬 AI 동맹 확대
이번 협력의 또 다른 축은 피지컬 AI다. 피지컬 AI는 생성형 AI가 로봇과 산업 장비, 자율주행차 등에 적용돼 실제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젠슨 황 CEO는 올해 GTC와 컴퓨텍스 기조연설을 통해 "AI의 다음 물결은 피지컬 AI"라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LG 역시 로봇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 스마트 물류 솔루션 사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제조 현장 자동화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로봇 개발 플랫폼인 아이작(Isaac)과 휴머노이드 AI 플랫폼 아이작 그루트(Isaac GRooT)를 중심으로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LG가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생태계에서 주요 협력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양사는 생산 현장뿐 아니라 물류와 공급망 운영 과정에도 AI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생산과 물류, 공급망을 하나의 AI 플랫폼으로 연결할 경우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데이터센터·모빌리티까지 협력 확장
양사의 협력은 제조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I 팩토리 구현을 위해서는 막대한 연산 능력을 갖춘 AI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GPU 클라우드 서비스와 AI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도 협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LG CNS는 기업용 AI 전환과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 플랫폼과 LG CNS의 시스템 통합 역량을 결합할 경우 국내 AI 인프라 시장에서도 시너지가 기대된다.
모빌리티 분야 역시 주목받고 있다. LG전자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와 디지털 콕핏, 전장 부품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DRIVE)를 기반으로 미래차 생태계 확대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자율주행과 차량용 AI 플랫폼 분야에서도 협력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AI 경쟁이 반도체 성능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실제 산업 현장을 AI로 바꾸느냐의 경쟁이 될 것"이라며 "LG는 제조와 로봇, 데이터센터, 모빌리티를 모두 갖춘 기업이라는 점에서 엔비디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HBM을 앞세운 SK그룹, 차세대 HBM5로 반격에 나선 삼성전자와 달리 LG는 제조 현장 자체를 AI로 전환하는 새로운 영역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AI 공장과 로봇,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현실화될 경우 LG는 피지컬 AI 시대를 이끄는 핵심 기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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