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환율⑥] 코스피 올랐는데 돈은 왜 美로 가나… 상법이 환율을 바꾸는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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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0:00 기준

[高환율⑥] 코스피 올랐는데 돈은 왜 美로 가나… 상법이 환율을 바꾸는 경로

뉴스로드 2026-06-11 09:29: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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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코스피보다 더 크게 올랐지만, 주가 재평가가 곧바로 원화 강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업의 주주환원과 자본배분 신뢰가 실제로 높아져야 해외로 향하는 달러 수요가 줄고 원화 자산에 자금이 머물 수 있다. [분석=최지훈 기자]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코스피보다 더 크게 올랐지만, 주가 재평가가 곧바로 원화 강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기업의 주주환원과 자본배분 신뢰가 실제로 높아져야 해외로 향하는 달러 수요가 줄고 원화 자산에 자금이 머물 수 있다. [분석=최지훈 기자]

한국 증시는 이미 과거의 ‘만성 저평가 시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주가는 올랐고 기업의 배당과 자사주 소각도 늘었다.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상법 개정으로 일반주주 보호를 강화할 제도적 토대도 마련됐다.

그런데도 한국 투자자의 미국 주식 매입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가 오르는 것과 한국 기업을 장기간 믿고 보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기업이 얼마를 버는지만 보지 않는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과 보유한 자산이 자신에게 공정하게 돌아올 수 있는지도 함께 판단한다.

11일 <뉴스로드>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개정 상법, 국내 자본의 해외 이동을 분석한 결과, 앞으로 원화의 장기 가치는 한국 기업의 실적뿐 아니라 주주가치를 보호하는 법과 기업 행동에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은 금리와 달러 강세, 무역수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인이 해외 주식을 사기 위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흐름이 장기간 누적되면 원화에는 구조적 부담이 생긴다. 경상수지 흑자가 나도 그 돈이 국내 자산으로 돌아오지 않고 해외 포트폴리오로 재배치되면 원화 강세 압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과 연기금이 국내 기업의 성장성과 주주환원을 신뢰하면 원화 자산을 장기 보유할 이유가 생긴다. 반대로 기업의 이익이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합병과 분할, 계열사 거래, 자사주 활용을 통해 일반주주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면 자금은 더 신뢰할 수 있는 시장으로 이동한다.

기업 지배구조와 환율이 만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상법상 주주 보호 규칙은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기준이지만, 그 규칙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신뢰는 원화 자산을 보유할 이유가 된다. 국내 기업을 선택하면 원화 자산에 대한 수요로 남고, 해외 기업을 선택하면 환전 수요가 발생한다.

[사진=최지훈 기자]
[사진=최지훈 기자]

▲주가는 올랐지만 돈이 머물지는 않았다

2026년 현재 한국 증시를 과거와 같은 저평가 시장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2025년 한 해 동안 89.4% 올라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 75.6%를 13.8%포인트 웃돌았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한국지수를 기준으로 한 국내 증시의 주가순자산비율은 2024년 말 0.88배에서 2025년 말 1.59배로 높아졌다. 최근 10년 평균인 1.09배도 넘어섰다. 주가수익비율도 같은 기간 11.37배에서 17.47배로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산업의 실적 개선, 주주환원 확대가 동시에 가격에 반영됐다. 한국 기업이 보유한 자산과 이익을 시장이 과거보다 높게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의 참여도 늘었다. 2024년 5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가 시작된 뒤 2025년 말까지 본공시를 제출한 상장사는 171곳이었다. 유가증권시장 130곳, 코스닥시장 41곳이다.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총 1771조4000억원으로 전체 증시 시가총액의 44.5%를 차지했다.

밸류업 공시기업 가운데 59곳은 최초 계획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행 성과를 점검한 주기적 공시까지 제출했다. 단발성 선언에서 실제 이행을 보고하는 단계로 넘어간 기업도 나타난 것이다.

주주환원도 늘었다. 2025년 자사주 매입은 20조1000억원, 자사주 소각은 21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금배당도 50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1.1% 증가했다. 한국 증시가 주주환원을 외면한다는 과거의 평가만으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주가가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자산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장의 재평가가 기업 실적과 유동성에 따른 상승인지, 일반주주를 대하는 기업의 원칙이 바뀐 결과인지는 별도로 봐야 한다.

경기가 꺾이고 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기업이 약속한 배당과 자본배분 원칙을 유지하는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충돌할 때 이사회가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는지가 진짜 시험대다.

