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열린 핸드볼경기장 입주 체육단체 직원들의 업무 정상화 호소문 발표 기자회견 도중 한 여성이 기자회견을 가로막으며 항의하고 있다. / 뉴스1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비판하는 시위가 서울 잠실 지역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봉쇄하는 형태로 7일째 이어지고 있다. 시위와 무관한데도 일터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 경기장에 사무실을 둔 대한체육회 산하 체육단체 임직원들이다. 이들은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단 하루도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경기장 밖을 맴돌고 있다.
"시위는 존중한다, 우리의 일터도 존중해달라"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NHN티켓링크 아레나) 체육단체 일동'은 11일 오전 경기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여러분의 시위는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터도 존중해주시기 바란다. 우리의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스스로를 "매일 성실히 일해 온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국 체육을 떠받쳐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며 "우리의 일터를 우리의 일상으로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생활터전을 두고 있는 임직원들이다. 지난 6월 5일부터 오늘까지 7일째 우리는 매일 출근하던 사무실에 단 한 걸음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위 참여자들은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를 더 높였다. 체육단체 직원들은 이날 경기장 진입을 시도했으나 집회 참석자들의 거센 반발에 막혀 또다시 발길을 돌렸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입주 체육단체 직원들이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 일주일째를 맞은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업무 정상화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창문 넘어 탈출, 신분증 검사, 가방 수색까지
호소문에는 봉쇄 기간 직원들이 겪은 일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이들은 "지난 금요일 일부 직원들은 사실상 사무실에 갇혀 창문을 넘어 빠져나와야 했다"며 "출근하려던 직원들은 신분증을 검사당하고 몸과 가방을 수색당했으며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 앞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고 했다.
업무 마비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은행업무에 꼭 필요한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 법인카드, 인감도장만, 그것도 시위대 입회하에 가지고 나오겠다는 최소한의 요청마저 거부당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단체 운영에 필수적인 금융 업무 수단조차 손에 쥐지 못한 채 일주일을 보낸 셈이다.
체육 행정의 공백도 현실화됐다. 이들은 "국민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국가 자격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국위 선양할 국제대회 출전 준비가 막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유소년 선수 양말까지 벗기라 했다?!
봉쇄의 여파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미쳤다. 지난 8일에는 경기장 봉쇄로 훈련장을 쓰지 못하게 된 핸드볼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른 장소에서 훈련하기 위해 운동 장비를 챙기러 경기장을 찾았다. 그러자 시위대는 투표용지를 몰래 가져나오는 게 아니냐며 소지품 검사를 했고, 일부 인원은 미성년자인 선수의 양말을 벗겨봐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입주 단체들의 진입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일 오후 6시에도 경기장 내부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으나 현장 시위대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틀 뒤인 11일의 재시도 역시 같은 결과로 끝났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체육단체들은 책임 있는 기관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와 관계기관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사고가 난 뒤에 나서지 말고 지금 즉시 나서 달라"며 "대한체육회는 현 사태에 대한 실질적 해결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태의 발단이 된 선거 관리 주체를 향한 요구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송파구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사태의 원인을 직시하고 우리의 일터를 정상화할 책임 있는 방안을 조속히 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번 봉쇄 시위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비롯된 만큼, 그 원인을 제공한 쪽이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는 취지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된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위대가 재선거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스1
대한체육회 "정치적 입장 없다… 행정 물품 반출 여건은 확보돼야"
대한체육회는 지난 10일 공식 입장을 내놨다. 체육회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임을 존중하며, 관련 사안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입장도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시위 자체를 막거나 비판할 뜻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업무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체육회는 "체육단체의 정상적인 업무수행과 다가오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비 국가대표 훈련지원, 70여 종목 이상의 체육지도자 실기구술 자격검정 시행 등 각종 체육행정 서비스 제공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행정 물품들을 반출할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경찰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회원종목단체의 업무 연속성 확보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경기장에는 다수의 대한체육회 회원종목단체가 입주해 각종 대회 관련 업무를 처리해왔다.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2026년을 앞두고 국가대표 훈련 지원과 자격검정 등 굵직한 일정이 줄줄이 대기 중인 상황에서, 봉쇄가 길어질수록 행정 공백의 파장은 체육계 전반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위대와 체육단체 사이의 대치가 일주일을 넘긴 가운데, 정부와 관계기관의 중재가 사태 해결의 변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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