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긴축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2년 미국발(發) 인플레이션 충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가계와 자영업자의 체력이 약해진 현재는 같은 충격도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5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하며 2023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16~17일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연내 금리 동결 기대가 약화되고 긴축 장기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는 미국발 인플레이션 충격이 국내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2022년 하반기 긴축 국면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고환율과 유가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압력, 한·미 금리차 확대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 등 한국은행이 마주한 대외 환경 역시 당시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날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4.51~7.50%로 집계됐다. 주담대 고정금리 상단이 7.5%를 넘어선 것은 2022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와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시장금리를 끌어올린 영향이다.
다만 현재 상황을 2022년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에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과 재정 긴축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통화·재정 정책이 모두 긴축 기조를 보였다. 반면 현재는 확장 재정 기조가 유지되고 통화량도 늘어나는 등 정책 환경 자체가 당시와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2022년에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높이고 재정을 줄이는 등 긴축 정책이 추진됐지만 지금은 재정 확대와 통화량 증가가 이뤄지고 있다"며 "정책 환경만 놓고 보면 당시와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의 금융 취약성은 오히려 커졌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기간 축적된 가계 저축이 충격을 흡수했던 2022년과 달리 현재는 가계와 자영업자의 재무 여력이 상당 부분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가 여건 역시 당시와는 차이가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까지 2%대를 기록하는 등 2022년의 고인플레이션 국면보다는 낮다. 다만 최근 수년 간 누적된 물가 상승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은 약화된 상태다. 물가 상승 속도는 둔화됐지만 생활비 부담 자체가 낮아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4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2.2%였지만 생활물가 상승률은 2.9%로 더 높게 나타났다"며 "생활물가는 기대인플레이션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물가 상방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주담대과 마이너스통장 등 생계형 대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상은 가계와 자영업자 부담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여기에 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 금융회사 건전성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금융안정 리스크도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2022년과 비교하면 금융안정 측면의 위험은 더 커졌지만 당시처럼 강한 긴축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며 "비슷한 외부 충격이 오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오히려 더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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