주가 상승은 시장이 미래의 개선 가능성을 먼저 반영한 결과다. 원화 자산에 대한 신뢰는 그 가능성이 실제 배당, 자사주 소각, 공정한 합병과 자본배분으로 확인될 때 쌓인다.

한국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관련 지표와 개정 상법 핵심 조항을 분석한 표.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89.4% 올라 코스피 상승률 75.6%를 웃돌았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본공시 기업은 171곳으로 늘었다. 그러나 환율 관점에서 핵심은 주가 상승 자체가 아니라, 일반주주 보호와 자본배분 개선이 국내 자금의 해외 이동을 줄일 만큼 신뢰를 만들 수 있느냐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를 명시했다. 이 규칙이 합병·분할·자사주 처분·계열사 거래에서 실제로 작동해야 원화 자산에 대한 장기 보유 유인이 커지고, 해외주식 매입에 따른 구조적 달러 수요도 완화될 수 있다. [분석=최지훈 기자]
한국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관련 지표와 개정 상법 핵심 조항을 분석한 표.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89.4% 올라 코스피 상승률 75.6%를 웃돌았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본공시 기업은 171곳으로 늘었다. 그러나 환율 관점에서 핵심은 주가 상승 자체가 아니라, 일반주주 보호와 자본배분 개선이 국내 자금의 해외 이동을 줄일 만큼 신뢰를 만들 수 있느냐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를 명시했다. 이 규칙이 합병·분할·자사주 처분·계열사 거래에서 실제로 작동해야 원화 자산에 대한 장기 보유 유인이 커지고, 해외주식 매입에 따른 구조적 달러 수요도 완화될 수 있다. [분석=최지훈 기자]

▲원화를 붙잡는 힘은 주주 신뢰에서 나온다

2025년 7월 22일 공포된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혔다. 개정된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가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와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했다. 이 조항은 개정 상법의 기본 시행일인 2026년 7월 23일을 기다리지 않고, 공포일인 2025년 7월 22일부터 이미 시행됐다.

문구는 짧지만 기업 의사결정에 미치는 의미는 작지 않다. 기존에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판단했다는 논리로 합병과 분할, 계열사 간 거래를 정당화할 여지가 있었다. 이제는 그 결정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뿐 아니라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했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지배주주가 높은 지분을 가진 회사와 낮은 지분을 가진 회사를 합병할 때 회사 전체에는 사업상 필요가 있더라도 합병비율은 일반주주에게 불리할 수 있다. 이 경우 이사회는 합병 자체의 필요성만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가치 산정과 거래조건이 전체 주주에게 공정했는지도 입증해야 한다.

물적분할 뒤 자회사 상장도 마찬가지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사업을 분리해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모회사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핵심 사업이 별도 법인으로 떨어져 나가고 새 주주가 들어오면서 기존 권리와 성장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개정 상법이 실제로 작동한다면 이사회는 자회사 상장이 회사에 필요한지뿐 아니라 모회사 일반주주가 입을 손실을 어떻게 줄이고 보상할지도 판단해야 한다.

자사주 처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회사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주식 수가 줄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반면 자사주를 우호세력이나 특정 계열사에 넘기면 의결권 구도가 달라져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에 활용될 수 있다.

이제 이사회는 자사주 처분이 회사의 이익과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에 부합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기업 내부의 자본배분 결정이 일반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회피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 변화가 환율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는 자금의 선택 때문이다.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원화와 달러가 사고팔린 결과이지만, 그 배경에는 투자자가 어느 나라 자산을 보유할지 결정하는 자산배분이 있다. 국내 투자자가 미국 주식과 해외 펀드를 사려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한다. 이 흐름이 일시적이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장기간 반복되면 원화에는 구조적 부담이 된다.

한국 기업의 이익이 일반주주에게 공정하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커지면 국내 투자자는 원화 자산을 오래 보유할 이유를 갖게 된다. 기업이 번 돈이 배당, 자사주 소각, 생산적인 재투자, 공정한 합병과 분할을 통해 전체 주주의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판단하면 굳이 해외시장만 선택할 이유가 줄어든다. 국내 주식과 펀드, 연금상품에 자금이 남으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수요도 그만큼 낮아진다.

반대로 기업의 성과가 일반주주보다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게 배분된다고 판단하면 자금은 더 높은 신뢰를 찾아 해외시장으로 움직인다. 합병비율이 일반주주에게 불리하게 정해지거나, 자사주가 소각보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계열사 거래가 특정 주주에게 유리하게 설계된다고 인식되면 투자자는 한국 기업의 이익을 자신의 몫으로 보지 않는다. 이 경우 주가가 일시적으로 올라도 장기 자금은 국내에 머물기 어렵다.

