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건강하게 100세를 맞이하느냐다."
전 세계 장수의학 석학들이 전북 고창에 모여 건강수명 100세 시대를 위한 해법을 논의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휴먼 디지털 트윈(Human Digital Twin·HDT) 기술이 미래 장수의학의 핵심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10일 전북 고창에서 열린 제30회 국제백세인컨소시엄(ICC) 연례학술대회 둘째 날 행사에서는 미국, 일본, 프랑스, 중국, 브라질 등 13개국 18개 연구기관 소속 장수의학 전문가 50여 명이 참석해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ICC는 세계 장수 연구를 이끄는 대표 학술 네트워크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백세인 유전체 연구와 정밀의학, 발효식품, 치아 건강,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장수 연구의 목표가 단순한 수명 연장에서 건강수명 연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큰 관심을 모은 분야는 AI 기반 정밀의료와 휴먼 디지털 트윈 기술이었다. 휴먼 디지털 트윈은 개인의 유전자 정보와 건강검진 결과, 생활습관, 병력 데이터를 통합해 가상의 디지털 인간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이를 활용하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
학술대회 참석 연구자들은 향후 10년간 장수의학 발전을 주도할 핵심 기술로 AI를 꼽았다. 과거 장수 연구가 의학과 생물학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데이터 과학자와 AI 연구자,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융합 연구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학술대회 개최지인 고창 역시 세계 장수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고창은 전체 인구 약 5만 명 가운데 60세 이상 인구가 절반을 넘고, 90세 이상 초고령 인구도 1200명 이상 거주하는 국내 대표 장수 지역이다. 청정 자연환경과 전통 식문화, 강한 공동체 문화가 유지되고 있어 장수 연구의 중요한 현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백세인연구단이 20여 년간 축적해 온 연구 데이터 역시 주요 관심사로 소개됐다. 연구단은 백세인의 유전자 정보뿐 아니라 생활습관, 영양 상태, 정신건강, 인지 기능, 사회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추적해 세계적으로도 드문 장기 데이터를 구축해 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한국 백세인들은 과거 세대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흡연·음주 비율은 낮은 반면 삶의 만족도는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안일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비율이 2001년 2.8%에서 최근 25% 이상으로 증가해 건강한 노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 전통 발효식품에 대한 연구도 관심을 모았다. 연구진은 된장과 청국장, 김치, 젓갈류, 해조류 등이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하고 영양소 흡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는 최근 의학계에서 주목받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와도 맞닿아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노화 연구 권위자인 서유신 석좌교수는 "백세인은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자연 실험실"이라며 "희귀 기능성 유전자 변이가 스트레스 대응과 DNA 복구, 세포 노화 억제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인구통계학자 장 마리 로뱅 박사는 "무엇이 사람을 일찍 죽게 만드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살게 만드는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실제 장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로 기대수명보다 최빈사망연령(Modal Age at Death)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 오사카 대학교 곤도 야수유키 교수 연구팀은 장기간 진행 중인 SONIC 프로젝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치아 건강이 건강수명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라며, 씹는 기능 저하가 영양 불균형과 근육 감소,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빠른 한국이 오히려 세계 장수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AI 기반 정밀의료와 디지털 트윈 기술이 건강수명 100세 시대를 실현하는 핵심 도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고창 학술대회가 초고령사회가 직면한 인류 공동 과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국제 협력의 장이 되고 있다"며 "20세기 의학의 목표가 질병 치료였다면 21세기 의학의 목표는 건강한 노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Copyright ⓒ 아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