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투표용지 인쇄 물량의 최소 기준이 축소된 배경에 공식적인 의결 절차가 전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무총장과 실무 간부의 단독 결재만으로 선거 운영의 핵심 지침이 변경된 셈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민의힘 김승수·김민전 의원이 중앙선관위에서 확보한 자료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관위는 작년 12월 10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종합관리지침상 투표용지 인쇄 하한선을 60%에서 50%로 하향 조정했다. 별도의 공식 회의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됐다. 같은 달 24일 공직선거 절차 사무편람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개정됐으며, 이때도 정식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이 지침에 근거해 송파구선관위는 잠실3·4동을 제외한 25개 동에서 투표용지를 50% 비율로만 준비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실제 투표율은 65.8%를 기록해 서울 평균(63.6%)을 2.2%포인트 상회했다. 서초·성동·양천구에 이어 서울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치였다.
선관위 측은 인쇄 기준 축소에 대해 여러 이유를 제시했다. 사전투표 참여율 상승, 인쇄 기간 단축에 따른 업체 확보 난항, 대량의 용지 검수·보관 부담, 잔여분 분실 위험 등이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투표율 대비 지나치게 많은 용지를 찍어낼 경우 부정선거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문제는 비상 상황에 대한 준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용지 부족 발생 시 적용할 업무 절차나 담당자 간 역할 분담 등 구체적 대응 지침이 부재했다. 일련번호 표기 방식, 추가 교부 기준, 배분 절차 등 세부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초기 대응 시점을 놓쳤다고 선관위는 자체 보고서에서 인정했다.
6~13명의 적은 인력이 투표 진행, 우편투표 접수, 개표 준비 등 복수 업무를 동시에 맡다 보니 즉각적인 보고 체계도 작동하지 못했다. 상황 전파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된 부분이다.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은 "구속력 없는 50% 지침이 이번 혼란의 근본 원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투표용지 물량 산정의 법적 근거 명시와 긴급 상황 대응 체계 마련을 골자로 한 '참정권 침해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투표용지가 떨어진 투표소는 전국적으로 91곳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서울 42곳, 경기 23곳, 인천 11곳, 대구 4곳, 부산 3곳, 울산·경남·전남 각 2곳, 충북·전북 각 1곳이다. 부족 물량도 당초 4천726장에서 7천194장으로 수정 보고됐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최장 105분간 투표가 멈췄으며, 송파구 내 3개 투표소는 중단 시간조차 정확히 집계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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