원화 약세의 일부는 금리와 달러 강세, 무역수지 같은 거시 변수로 설명된다. 그러나 장기간 반복되는 해외주식 매입과 해외자산 선호는 다른 문제다. 금리 차가 줄고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더라도 국내 투자자가 계속 해외 자산을 사면 외환시장에는 달러 매수 수요가 남는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 자본시장으로 돌아와 원화 자산을 사는 대신 해외 주식과 채권으로 재배치되면 원화 강세 압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법 개정의 의미는 기업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반주주를 보호하는 규칙이 실제 합병과 분할, 자사주 처분, 계열사 거래에서 작동할 때 국내 자산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신뢰가 쌓이면 투자자는 한국 기업의 이익을 자신의 장기 수익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그때 국내 자금은 해외로만 이동하지 않고 원화 자산에 남을 이유를 얻는다.

결국 환율을 움직이는 것은 외환당국의 달러 공급만이 아니다. 외환시장 밖에서 형성되는 자산 신뢰도 환율의 방향을 바꾼다. 기업이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고 자본을 생산적인 곳에 배분한다는 믿음이 커질수록 원화 자산 수요는 살아난다. 자금이 머물 때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구조적 압력도 낮아진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환율, 코스피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78.82포인트(5.54%) 내린 8,160.59에, 코스닥은 47.29포인트(4.50%) 내린 1,002.44에 장을 마감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환율, 코스피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78.82포인트(5.54%) 내린 8,160.59에, 코스닥은 47.29포인트(4.50%) 내린 1,002.44에 장을 마감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자금이 머물 때 환율 부담도 낮아진다

상법이 개정됐다고 다음 날 환율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기업법과 외환시장 사이에는 긴 전달 경로가 있다. 그러나 그 경로가 작동하면 효과는 일회성 외환시장 개입보다 오래갈 수 있다.

첫 단계는 이사회의 의사결정 기준 변화다.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가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를 명시했다. 이는 이사회가 합병과 분할, 자사주 처분, 계열사 거래, 배당정책을 결정할 때 지배주주나 특정 계열사의 이해만이 아니라 일반주주에게 돌아갈 손익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단계는 자본배분의 규율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현금은 성장투자, 설비투자, 연구개발,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부채 상환 가운데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주주가치가 달라진다. 성장성이 낮은 사업이나 계열사에 자금을 계속 투입하거나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처럼 활용한다면 시장은 그 기업의 이익을 온전히 주주의 몫으로 보지 않는다.

반대로 이사회가 자본비용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돈을 쓰고, 남는 자본은 주주에게 돌려준다면 같은 이익에도 기업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할인율의 변화다. 투자자는 기업의 순이익만 보지 않는다. 그 이익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도 본다. 일반주주가 기업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투자자는 같은 실적에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다. 이것이 주가 재평가다.

주가 상승은 단기 호재가 아니라 자기자본비용을 낮추는 통로가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금액을 조달하더라도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부담이 줄고, 시장 신뢰가 높아질수록 채권 발행과 장기자금 조달 여건도 좋아진다.

네 번째 단계는 국내 투자자의 선택이다. 한국 가계와 기관이 해외 주식을 사는 이유는 미국 기업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국내 기업이 번 돈이 일반주주에게 공정하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약하면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해외시장으로 간다. 반대로 한국 기업의 장기 수익성과 주주 대우를 신뢰할 수 있다면 새로 생기는 저축 가운데 일부는 국내 주식, 펀드, 연금상품에 남을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 이 변화가 외환시장으로 전달된다. 해외주식 매입은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거래를 동반한다. 해외 자산 선호가 장기간 누적되면 경상수지 흑자가 나도 원화 강세로 이어지기 어렵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돌아와 원화 자산을 사는 대신 해외 포트폴리오로 재배치되기 때문이다.

