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외신은 지난 1년 동안 한국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19개국 67개 주요 외신의 한국 관련 기사 6만4827건을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외교와 안보,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외신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분야는 다름 아닌 K-컬처였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K-팝과 K-콘텐츠는 지난 1년 동안 외신 보도에서 가장 높은 호감도를 기록하며 한국을 설명하는 대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한때 '분단국가'와 '수출 강국'으로 요약되던 한국의 이미지가 이제는 세계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문화강국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외신의 호평에 박수를 보내기만 하기에는 이르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이끈 한류의 성공은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한 단계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다음 과제도 던지고 있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가 특정 스타의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산업 경쟁력 때문인지는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 진정한 문화강국은 세계적 스타를 배출한 나라가 아니라 세대가 바뀌어도 새로운 성공 사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나라다. 외신 분석 결과가 의미 있는 이유도 현재의 성과를 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BTS 이후'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언론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한국은 첨단 제조업 강국이면서도 동시에 북한 핵 위협과 군사적 긴장이 공존하는 국가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 뉴스에서 한국이 등장하는 순간은 대개 안보 위기나 외교 갈등이 발생했을 때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신의 관심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세계 언론은 한국을 이야기할 때 먼저 음악과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 뷰티, 음식 등을 언급한다. 한국은 더 이상 지정학적 위험만으로 설명되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콘텐츠 생산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분석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보여준 영향력이다. 외신은 방탄소년단의 활동 재개를 글로벌 문화 뉴스로 비중 있게 다뤘고, 블랙핑크의 세계적 인기는 한국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사례로 소개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한류의 외연은 더욱 넓어졌다. 과거 K-팝이 음악 장르 중심으로 소비됐다면 지금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산업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콘텐츠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외신들이 한류를 더 이상 일시적인 유행이나 특정 스타의 성공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해외 언론은 한국 문화산업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류는 우연히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산업 경쟁력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훨씬 안정적이고 강력한 기반 위에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K-컬처는 문화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음악을 통해 한국을 처음 접한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한국 음식을 찾고, 한국 화장품을 구매한다. 이후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문화 콘텐츠가 소비재 수출과 관광산업,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제조업이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콘텐츠 산업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신이 사용한 'K-Everything'이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K-팝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K-푸드와 K-뷰티, K-패션, K-드라마, K-게임이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다. 국가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가 하나의 브랜드로 작동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이는 한국이 문화산업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브랜드 자산을 축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외신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서 현재의 성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한국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냉철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 콘텐츠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있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산업이 바로 콘텐츠 산업이다.
현재 한류의 국제적 영향력은 상당 부분 초대형 스타와 글로벌 흥행작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세계 음악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브랜드가 특정 아티스트의 존재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어떤 산업도 몇몇 스타의 성공만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계 콘텐츠 시장의 경쟁 구도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은 압도적인 자본력과 플랫폼 경쟁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문화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인도 역시 글로벌 콘텐츠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 또한 애니메이션과 게임 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콘텐츠와 새로운 스타를 끊임없이 배출해야 한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 플랫폼 환경이 바뀌고 소비 방식이 달라지면서 콘텐츠의 수명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하나의 히트작이 수년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세계 소비자들은 더욱 빠르게 새로운 콘텐츠를 찾고 있으며, 신선함과 독창성을 요구하는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기존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방식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결국 한류의 미래는 창작 역량에 달려 있다.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검증된 공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형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 세계 콘텐츠 산업이 지식재산권(IP) 확보 경쟁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나의 콘텐츠를 영화와 드라마, 게임, 공연, 캐릭터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강력한 IP야말로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 역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류를 국가 홍보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접근은 한계가 있다. 문화산업은 정책보다 창의성이 먼저 움직이는 영역이다. 실제로 오늘날 한류를 만든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창작자와 제작사, 엔터테인먼트 기업, 플랫폼 기업들이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성과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산업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외신 분석은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한류가 이제 국가 이미지 형성에서 외교와 경제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세계가 한국을 기억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가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내는 문화 생태계 때문인지는 앞으로의 성과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전자가 한국의 현재를 설명한다면 후자는 한국의 미래를 설명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문화강국은 세계적인 스타를 한 번 배출한 국가가 아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새로운 스타와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탄생시키는 나라다. 외신의 호평은 반가운 성과지만 그것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축배가 아니라 다음 성공을 준비하는 냉정한 전략이다.
결국 한국 문화산업의 진짜 과제는 'BTS의 성공'이 아니다. 'BTS 이후에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외신이 높이 평가한 K-컬처의 힘은 이미 증명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힘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넓게 이어갈 수 있느냐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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