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등록 없이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으로 재직하며 법률 자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권순일 전 대법관이 1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권 전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여부는 판단하지 않은 채 검찰의 수사 개시·공소 제기 절차가 위법하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단독(김대규 부장판사)은 11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 전 대법관에 대해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공소기각은 공소 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반되는 경우 법원이 사건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당시 법률상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고, 이후 경찰과 검찰 사이 사건 이송 과정 역시 적법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인 2021년 1월부터 8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채 대장동 민간업자 김만배씨가 대주주인 화천대유 고문으로 활동하며 변호사 업무를 수행한 혐의로 2024년 8월 기소됐다.
검찰은 권 전 대법관이 이 기간 화천대유 관련 민사소송 상고심과 행정소송 1심 재판 상황을 분석하고 법률 문서를 작성하거나 대응 법리를 제공하는 등 변호사 직무를 수행했다고 봤다. 검찰에 따르면 권 전 대법관은 그 대가로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화천대유는 대장동 개발 사업의 민간 사업자로 참여해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권 전 대법관의 화천대유 고문 활동도 함께 들여다봤다.
변호사법은 대한변협에 등록하지 않고 법률 사무를 취급하거나 법률 상담을 하고 보수를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4월 결심공판에서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범행으로 사안이 가볍지 않다"며 권 전 대법관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혐의의 실체보다 수사 절차의 적법성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권 전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가 당시 검찰청법상 검사가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시행된 검찰청법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일정한 중요 범죄에 한해 검사의 직접수사를 허용하고 있는데, 변호사법 위반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검사의 수사개시권이 인정되려면 검사가 인지한 범죄여야 하는데, 이 사건 변호사법 위반은 검사가 인지한 경우가 아니라 고발장에 포함된 내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2021년 9월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접수한 뒤 권 전 대법관을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이후 2022년 1월 변호사법 위반·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 사건을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이송했다. 검찰은 당시 해당 혐의가 직접 수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023년 9월 사건을 다시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추가 수사를 거쳐 권 전 대법관을 기소했다.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대장동 사건과 관련된 범죄인 만큼 수사권이 인정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의 재이송 과정도 문제 삼았다. 다른 대장동 사건과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은 법이 정한 필요적 이송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검경수사권 조정 취지를 고려할 때 우회적으로 검사의 수사개시권 규정을 침탈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경찰의 적법한 수사 개시와 일차적 수사종결권 행사가 없는 상태에서 검사가 사건을 재이송받아 수사한 것은 위법한 수사 상태가 계속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수사는 검사의 수사개시권 제한과 경찰의 수사·종결권 체계를 침해한 위법한 수사"라며 "이에 기초한 공소 제기 역시 위법하고 무효"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권 전 대법관이 실제로 변호사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화천대유 고문 활동이 변호사법상 법률 사무에 해당하는지, 미등록 상태에서 받은 1억5000만원이 변호사 보수에 해당하는지 등 사건의 쟁점은 실체 판단 없이 남게 됐다.
이번 판결은 권 전 대법관의 화천대유 고문 활동을 둘러싼 첫 법원 판단인데, 법원은 변호사법 위반 여부는 판단하지 않고 검찰 수사권 문제를 이유로 공소를 기각한 것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선고 후 취재진과 만나 "법을 법대로 선언한 용기 있는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법을 왜곡하고 죄를 만들어낸 행태는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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