국내 자산을 선택할 이유가 커지면 구조적 달러 수요가 완화되고, 원화에 가해지는 장기 부담도 낮아진다. 상법 개정이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은 법률로 환율 수준을 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업의 의사결정과 자본배분, 투자자의 신뢰, 가계와 기관의 자산 선택을 거쳐 외환시장에 닿는 구조적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환율을 낮추는 가장 빠른 처방은 달러 공급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래가는 처방은 국내 자산을 믿고 보유할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코스피 상장사 연도별 평균 배당성향 추이/출처=한국거래소 
코스피 상장사 연도별 평균 배당성향 추이/출처=한국거래소 

▲주주가치 핵심은 배당보다 자본배분이다

주주가치를 높인다는 말을 배당 확대와 같은 뜻으로 봐서는 안 된다. 모든 기업이 벌어들인 현금을 곧바로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성장 기회가 크고 투자수익률이 높은 기업은 배당보다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자금을 쓰는 편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에 유리할 수 있다. 기업이 1원을 투자해 장기적으로 1원보다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면 현금을 배당하는 것보다 사업에 재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제는 자금을 쓰지 않는 것 자체가 아니다. 투자의 수익성과 목적을 설명하지 않은 채 현금을 쌓아두거나, 그 자금이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와 계열사 지원에 쓰이는 경우다. 성장투자와 지배권 유지를 위한 자금 사용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주주가치 경영의 핵심은 배당률 자체가 아니다. 기업이 자본을 어디에 배분했는지, 그 결정이 전체 주주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설명하고 책임지는 데 있다.

한국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도 이 같은 취지에서 설계됐다. 기업이 자신의 자본비용과 수익성, 시장평가를 진단한 뒤 중장기 목표와 실행계획, 이행평가를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 공시는 참여 여부와 내용이 기업 자율에 맡겨져 있다. 기업이 목표를 낮게 잡거나 수치 없는 선언만 내놓더라도 직접적인 법적 제재를 받는 구조는 아니다.

그래서 밸류업 공시와 상법 개정은 따로 볼 수 없다. 밸류업 공시는 기업의 계획을 시장에 알리는 장치이고, 상법은 이사회가 실제 의사결정을 할 때 따라야 할 기준이다. 두 제도가 함께 작동해야 선언과 행동 사이의 간격을 줄일 수 있다.

블랙록 자본 관리 현황(2024년 1분기~2026년 1분기). 좌측은 자사주 매입(막대)과 희석 가중평균 주식 수(선), 우측은 주당 배당금 추이. 희석 주식 수가 2024년 3분기 1억4960만주에서 2025년 3분기 1억6520만주로 급등한 두 차례 계단식 상승이 뚜렷하다. 각각 GIP 인수(690만주)와 HPS 인수(서브코 유닛 약 850만주) 대가 발행에 따른 것이다. 1분기 자사주 매입은 4억5000만달러로 희석 완화에 나섰으나, 주식 수는 여전히 1억6500만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주당 배당금은 5.73달러로 전년 대비 10% 인상됐다. [자료=블랙록 2026년 1분기 실적보고 보충자료(Earnings Release Supplement)]
블랙록 자본 관리 현황(2024년 1분기~2026년 1분기). 좌측은 자사주 매입(막대)과 희석 가중평균 주식 수(선), 우측은 주당 배당금 추이. 희석 주식 수가 2024년 3분기 1억4960만주에서 2025년 3분기 1억6520만주로 급등한 두 차례 계단식 상승이 뚜렷하다. 각각 GIP 인수(690만주)와 HPS 인수(서브코 유닛 약 850만주) 대가 발행에 따른 것이다. 1분기 자사주 매입은 4억5000만달러로 희석 완화에 나섰으나, 주식 수는 여전히 1억6500만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주당 배당금은 5.73달러로 전년 대비 10% 인상됐다. [자료=블랙록 2026년 1분기 실적보고 보충자료(Earnings Release Supplement)]

▲시장은 조문보다 행동을 본다

개정 상법의 성패는 이미 시행된 조문이 기업의 실제 의사결정과 법원의 판단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 및 주주’가 들어가고,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가 명문화됐지만, 시장이 확인하려는 것은 문구가 아니라 결과다.

합병과 분할, 자사주 처분, 계열사 거래에서 일반주주의 손실이 실제로 줄어드는지가 관건이다. 법 조항이 있어도 기업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투자자의 할인율은 낮아지지 않는다. 반대로 같은 조항이라도 실제 거래 관행과 판례를 통해 기준이 쌓이면 시장은 한국 자산의 위험 프리미엄을 다시 계산한다.

