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권에 몰려 있던 반도체 생산 기지를 호남과 충청 지역으로 넓히는 방안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지방 유치 요구가 거세지면서 반도체 업체들도 정부 지원을 전제로 새로운 생산 거점 확보를 고민해볼 시점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전력·용수 인프라와 전문 인력, 협력사 생태계 측면에서 수도권 대비 지방의 열세가 분명한 탓에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입지를 분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지방 투자론은 지난해부터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불거졌으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최대 1천조원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낮다는 시각이 많았다. 0.01초의 순간 정전에도 수천억원 손실이 발생하는 산업 특성상 즉각적인 전력 우회 공급 체계를 갖추지 못한 지방은 불리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강 수계의 풍부한 원수를 활용할 수 있는 수도권과 달리 대규모 공업용수 조달에서도 지방은 약점을 안고 있다.
석박사급 고급 인력 중심으로 운영되는 반도체 산업에서 지방 이전 시 이직률 상승 우려도 제기된다. 설계 전문가와 글로벌 장비 업체들이 이미 수도권에 밀집해 있어 팹 운영에 필수적인 팹리스·소프트웨어 지원 생태계 역시 지방에서 확보하기 어렵다.
그러나 올해 들어 반도체 시장 호황이 가팔라지면서 지방 균형 발전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초과이익의 사회적 재분배 필요성을 언급할 만큼 대기업에 대한 압력이 강해지는 분위기다. 글로벌 AI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선제적 투자 필요성이 커지면서 반도체 기업들도 추가 생산 거점 마련을 저울질하고 있다.
오는 8월 시행 예정인 반도체 특별법에는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한 클러스터 지원과 인허가 특례 조항이 담겨 지방 투자의 유인책이 마련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모든 국토가 성장 기회를 누리는 초격차 산업 강국 비전을 제시하며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 공개를 예고해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방 투자 시 호남권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기존 충청권 중심 패키징 거점을 관련 생태계가 형성된 광주로 확장할 가능성이 거론되며, 태양광·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용수 확보에서 호남이 강점을 지닌 점도 주목받는다. 새만금에 조성될 피지컬 AI 밸류체인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SK하이닉스 역시 패키징 등 후공정 시설 일부를 호남에 배치하거나 올해 발표한 19조원 규모 충청권 투자를 늘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칩 제조의 핵심인 전공정 증설까지 지방에서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첨단 전공정에는 막대한 전력·용수와 수백 개 협력업체 생태계, R&D 인력이 필수인 반면 패키징은 입지 제약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쳐 조성된 수도권 반도체 생태계를 단기간에 이식하기 어렵고, 고급 연구 인력의 지방 근무 기피 정서도 쉽게 바뀌지 않을 문제로 지목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전력, 물, 땅, 사람 등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지어야 한다"고 언급해 이 같은 현실을 환기했다. 결국 인력 확보와 부지 마련이 비교적 수월한 패키징 라인 중심의 점진적 입지 분산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증산 수요에 맞춰 기업들이 지방 투자를 검토할 수 있고 패키징 분야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서도 "전공정까지 무리하게 옮기면 용인 메가클러스터 정책이 흔들리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Copyright ⓒ 나남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