시장도 몇 가지 지표를 확인해야 한다. 먼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기업이 약속한 배당과 자사주 소각, 자본수익률 개선 목표를 실제로 이행하는지 봐야 한다. 계획을 반복해 수정하거나 이행하지 못한 기업이 그 이유와 새로운 목표를 충분히 설명하는지도 중요하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형 상장사의 참여가 늘어나는지도 살펴야 한다. 2025년 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본공시한 171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1조원 이상 기업은 109개로 63.7%를 차지했다. 반면 시가총액 1000억원 미만 기업은 9개, 5.3%에 그쳤다.

대형주 몇 곳의 주주환원만으로는 한국 증시 전체의 신뢰를 바꾸기 어렵다. 중소형 기업까지 자본비용과 주주환원, 지배구조를 설명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영문 공시도 중요하다. 2025년 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본공시한 171개 기업 가운데 영문 공시를 제출한 기업은 79개로 46.2%였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기업의 계획과 이행 성과를 같은 시점에 확인할 수 있어야 정보 격차에 따른 할인도 줄일 수 있다.

해외투자와 국내 장기투자의 흐름도 함께 봐야 한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밸류업 정책이 실제 신뢰를 얻는다면 국내 투자자의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단기 주가 상승보다 연금과 장기펀드, 개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보유기간과 투자 비중이 늘어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다.

상법·지배구조 개선이 환율로 이어지는 단계를 정리한 표. 개정 상법 제382조의3 시행으로 이사회 판단 기준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어지고, 합병·분할·자사주 처분 때 일반주주 손익을 검토할 필요가 커졌다. 이 변화가 배당·자사주 소각·자본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지면 국내 자산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가계와 기관의 장기 보유 유인이 커질 수 있다. 국내 자금이 원화 자산에 머물수록 해외주식 매입을 위한 달러 환전 수요는 줄어들고, 원화에 가해지는 구조적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 [분석=최지훈 기자]
상법·지배구조 개선이 환율로 이어지는 단계를 정리한 표. 개정 상법 제382조의3 시행으로 이사회 판단 기준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어지고, 합병·분할·자사주 처분 때 일반주주 손익을 검토할 필요가 커졌다. 이 변화가 배당·자사주 소각·자본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지면 국내 자산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가계와 기관의 장기 보유 유인이 커질 수 있다. 국내 자금이 원화 자산에 머물수록 해외주식 매입을 위한 달러 환전 수요는 줄어들고, 원화에 가해지는 구조적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 [분석=최지훈 기자]

▲원화가 강해지려면 자금이 머물 이유가 있어야 

외환당국이 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면 급격한 환율 상승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주주를 어떻게 대하는지까지 바꿀 수는 없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 기업을 선택하는 이유를 그대로 둔 채 환율만 낮추려 하면 정책 효과는 오래가기 어렵다. 국내 기업이 높은 수익을 내고 그 성과를 전체 주주와 공정하게 나눌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야 자금이 국내에 머문다.

상법 개정은 출발점이다. 이사의 의무 대상에 주주를 넣었다는 사실보다 합병과 분할, 자사주, 계열사 거래에서 일반주주의 손실이 실제로 줄어드는지가 중요하다.

밸류업 정책 역시 공시 건수를 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기업이 제시한 목표와 실제 성과를 시장이 비교하고, 약속을 지킨 기업이 낮은 자본비용과 높은 기업가치로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주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기업의 돈을 무조건 주주에게 나눠준다는 뜻이 아니다. 기업이 자본을 가장 생산적인 곳에 쓰고 그 과정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믿음을 주는 일이다. 한국 증시는 이미 재평가를 시작했다. 이제 시장이 묻는 것은 한국 기업이 싼지 비싼지가 아니다. 높아진 가격을 지탱할 제도와 행동이 실제로 자리 잡았느냐다.

루이지 기소 이탈리아 에이나우디 경제금융연구소 교수, 파올라 사피엔자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루이지 징갈레스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로버트 C. 매코맥 기업가정신·금융학 석좌교수는 논문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Trusting the Stock Market)’에서 “투자자는 주식을 살지 결정할 때 속을 위험을 함께 고려한다”며 “신뢰가 낮은 사람은 주식을 살 가능성이 작고, 주식을 사더라도 투자 규모가 작다”고 했다.

원화도 같은 질문 앞에 있다. 한국 기업이 번 돈이 한국 주주에게 공정하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커질수록 국내 자금은 원화 자산에 머물 이유를 얻는다. 그 믿음이 약하면 자금은 환전을 거쳐 해외로 간다. 환율의 숫자는 외환시장에서 찍히지만, 그 숫자를 오래 움직이는 힘은 기업이 주주를 대하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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